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파리지엔들이 먹는 아침 밥상이 이렇진 않겠지만
프랑스 FRANCE 파리 PARIS
카페 드 플로르 Cafe de Flore
2013년 달력이 3월에서 4월로 넘어가고 있었지만 파리의 공기는 머릿속을 찡하게 할 만큼 차가웠다. 파리에 도착한지 3일째인데 일정에 쫓겨 에펠탑도 콩알만 하게 멀찍이서 본 것이 전부. 생각지 못한 초봄 추위에 으슬으슬 감기 기운까지. 그럼에도 조식을 마다하고 부지런을 떨었다. 카페 드 플로르 Cafe de Flore에 갈 참이다.
꽤 오래되었고 예나 지금이나 유명한 지식인, 예술가들이 단골처럼 드나든다는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랬다. 유독 글 쓰는 작가들이 집필실 삼아 이 카페를 들락거렸다지. 알베르 까뮈가 <이방인>을 이곳에서 탈고했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도 여기서 이야기 나누고 글을 썼단다. 쌩땍쥐베리도 늘 아내와 함께 이 카페를 찾았다고. 또 뭐라 더라. 누가 누가 다녀갔다더라. 들어는 봤지만 잘 알지 못하는,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유명한 사람들이 아지트처럼 여겼다고 했다. 그런 심리가 있지. 그들과 같은 무리이고 싶은. 허세면 좀 어떤가. 이왕 파리에 왔는데 뭐.
지하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는데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건다. 길을 묻는 것 같다. 미안해요, 나 여기 여행 왔어요. 나도 처음인지라 잘 모르겠네요. 물론 짧은 영어로. 그런데 그 아저씨 막 화를 낸다. 긴긴 불어로. 지방에서 파리 상경하신 듯. 알면서 귀찮아 안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고요. 내가 지금 길을 물어봐야 할 판이고만 무안하게 왜 이러시나. 해코지 없이 그냥 갈 길 갔으니 다행.
지도에 표시된 길과 몇몇 상점이 보이는 것을 보니 카페가 가까이 있나 보다. 그런 느낌이 들자 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이상하게 설레더라. 그렇게까지 들뜬 건 '왜'였을까. 꼭 그 카페에 가겠다 벼르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아마도 크게 헤매지 않고 그날의 첫 목적지를 잘 찾았다는 안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카페 드 플로르 Cafe de Flore. 나이 지긋한, 머리 희끗한. 카페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대체로 그랬다. 뽀타이를 맨 웨이터가 자리를 안내한다. 홀에 앉을래, 테라스에 앉을래 묻는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카페 홀을 등지고 거리가 내다보이는 테라스 좌석으로 안내한다. 그리고 메뉴판. 빈 테이블 군데군데 크루아상이 소복 들어있는 트레이가 있다. 저건 그냥 먹으면 되는 건가? 주문을 한다. 커피랑 크루아상. 빈 접시를 하나 가져다준다. 크루아상은 꺼내 먹는 거. 곧 물 한 잔과 크레마 잔잔한 커피 한 잔. 그렇게 얼마간 환상을 갖고 있었던 파리지엔의 아침밥상을 받아 든다. 보통의 파리지엔들이 먹는 아침 밥상이 어떤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멋대로 그렇게.
일단, 기념사진 한 방. 그렇다고 셀카는 아니다. 내 앞의 아침 밥상. 여기 왔다는 증거. 딱히 누구한테 증명할 것도 아닌데 꼭 이렇게 기념사진을 남긴다. 부득불. 한참 요리조리 각도를 달리해 찍는다. 그거 뭐 의미 있는 거라고 꽤나 공을 들인 다음에야 식사 시작. 우아를 떨래야 크루아상은 도무지 우아하게 먹을 수가 없다. 크루아상 우아하게 먹는 법 아는 사람, 손?! 이럴 땐 부스러기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먹는 데에만 오롯이 집중하여 맛있게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나 난 그러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크루아상 한 덩이를 손으로 조금씩 찢어 야금거리고 만다. 크루아상은 단단하고 묵직했다. 겉은 매끈하면서 바삭거렸고, 속은 촉촉하면서도 담백했다.크레마 고운 커피는 쌉싸름한 끝에 고소함이 감돌았다. 그걸로 밥이 되냐 하겠지만 접시를 삐져나갈 만큼 큰 크루아상은 커피가 모자랄 만큼 충분하고도 남는다.
