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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영 Mar 23. 2016

우붓 왕궁 Ubud Palace

좋아요? 괜찮아요? 어때요? worth to visit?

인도네시아 Indonesia 발리 Bali

우붓 왕궁 Ubud Palace    



모르는 사람들과 내내 동행해야 하는 패키지여행을 가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경험이 있지 싶다. 한 사람이라도 기분이 좋지 않거나 본인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생겼을 때 무리 모두에게 전이되는 불편한 기운을. 하필이면 발리 우붓 왕궁 Ubud Palace으로 향하는 길에서 그러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발리 전통 복식을 차려 입고 이것저것 소개하기 바쁜 가이드는 발리니스 가르마디 씨. 딴에는 발리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려주고 싶어 했지만 사실 욕심이 과한 면이 있었다. 발리에 짐을 푼 지 이틀 째인데 울루와투 절벽사원과 따나롯 해상사원에 이어 또 힌두교 명소라니. 검색도 해보고 여행책도 살펴보고 이래저래 준비를 해서 가더라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여행지. 자신이 경험한 것이 모든 것인 양 이야기하는 글들을 보고 나면 거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가야 할 것만 같고. 알면 알수록 더욱 알 수가 없는 여행 떠나기 전의 답답하고 불안한, 그러면서도 막연히 기대되고 조급 해지는. 여행이야 말로 요물, 요물, 요물 덩어리. 그렇게 시작한 발리 여행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얼마나 많았겠냐고.

 

물론 다 다른 사원이고 각기 다른 매력이 있지만 후텁한 가운데 연이은 힌두교 사원 방문은 힌두 문화에 익숙지 않은 한국 여행객들에게 지치는 일임에 분명했다. 더군다나 일몰이 훌륭하다는 따나롯 해상사원엔 오전에 잠깐 들렀다 우붓으로 이동한 참이었다. 매사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하는 나는 그런대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이미 싸해진 뒤였다. 대놓고 불평을 하진 않지만 여기저기 한숨이 터져 나온 공기는 산만하기 그지없다. 그럴수록 가르마디 씨의 안내는 더욱 진지해졌다.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인도네시아에서 단 1% 발리 사람들은 힌두교를 따른다.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Nobody knows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게 중요한가? 그럴 수도. 그건 그것대로 두고 적어도 내가 만난 발리 사람들은 역사를 추적하고 되뇌기보다 그들이 살아가는 오늘을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힌두의 영향 아래 살고 있는 그들의 일상.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의식이 가장 중요한 생활 전반의 기준이 된다. 종교적 삶이지만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왜냐. 발리 사람들은 제물을 바치고 기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는 등의 예술 활동 역시 신과 소통하고 신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 믿어 가족사원과 마을사원을 중심으로 활발히 그러한 활동을 지속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여행자의 눈에는 종교행사라기 보단 마을 축제처럼 느껴지는 신명이 넘치는 삶의 현장이다.  


참고로 힌두교를 믿는 발리 사람들은 집집마다 하나의 가족사원family temple을, 각 마을에는 세 개의 마을사원village temple을 둔다. 힌두교에서 으뜸가는 신이 셋이라고. 때문에 마을 단위로 세 신을 모시는 사원을 따로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사원과 마을사원은 그 구성원이자 기도하는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는 금기의 구역이다. 여행자들이 힌두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사원은 공용사원world tempel이라 한다. 발리의 주요 관광지로 손꼽히는 울루와투 절벽사원Pura Luhur Uluwatu, 따나롯 해상사원Tanah Lot Temple 등이 공용사원에 해당한다.

      


우붓 왕궁 Ubud Kingdom은 우붓의 마지막 왕이 살았던 옛 궁전으로 여전히 우붓 왕족의 후손들이 모여 생활하고 있다. 그들의 생활공간과 사원을 제외하고는 여행자를 포함하여 비 힌두교인들에도 개방하여 우붓 왕가의 문화를 선보이고 있다. 매일 전통 공연을 펼치고, 좁다란 골목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왕궁 내부의 일부 가옥에서는 숙박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왕궁 입구에서 짧은 옷차림은 허리춤에 기다란 스카프 형태의 사롱 sarong을 둘러 단장해준다. 발리 사람들은 사원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여겨 머리, 가슴, 다리로 구분하는데 머리는 신이 사는 신성한 세계, 가슴은 사람이 사는 세계, 다리는 귀신이 사는 세계라고. 때문에 발리에서는 아무리 귀여운 어린아이라도 머리를 쓰다듬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다. 종교적인 시설을 방문할 때에 짧은 옷차림은 피하는 것 또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허리춤에 사롱을 두르고 차례차례 기념사진을 찍는 사이 퉁명스러워졌던 표정들이 조금씩 수그러든다.       


