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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예 Nov 16. 2024

우리는 매일 오늘을 묻는다

묻힌 오늘은 내일의 오늘을 위한 거름


우리는 매일 헌 것을 묻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새것이 너무도 빨리 헌 것이 돼버립니다.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어제를 묻고,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오늘을 묻겠죠.

사실 자의로 묻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오늘을 살고 있나요? 바쁜 오늘이던 한가한 오늘이던 그마저도 몇 시간 뒤면 그 또한 내일이 되겠죠.


  ‘오늘’은 제 인생에서 끝없이 반복되겠지만, 2024년의 8월 11일은 내일이 되고 엊그제가 되어 결국 ‘오늘’의 저와 점차 멀어지겠죠. 제가 오늘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게 제 맘대로 될까요. 시간은 붙잡으려 해도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젓는 듯 끝내 잡히지 않습니다.    



  '내일'의 저는 '새로운 오늘'의 내가 되어서 원래 '오늘'이었지만 이제는 '어제'인 날을 묻고 또 '새로운 오늘'을 살아가겠죠. 언젠가 새삼 제가 너무 많은 오늘을 묻은 것이 느껴지는 날이 찾아오면 전 그냥 무시해버리고 맙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저는 점차 빠져서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을 알기에 그냥 다른 생각으로 무마하고 맙니다.  무시를 가장한 도망에 가까울까요?

  그래도 조심스레 기대는 합니다. 제가 멀지 않은 미래에 이제는 과거가 되어 묻힌 오늘들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며


  저의 오늘이 묻히면서 그와 함께 묻혀서 다시는 제 오늘에 등장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늘 저의 오늘에, 새로운 오늘에도 함께 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1일의 오늘은 그들에게 감사하는 날입니다. 24시간마다 찾아오는 새 오늘을 늘 함께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그들은 저와 얼마나 큰 인연이길래 이리도 저의 오늘에, 나아가 인생에 이리도 많은 발자국을 남기는 것일까요?


  나중에 제 인생을 뜯어 살펴볼 때 얼마나 많고 다양한 발자국이 찍히고 찍힐지 궁금합니다. 가끔 너무 깊이 찍혀 구멍이라도 나는 날에는 어찌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겠으나 퍼뜩 답이 떠오르는 날에는 또 어김없이 책상에 앉아 적어보겠습니다. 그날을 고대하며 오늘을 보내고, 아쉬움을 남겨서 다음을 기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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