아직 오전 9시가 채 안 된, 문을 열지 않은 상점들이 많은 시간인데도 카페 안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힘 꽤나 쓸 것 같은 듬직한 아저씨는 커피 한 잔을 밀쳐두고 신문을 읽는다. 연신 휴대전화를 만지작하는 것을 보니 낱말 맞추기 정답 찾을라고 인터넷을 검색을 하는 것 같다. 손녀인지 늦둥이 딸인지 예쁘장한 꼬마는 중년 남성과 마주 앉아 있다. 뭔가 한 쟁반 가져온 웨이터를 빤히 쳐다보는데, 니꺼 아니고 할아버지 커피란다.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먼저 고개를 내밀더니 이어서 버건디 색상의 수트를 입은 은발 신사가 들어왔다. 범상치 않다. 이마에 "나 파리지엔이야."라고 적어놓은 듯한 인상이다. 먼저 와있던 내 맞은편 테이블 남자 앞에 앉는다. 아들일까, 동료일까 아니면 연인? 강아지는 꽤나 심술궂은 인상인데 용케도 테이블 아래 얌전히 자리를 트고 아장거린다.
혼자든 둘이든 거리를 향해 앉은 사람들은 입 무겁게 다물고 그저 거리를 내다 볼 뿐이다. 이럴 땐 담배를 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자 등받이에 완전히 몸을 기대고 앉아 차가운 공기 속으로 담배 연기를 불어넣는 사람들이 뭐랄까, 참 안락해 보였다.
다들 참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뭘 먹든, 뭘 보든, 뭘 얘기하든, 뭘 생각하든. 난 뭐 할까? 뭐하지? 뭐 하면 좋을까? 내가 한 거라곤 두리번거리는 것뿐이었다. 뭘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뭘 꼭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그보단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냥 시답잖은 이야기들. 여기 괜찮네, 커피 맛 좋다, 크루아상이 어쩜 이래 맛나니. 뭐 이런. 옆 테이블의 낯선 이들과 눈 마주칠 때마다 눈웃음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지. 나는 애써 시선을 피한다. 그러면서도 안절부절.
한 마디를 안 하고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지 할 일 해도 자연스러운 사람이 있다. 반면 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도 문득문득 낯설고 어색함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전자와 함께 여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주로 여행에선 후자를 만나는 일이 더 많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새로운 친구, 좋지. 다만 억지스럽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제각각 있다가 선문답처럼 한 마디씩 툭툭 내뱉을 때 희미하게 웃어줄 수 있는 누군가와 함께라면. 아무 소용없는 '만약'을 곱씹고 곱씹으며 아쉬워해야 하는 상황에 허탈감만. 이럴 땐 그냥 멍한 채로 있는 것이 그나마 낫다. 그런데 멍해지기는커녕 점점 초조함만 커진다.
문에 들어서기 전 여기서 2~3시간 뭘 좀 끄적대며 느긋하게 앉아 있어야지 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언제 어느 타이밍에 이곳에서 나가야 할까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졌다. 기막혀. 이 카페에서 나가는 것마저도 망설이다니. 계산하고 문 열고 나가면 되는 것을.
파리의 그 아침, 카페 드 플로르에서 나는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였을까, 왜 그렇게 외로움을 탔을까. 날씨가 조금 따뜻했다면, 여행자들로 좀 더 북적이는 시간에 갔다면 달랐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만약에다. 사실 알고 있었다. 엄청 불편하고 다소 의기소침해질 거라는 걸. 안 그런 척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늘 얼마간 그렇다. 좋다고 알려진 곳이나 유명한 맛집 뭐 그런 곳에 들어가면 더더욱. 누구에게나 다 있는 얼마간의 고독마저도 아닌 척 오히려 자존심을 내세우게 된다. 더 씩씩하고 즐겁고 마냥 행복한 척. 한편으로는 난 혼자서도 이렇게 뭐든 이렇게 잘 한다고. 척척. 좀 멋지지? 척과 척척. 참 다른데 또 닮은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여행과 척척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여행은 늘 서툴고 새롭고 낯선 그러면서도 설레는 것이니까. 그런데도 왜 그리 욕심이 생기는지. 결국엔 '척'만 하다 제 풀에 꺾이고 만다. 이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홀로 피식피식. 못난 스스로를 추억하며. 그래, 그 순간만이 여행은 아니지. 여정의 끝은 있어도 여행의 끝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