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의 '먹을텐데'를 보며 새삼 반가웠던 노포의 서사
요즘 성시경 먹을텐데 때문에 '술욕'이 생겨나고 있지만 마시고 힘든 것보다 참는 게 견디기 수월해진 걸 보면 확실히 세월 무상.
방송의 힘이 크지 싶다. '노포'라 하면 으레 오래된 (원조) 맛집을 떠올리게 된 것이. 글자 그대로를 놓고 보면 '포鋪'는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곳을 지칭한다. 지난해 출간한 <또 올게요, 오래가게>를 준비할 때 음식점에 국한하지 않고 가능한 다양한 업종을 아우르고 싶었던 이유.
한편 전통·문화유산·풍속 같은 주제를 글로 다루어 온 영향일 텐데 제철 식재료로 잘 해먹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제법 듣는다. 친구들이 들으면 기가 막혀 할 일. 맛있는 걸 마다하진 않지만 줄 서서 기다리는 거 싫어하고 맛있는 걸 정신없이 먹기보다는 맛이 좀 덜해도 쾌적하고 편히 먹는 걸 선호하는 편. 여행을 가서도 맛집 찾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간편식으로 때우고 시간을 버는 게 더 좋은 사람.
그럼에도 알지. 그 맛.
성시경의 먹을텐데에 소개된 대성집은 2009년에서 2010년으로 넘어가는 즈음 처음 문턱을 넘은, 내게는 겨울의 맛이고, 홍시 같은 맛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달큰한 감홍시 맛이 났다는 게 아니다. 눈발이 날리는 한겨울이었고, 경희궁과 덕수궁 일대의 근대기 이야기와 문화공간들을 한데 담아내야 했던 <새문길, 시간을 걷다> 책자 작업으로 그 일대 골목골목을 부지런히 쏘다녀야 했던 때. 1950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대성집은 새문길 터줏대감격이었고, 언제 진행될지 모를 재개발로 언제 이전할지 모를 상황이었으니 가보아야만 하는 곳이기도 했다.
도가니탕과 수육. 딱히 먹을 일이 없었던 음식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 손잡고 다닌 단골이 아니라면 20대 손님이, 그것도 혼자서 부러 찾아가긴 어려운 곳 아닌가. 식사시간을 피해 간 그곳에서 도가니탕을 내어준 이모님께서는 "먹을 줄 알어? 먹어봤어?" 하며 밥공기 뚜껑을 열어주셨다. 소주잔 기울이는 아저씨들 사이에서 어색할까 한술 두술 뜰 때마다 "맛있어?" " 먹을만 해?"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이거 좀 이해는 안 되지만 나훈아의 <홍시>가 귓가에 자동 재생된다.
그 대성집이 성시경이 그의 아버지와 함께 다닌 단골집으로 소개가 되었고, 누가 많이 먹나 경쟁이 아닌 좋은 사람과 먹은 맛있는 음식을 '맛있지? 맛있지?' '맛있다! 맛있다' 하며 먹는 그 모습, 그 서사가 내게는 침 삼켜지는 일.
재개발로 부득이 이전을 한 후로는 가보지 못했다. 낡은 전등 스위치, 높낮이가 달랐던 바닥, 언덕배기의 그 전경... 그런 것들이 사라진 대성집이 잘 그려지지 않아서. 그런데 어쩐지 다시 가도 좋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