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때가 있다.
10대에는 10대에 깨닫고 느끼는 것이 있고
20대 때에도 또 그 나이에 배우는 것이 있다.
각각 나이에 맞게
온몸으로 겪어내야 할 혼란과 미숙함이 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의 정답'을 미리 알았더라면
시행착오를 줄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모는 자신의 시행착오를 거울삼아
10대의 아이에게 정성 어린 조언을 건넨다.
하지만 그 조언은
대부분 아이의 닫힌 귓가에서 흩어지고 만다.
아무리 부모가 자식들에게 조언을 해줘도
그걸 아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 조언은 그저 아이에게 잔소리일 뿐이다.
사춘기가 된 아이들은 부모 말엔
귀를 막아버린다.
도움 되라고 꺼낸 말에
아이와 사이만 나빠질 뿐이다.
인간은 운명적으로
다 깨달을 수 있는 준비가 되고
때가 되어야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인다.
아무리 누군가 좋은 이야기를 해줘도
그걸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소용이 없다.
성경에서도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진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선포되지만,
그것을 내 삶의 양분으로 삼는 것은 오직
'들을 준비'가 된 자의 몫이라는 뜻이다.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 건네는
황금 같은 조언은
결국 '소귀에 경 읽기'와 다를 바 없다.
몇 년 전,
지인의 추천으로 샀던 책 한 권이 있었다.
당시에는 몇 장 넘기지도 못한 채
"나랑은 안 맞네"라며
책꽂이 구석에 밀어 넣어두었다.
그 지인에게는 인생을 바꾼 책이었을지 몰라도,
그때의 나에게 그 글귀들은
별 의미 없는 활자의 나열일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먼지 쌓인 책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다시 그 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무심코 펼친 한두 장의 페이지에서
나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가슴을 툭 치고 들어오는 주옥같은 문장들.
"왜 이걸 내가 지금껏 안 읽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은
그 문장을 받아들이는 나의 '시간'이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그 깊이를 헤아릴 만한 삶의 굴곡이
내게 없었거나,
혹은 그 문장이 필요한
결핍의 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며 겪은 수많은 감정과 사건들이 비로소
그 책의 언어들을 내 마음속으로
'확' 끌어당기는
자석이 되어주었다.
모든 것은 정말로, 때가 있다.
이 사실은 곧
'내가 겪어야 할 일은
기어이 겪어야만 한다'는
숙명론적 성찰이다.
우리가 인생의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에서 아무리 현명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어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만약 그때 그 조언을 받아들였다면
고통의 터널을 훨씬 빨리 빠져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그때는 아무것도 안 들렸을까.
그것은 아마도 내가
그 고통을 온전히 통과하며
스스로 깨달아야만 하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름길로 가면 배울 수 없는 풍경이 있고,
직접 부딪쳐 깨지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이 있다.
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는 고난이나,
누군가의 조언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계절이 있고,
우리가 겪는 모든 시행착오에는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우리는 그저 오늘이라는 시간을
충실히 겪어내며,
언젠가 찾아올 '깨달음의 때'를 기다릴 뿐이다.
열매가 익기 위해 뜨거운 태양과
모진 비바람을 견뎌야 하듯,
우리의 영혼도 자신만의 때를 향해 묵묵히 익어가고 있을 것이다.
인생의 계절을 견디고 있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저의 이어지는 '서툰 철학' 이야기는 다음 주 화요일에 발행될 예정입니다.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