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나면 마당은 전쟁이다.
잔디 사이나 안 보이는 구석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잡초들이 비를 맞고 쑥쑥 자라 온 마당을 점령하려고 하는데 이때를 놓치면 끝장이라, 흙으로 네일아트 할 준비를 단단히 해야만 한다.
준비물은
모자 (환경을 핑계로 선크림을 잘 안 바르니 이거라도 챙긴다),
장갑 (잡초 뿌리 찾기에 거추장스러워 어차피 벗어던지겠지만 우선은 챙겨 나간다),
잡초 제거기 (단단히 박혀 힘으로 안 되는 잡초 뽑기에 요긴한 아이),
잔디 가위 (유독 길어졌거나, 제초기로 깎을 수 없는 곳의 잔디는 이 아이를 이용해 손수 깎아줘야 한다.)
마당 살이 처음에는 비만 오고 나면 잡초가 무성해 지는 탓에 비 오는 게 싫었는데, 어차피 구석구석 숨어 때를 노리던 잡초가 눈에 보일만큼 자라게 해 뽑을 기회를 주니 비를 원망만 할 건 아니었다. 게다가 비에 젖은 땅에 공극이 생기면서 쑥쑥 자란 잡초들이 쑥쑥 뽑히니 다행스럽기도 하다.
다만, 내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이쯤이면 잡초들도 꽃을 피우고 씨를 맺기 때문에, 이 아이들을 내년에 덜 만나려면 모조리(는 불가능하지만) 뽑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개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거리는 마당에 제초제를 뿌릴 수 없어 이 타이밍을 놓치면 잔디밭이 아닌 잡초밭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라, 허리가 뽀개지고 똥X가 나오더라도 (잡초 뽑느라 몇 시간씩 앉아 있다 보면...... 하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 더한 화를 면하기 위해서는 뽑아야 한다. 뽑게 될 것이다. 눈 돌리면 계속 보이는 잡초를 그냥 둘 수가 없어 저것만, 저것만 하다 보면 일어날 수가 없으니 겁먹지 말고 시작만 하면 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잡초들은 뿌리가 크고 단단해 뿌리째 뽑기가 쉽지 않은 민들레, 쇠뿌리 같은 애들이나 땅바닥에 낮게 기어 다니는 애들이다. 땅에 한 번 퍼지기 시작하면 그 뿌리를 찾아 헤매는 것도 문제지만, 땅을 다 덮어버리는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더 말하고 싶지도 않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고 싹이 나면, 언 땅을 뚫고 나온 그 초록의 새싹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마당에 노지 월동되는 아이들을 내가 심어놨지만, 처음 집에 들여온 아이는 그 새싹이 아니었으니 처음엔 뭐가 뭔지도 몰라 매번 남편을 붙잡고 물었다.
"오빠, 이건 뭐야?"
"잡초"
"너는 다 잡초라고 하냐? 제대로 아는 거 맞아? 짜증 나게 다 잡초래."
잡초라고 대답하는 순간 오빠에서 너로 변한 남편이 말한다.
"우리가 심지 않은 건 다 잡초야."
뭐래, 짜증 나게.
살다 보니, 남편의 말이 맞았다. 물론 간혹 씨가 날아와 꽃을 피우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심은 자리가 아닌 곳에서 나오는 아이들은 그게 아무리 예쁘더라도 잡초로 간주하게 되더라.
담 밖 조경석 틈에 얻어 심은 돌나물은 어느새 담장 안으로 기어 들어와 자리 잡고 있으니 뽑아야 하고, 쑥이나 냉이도 요리해 먹을 거 아니니 뽑아낸다.
가시 때문에 담장 밖에 심어둔 두릅도 뿌리가 담장을 넘어 들어와 싹을 틔우면 뿌리 채 잘라내야 하고, 작은 열매 하나하나가 씨앗인 오디, 산딸기도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 나오는 애들은 보이는 족족 뽑아내야 한다.
국화는 또 얼마나 무서운 아이인가. 자리를 옮겨 주려고 파내면 조금이라도 남은 잔뿌리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자라날 뿐 아니라 퍼뜨리기도 잘 퍼뜨려 조심해야 한다.
제비꽃은 한번 퍼지면 끝장나니 눈에 보이는 순간 제거대상이다.
일년초인 메리골드는 여름부터 늦가을까지 진짜 예쁘게 꽃을 피워 나를 행복하게 하지만, 자연 발아할 뿐 아니라 자생력도 커서 씨앗 떨어진 곳곳이 메리골드 밭으로 변하게 되어 진정 메리골드 지옥을 보여준다. 내가 심은 자리가 아니면 뽑아야 한다.
이외에도 마당 밖에서는 예쁜 꽃이지만 마당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주체 못 하고 퍼지는 아이들이 여럿인데, 아무리 예쁜 꽃이라도 자기 자리를 벗어나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를 못하면 한낱 잡초일 뿐이다.
오늘 난 잡초를 뽑으며 적시적지(適時適地 알맞은 시기와 장소),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