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직장. 예상하지 못한 시작
캐나다에서 한인들이 많이 종사하는 직종 중 하나는
일식 관련 일이다.
캐나다에서는 일식이
고급 음식이면서 동시에
건강한 음식으로 인식되는 편이다.
아이들이 중학생쯤 되었을 때,
이제는 나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분의 소개로
집 근처 새로 생기는 큰 마켓 안에
스시 키오스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어디서나 사람과의 인맥은 중요하다.)
이 직장과 내가 인연이 닿으려 했던 건지,
마침 그 시기에
이 마켓이 새로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 인터뷰를 했을 때는
건물조차 아직 지어지지 않았고,
이제 막 뼈대가 올라가고 있는 단계였다.
인터뷰 후 한 달 가까이 아무런 연락이 없어
‘정말 시작은 하는 걸까?’
‘이 건물, 제대로 완공되긴 하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개점 시기가 다소 늦춰졌을 뿐,
건물은 결국 완공되었고
마켓은 그랜드 오프닝과 함께 문을 열었다.
그렇게 나는
스시 셰프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픈 당시 직원은 열 명 남짓이었고,
트레이닝을 담당해 주시는 분과 함께 일을 배웠다.
인터뷰를 하고 마켓 오픈을 기다리던 중
사장님께서 나에게
'리더' 역할을 맡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억지로 예상해보자면
사장님은 한국말이 서툰 교포 2세였고
그래도
같은 한국인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나는 얼떨결에
‘리더’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다.
본사는 차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고,
여러 지역에 프랜차이즈 지점들이 생기고 있던 시기였다.
그중 한 지점을 맡게 된것인데,
오픈 당시 '이 구석진 곳에 손님이 올까?' 하던
예상과 달리 첫날부터 손님이 몰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물량을 감당하느라
정말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트레이닝시키느라
트레이너분도 고생이 많았고,
나 역시 갑작스럽게 맡은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곳에서의 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연어가 통째로 들어오면
사시미용과 스시용 및
마끼용으로 손질하는 것부터 시작해
밥을 짓고 모든 재료를 준비하고 포장해야 했다.
아보카도를 비롯한 야채,
냉동 해산물 손질은 물론
각종 소스와 간장,
와사비까지 직접 만들어
정해진 기준에 맞게 채워 넣어야 했다.
휴—

정말 할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시작한 정규직이었고,
육아 중심의 생활에서 벗어나
세상 밖으로 다시 나왔다는 느낌에
모든 것이 새롭고 설렜다.
마끼를 만드는 일은 한국인인 나에겐
너무 쉬운 일이었다.
(사실 한국 주부라면 누구나 손쉽게 만들수
있는 음식이 김밥 아닌가.)
다양한 생선을 얹어 각양각색의 모양을 낸 스시는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웠다.
역시 음식은 눈으로 먼저 맛을 본 뒤,
입으로 그 깊이를 음미하게 된다는 말이 맞는가보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다양한 국적의 아시안 사람들이었는데,
마끼를 일정한 모양으로 만드는 일을
어려워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사람마다 손의 감각이 다른듯하다.
처음에는
냉장 진열대에 들어 있는 마끼를 보며
‘이 차가운걸 어떻게 먹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걸 사는 사람들도 신기해보였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 아니었다.
그당시 기본적인 캘리포니아 롤 한 줄이
7불 정도였으니.
그런데 이곳 사람들은
막 만들어서 따뜻한 마끼보다
냉장 보관된 차가운 마끼를
오히려 더 안심하고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만들어 주겠다고 해도
괜찮다며
진열대에 있는 것을 고르는 손님도 있었고,
진열대의 갓 만든 따뜻한 스시나 마끼보다
차가운 상태의 스시를 골라갔다.
이 역시 생활 방식과 문화의 차이인가보다.
다행히
우리 스시와 마끼가 맛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손님들의 과장된 칭찬이겠지만
레스토랑 못지않다는 말도 종종 들었다.)
마키는 채워놓기가 무섭게
금세 팔려 나갔다.
개인적으로 가장 낯설었던 점은
(사실 이해가 안갔던 점은)
그날 팔리지 않은 마끼와 스시를
다음 날 오전 11시까지
30% 할인해 판매하라는 마켓 매니저의 지시였다.
지금도 캐나다의 많은 마켓에서는
전날 만들어진 스시를
다음 날 오전까지 판매한다.
한국의 기준으로 보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이곳에서는 실제로 수요가 있고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식이기에
이런 판매가 통하는듯 하다.
(요즘은 냉동 마끼나 김밥도 보편화되고 있으니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것 같기도..)
그렇게 정신없이 그러나 즐겁게
시작된 나의 스시 셰프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예고하고 있었다.

[연재 안내] 스시 셰프의 직장 경험기는
매주 금요일에 발행됩니다.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