발리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씩 야자나무 이파리로 만든 작은 그릇에 꽃, 쌀, 돈 등을 가지런히 담은 제물 차낭canang을 바치고 정성 들여 기도한다. 보통 식사를 하기 전 성스러운 물을 뿌리면서 바친다. 발리 어딜 가나 숱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차낭이다. 왕궁을 둘러보기 전에 우붓 왕가 여인의 손길을 따라 차낭을 만들어 본다. 얼추 흉내를 내는데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다들 꽤 열심히 따라 한다. 다 만든 후에 사원 언저리에 두고 저마다 소원을 빌 작정으로. 정말 이루어질 거란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이 진심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럼에도 그 짧은 순간 이렇게까지 집중을 할 수 있다니. 나는 차낭은 뒷전이고 일행들의 표정과 행동이 더욱 재미있었다. 더 신났던 것은 빈손인 나에게 왕가 여인이 만든 차낭이 주어졌기에.


이제 잠시나마 뒷짐 지고 지켜보던 이제 가르마디 씨의 차례다. 그의 안내에 따라 왕궁을 둘러본다. 가옥과 가옥 사이 골목이 꽤 좁다. 어른 두 사람이 나란히 걷는 것은 조금 힘들 만큼. 왕궁과 힌두 사원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는데 다들 설명에는 관심이 없다. 차낭과 함께 소원을 빌고픈 생각뿐. 후두둑 비가 내린다. 때마침이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건가. 꽤 많이 내린다. 서둘러 차낭을 내려놓고 짧은 기도를 한다. 다들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소원은 이루어질까?


차낭을 만들었던 자리로 돌아오니 왕가 여인들이 뜨끈한 커피와 요기가 되는 전통 주전부리를 준비해놓고 기다린다. 후텁지근한 날씨지만 차가운 것보다 이렇게 뜨끈한 커피가 갈증을 풀는 데엔 더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왕가의 어린 여자 아이들이 추는 전통 춤을 잠시 감상한다. 그때 몇몇이 녜삐 데이 Nyepi day 이야기를 꺼냈다.


발리는 힌두력 사카 Caka를 기준으로 시간을 가늠하는데 녜삐 데이는 우리로 치면 설날에 해당하는 최고의 명절이다. 우리나라 음력처럼 매년 날짜가 조금씩 달라진다. 이 녜삐 데이에는 모두가 일손을 멈추고 침묵한다고 했다. 자연의 빛 외에는 어떤 빛도 허용되지 않는다. 음식을 해먹을 수도 없다. 기도를 통해 자기 성찰을 한다.

관공서도 문을 닫는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여행자들을 토해내는 공항도 멈춘다고 했다. 여행자들이 묵고 있는 호텔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삐 움직이지만 호텔 밖의 발리는 어둠과 고요뿐이라고. 그래, 가끔은 침묵 속 고요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지. 녜삐 데이를 겪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싫은 티를 있는 그대로 표출하던 일행들 사이에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나에게 가르마디 씨가 조용히 묻는다. "worth to visit?" 궁금했나 보다. 나는 말 대신 아주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리고 녜삐 데이가 기대된다고 말해주었다. 그가 웃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발리 현지에 있는 친구와 연락을 하다 그가 가르마디 씨와 잘 아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1% 발리 힌두 문화를 열심히 알려주려던 가르마디 씨를 칭찬하자 그 친구가 의아하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정말? 허, 의외네. 가르마디 씨 완전히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순간 허를 찔린 듯한.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오히려 웃음이 났다. 그리고 크리스천 가르마디 씨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여행자들이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고 정말로 발리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려 애썼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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