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의 나는 대한민국 교사입니다.
한국이 싫어서. 이름만 봐도 내가 쓴 이야기인가 싶었던 영화. 그 주인공에게는 어린 시절 내가 보고 느꼈던 과거가 담겨있다.
중학교 2학년 사춘기가 왔던 무렵, 나는 부모님께 선언했다.
"미국 보내주세요."
아빠의 외벌이로 4인 가족이 먹고살았던 우리 집에 해외 유학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리고 학교 성적은 계속 떨어져 갔고, 학업에 대한 흥미보다 일탈, 부모님에 대한 반항으로 집을 나서는 일상이었다.
엄마는 한창을 고민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대학 가면 보내줄게. 그때는 교환학생 제도가 있으니까 엄마 아빠가 조금은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아."
대학생이 되자마자 나는 학과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다. 진정으로 내가 원하던 서울의 삶이 펼쳐지고 있었다. 미팅, 소개팅, 그리고 부모님 없이도 서울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자유. 그 자유가 참 좋았다.
첫 미팅 때 나의 첫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그와는 한 100일 정도 만났던가.
아주 잊을 수 없는 첫 남자 친구이다. 그 이유는 크리스마스 전전날 나에게 헤어짐을 고했기 때문이다.
참 많이 서툴렀고, 그렇다고 내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는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원래 첫사랑은 그런 것이라고 많은 친구들이 위로를 해 주었고 헤어짐과 동시에 나는 종로에 있는 토플학원에 등록했다. (오히려 헤어진 게 잘 된 것일 수도)
그렇게 나의 첫 대학생 겨울방학은 종로에서 보냈다. 2학년 2학기에는 교환학생을 갈 수 있을 것이란 부푼 마음과 기대에 어렵고 힘들었지만 영어 공부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했다.
그렇게 나는 3월 학기가 시작하기 전 토플 시험을 봤고, 엄청 높은 점수는 아니었지만 교환학생 원서접수에 충족된 점수를 받고 3월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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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의 삶은 정말 내가 생각한 것처럼 재밌었다.
금요일은 파티의 밤이기도 하지만, 한인교회 금요 예배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아마 학기가 시작된 첫 주, 둘째 주에는 금요일 예배에 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더 놀고 싶었고, 종교활동을 할 것이라는 건 아무래도 전형적인 코리안 스타일인가 싶어서.
파티도 한두 번이지, 무엇보다 그렇게 놀고 싶지는 않았다.
흔히 생각하는 미국 대학교 기숙사 파티 문화는 생각하는 그대로다. 아마 내가 서양인이 아니기에 그 문화에 더 자연스럽게 흡수되기도 힘들었던 것 같다.
기숙사에서 술에 잔뜩 취하고(1차) 주변에 술집(바)에 가서 논다(2차). 그리고 3차 다시 기숙사로 돌아와 다양한 활동들을 한다. 이 모든 게 나와는 잘 맞지 않는 옷이고,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나와 마음과 뜻이 잘 맞는 한 친구를 만나 근처 교회에 등록을 하였다.
이전에 나는 교회에서 봉사를 오래 한 일도 없었다. 하지만 금요일에 했던 한글학교 봉사는 훗날 나에게 교직의 뜻을 품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 되었고, 실제 교사가 된 지금도 그때 나를 잘 따라주었던 어린이들이 생각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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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한국에 돌아왔을까? 왜 나는 교사일까?
이 두 가지 질문에는 내 인생이 담겨있고, 내 광야의 흔적들이 담겨있다.
오늘도 나는 학교에 다녀왔다. 가장 빨리 졸업하고 싶어서 대학교 때는 휴학과 복학, 졸업유예라는 제도도 활용하지 않고 졸업을 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고,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니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이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이 말은 참인 명제인데, 그들은 그들의 부모님의 거울이기에 희망이 없어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그리고 그 희망 없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행동에 교정이 필요해 보이는 아이들, 마음이 아픈 아이들, 이미 선을 넘어버린 아이들...
한 명의 교사가 할 수 없는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교육의 3주체인 학교, 교사, 학부모님이 잘 협력해야 하는데 참 그게 말이 쉽지 될리가 없다. 바로 옆 동료선생님과의 합을 맞추는 일도 정말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단 한 명의 동료만 잘 만나도 1년의 학교 생활에 큰 위안을 얻는다. 사실 아이들을 비롯한 학교의 이해관계자들과의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 한 명의 선생님 덕분에 위로가 된다. 그 한 명의 선생님 덕분에 학교를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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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제 외국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멈춰버린다.
나에게 외국은 방황, 일탈, 그리고 끝없는 것처럼 보였던 자유의 장소였는데 그 자유라는 것에는 참 많은 책임과 희생이 따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실적으로 많은 돈이 든다는 점에서 이제는 쉽사리 비행기 티켓을 끊지 못하겠다.
한번 갔을 때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을까 봐. 어린 시절 내가 품었던 외국에 대한 동경이 다시 살아날까 봐.
그때 나는 여기 남겨진 가족들을 두고 혼자 떠날까 봐.
나를 훨훨 날아다니게 할 수 있는 것은 비행기도 아니요, 내가 맡은 업무도, 아이들도 아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 나는 그냥 공부가 좋은 사람인 것 같다.
회사에서도 물론 공부라는 게 있겠지만, 배움에 뜻을 둔 대한민국 국민 나는 오늘도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아이들과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