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네 것이 아니야

잠시 빌려 쓰는 이 땅에 나는 썩지 않는 흔적만 남기고 있었다.

by 아이리스 J

이 글이 여기에 들어가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면서

생각해 보았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2020년, 예고도 없이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왔다.

당시 나는 월마트 내부에 위치한

'스시 키오스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일하며 나는

매일같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담긴

쇼핑카트를 무심히 바라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라면

식재료와 생필품이 골고루 담겨 있어야 할

카트 위에,

화장지 꾸러미를 산더미처럼

싣고 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한두 명의 유난스러운 행동이 아니었다.

손님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화장지를 몇 꾸러미씩 사들고

안심하는 모습으로 계산대를 빠져나가곤 했다.

그리고 나면

언제나 넉넉했던 화장지 진열대는

마치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처럼 처참하게 비어 있었다.

그들이 담은 카트 속의 과도한 화장지들은

화장지가 아니라 '불안한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가득 소유함으로써

통제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공포를 잠재우려 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일주일이 지속되니까

'대체 팬데믹인데 음식을 사가는 게 아니고

(음식들도 많이 팔렸지만)

왜 화장지를 사가는 걸까?'

웃기다고 생각했던 나도

슬쩍 가서 화장지 제일 큰 꾸러미 하나를 사가지고

그날 집으로 돌아갔다.

sticker sticker

이렇게 팬데믹이 지나고

티브이에서 여러 다큐를 보게 되었다.

코가 짓물러 피를 흘리는 바다거북의 콧구멍 속에서

10cm가 넘는 플라스틱 빨대가 뽑혀 나온다.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썼던 마스크는

팬데믹 이후 또 다른 재앙이 되었다.

영국의 한 해안가에서는 갈매기의 발이

마스크 귀걸이 줄에 꽁꽁 묶여

괴사 직전 상태로 발견되었고,

수많은 수중 생물이

마스크를 먹이로 착각해 삼키다 목숨을 잃었다.


우리가 누린 안전한 일상의 뒷면에는

이토록 잔인한 풍경이 숨어 있었다.

태평양 한가운데 떠 있는 거대한 옷 쓰레기 섬은,

우리가 '취향'이라는 이름으로 탐닉했던

욕망이 낳은 기괴한 대륙이다.

그뿐인가?

우리가 버린 미세 플라스틱은

다시 먹이사슬을 타고

우리의 식탁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제 묻게 된다.

과연 지구는 우리의 것인가?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착각 속에 살고 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거대한 땅과 푸른 바다가

마치 인간의 전유물인 양.

경계를 긋고 이름을 붙이며 '내 땅'이라 주장하고,

필요에 따라 산을 깎고 강을 메우는 행위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해 왔다.

하지만 진실은 명확하다.

우리는 이 행성의 주인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일뿐.


우리가 주인 행세를 하며 함부로 휘두른 권력은

자연에게 잔혹한 상처를 남겼다.

이제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지구에 대한 '손님의 예의'를 갖춰야 할 때이다.

지구가 인간에게 베푸는 자원은

무한한 화수분이 아니며,

동식물은 우리가 지배할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지구의 자원을 '내 것'이라 여기며 독점하기보다,

다음 세대와 다른 생명체로부터

잠시 빌려 쓰고 있다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품을 사용하고,

유행을 따르기보다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불편한 선택'이 지구에게는 가장 큰 배려이다.


캐나다에서 이민 생활을 하고

맞벌이를 하면서,

편안한 배달문화와

다양하면서 영양까지 챙겨 만들어지는 밀키트 상품을

쉽게 이용하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었다.

(여기선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끼 모두 보통 주부의 몫이다.

그뿐인가?

아이들 도시락까지

가끔은 남편 도시락까지 싸야 한다.)

그러던 중 여기도 밀키트를 만들어

배달해 주기 시작했다.

첨엔 '오~ 이런 천국이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일주일마다 메뉴 바뀌어 배달되는

밀키트를 열심히 주문해서 먹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밀키트가 담겨있는 플라스틱 컨테이너를

보는 마음의 불편함이 스믈 스믈 올라오기

시작했다.

컨테이너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일주일치 음식을 담으려면 큰 통 작은 통해서

10개 이상의 플라스틱 컨테이너 쓰레기가 나온다.

그전엔 쓰레기 수거날에도

우리 재활용 쓰레기통엔 쓰레기가 많지 않았는데

밀키트를 시키고 나서부턴

재활용 쓰레기통이 넘쳐나서 산을 이 룰정도였다.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이 땅에 묻혀서 썩으려면

100년도 더 걸린다는데..

고민 끝에

더 이상 밀키트를 오더 하지 않기로 했다. ㅠ.ㅠ

솔직히 첨엔,

'뭐 나만 그래? 다들 일회용 쓰잖아?

나 한 명 줄인다고 뭐가 바뀌어?'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건 조금이라도 더

편해보고자 하는 나의 양심을 누르는 이기심이었다.

지구라는 거대한 정원에 초대받은 손님으로서,

우리는 떠날 때 어떤 모습을 남겨야 할까?

쓰레기와 오염으로 얼룩진 폐허일까,

아니면 처음 왔을 때처럼 푸르고 싱그러운 모습일까?


지구는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연을 학대할 때,

결국 그 화살은 가장 약한 고리를 타고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제는 '정복자'의 마음을 내려놓고,

지구의 따뜻한 보살핌에 감사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현명한 손님'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아름다운 푸른 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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