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늦지 않았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감추며 살아왔다.
좋은 딸,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내 마음과 감정을 억누르고,
싫은 것도 좋다고 말하며 살아왔다.
그 시간 속 나는 늘 가면을 쓰고 있던 나 자신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가면 속 삶은 나를 잃게 할 뿐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그 가면을 벗고,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나는 스스로를 평화주의자라 믿어왔다.
갈등이 싫어 남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했고,
싫은 것도 좋다고 말하며 내 감정을 숨겼다.
일종의 가면을 쓰고 살아온 셈이다.
그러나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가던 그것들은
어느 순간 임계점에 다다랐다.
갱년기가 시작될 즈음이었을까.
나는 더 이상 남편의 의견에만 순응하며 살고 싶지 않아 졌다.
너무 늦은 자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결혼 생활 내내 남편을 중심으로 살았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어머니의 삶이 그러했기에,
여자로 태어나 결혼하면 으레 그래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 선택의 결과가 지금의 나다.
사람의 팔자가 생년월일에만 매여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어느 정도의 운명은 정해져 있을지 몰라도,
그 길을 그대로 따를지 혹은 저항할지는 결국 나의 선택이다.
부모 운은 선택할 수 없지만 배우자 운은 달랐다.
나는 그 중요한 선택을 너무나 쉽게 해 버렸다.
그때까지 내 인생이 물 흐르듯 쉬웠기에,
앞으로도 계속 평탄할 것이라 자만했던 탓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한 적도 있다.
남편과 나는 서로에게 '로또' 같은 존재다.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게 없다.
외향적인 남편과 내향적인 나.
트로트를 즐기는 남편과 클래식을 사랑하는 나.
여행을 가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과
집에서 책을 읽으며 쉬고 싶은 나.
남편은 삶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고,
나는 책과 인문학 강의에서 길을 찾는다.
처음에는 이런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힘들었다.
내 가치관만이 정답이라 믿었기에 남편이 ‘틀렸다’고 생각했고,
그가 변해야만 우리 관계가 바로 설 것이라 믿으며
스스로를 괴로움 속에 가두었다.
하지만 긴 시간을 통과하며 비로소 깨달았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서로 ‘다름’의 문제라는 것을.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내가 항상 옳다’는 오만한 마음,
나의 교만이 꺾였다.
남편과의 인연은 어쩌면 피할 수도 있었던 길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피하지 못했고,
그 선택의 책임은 결국 내가 져야 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고단한 과정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의 모난 부분을 깎아낼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작은 사람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완벽함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내 삶의 태도를 바로 세우고 싶다.
순종으로 살아온 지난 세월의 대가를 치르고 있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어쩌면
처음으로 ‘진정한 나’를 선택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혹시 지금 스스로를 너무 작게 여기고 있는 분이 있다면
말하고 싶다.
우리 같이 성장해 보자고.
내가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결국 우리를 성장시킨다고 말이다.
나는 오늘도 서툴지만 단단하게,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연습을 이어가는 중이다.
나의 진짜 인생 2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