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린이들에게 필요한 건 뭐다?

by 박대노

가족이 함께 미술학원을 다닌 지 3년이 넘었지만 (코로나로 거의 1년 넘게 못 갔지만 시작은 2019년 초였다.) 가족이 함께 하기 때문에 어떤 점이 좋다고 얘기할 거리는 없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그림을 그리다 오는 미술학원은 사실 같은 공간에 있을 뿐, 같이 한다는 느낌은 없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가 그리고 있는 그림을 봐주는 정도일 뿐, 학원을 나오는 순간 그걸로 끝이니 함께 해서 좋다기보다는 각자의 시간으로 만족할 취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검도는 달랐다. 검도는 함께 하는 시간 내내 같은 동작을 배우고 서로의 자세를 봐주고 또 같이 땀을 흘리며 힘들다 보니 운동을 하면서도 운동이 끝나고 나서도 할 말들이 많다. 서로의 잘못된 자세를 놀리느라, 자기가 생각하는 습득 노하우를 전하느라 웃음과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 미술처럼 막연히 함께해서 좋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웃고 떠드는 시간 속에 유쾌한 전우애(?) 같은 감정이 생긴다.


남편과 나는 그동안 운동을 너무 오래 쉰 탓에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나야 몸치인 데다가 워낙 골골대는 걸로 유명하지만, 어릴 때 태권도, 주짓수, 격투기 등을 배웠다는 남편 역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자세를 바로바로 몸에 익히지 못했다. 반면, 딸아이는 첫 수업부터 수석사범님이 키우고 싶다 하실 정도의 바른 자세로 우리를 기죽게 만들었는데, 다행히(?) 딸아이가 손바닥이 아프니, 허벅지가 아프니 꾀부림을 피우는 탓에 계속 고만고만하게 셋의 실력이 (하향)평준화될 수 있었다.


몸치일 뿐 아니라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검도관에서만 최선을 다한다. 검도관에서는 시키는 대로 어떻게든 해내려고 악을 쓰고 하지만, 검도관을 나오는 순간 "검도 안녕~"이다.

남편은 진짜 열심히 한다. 동영상을 보고 혼자 호구 쓰는 법을 예습하기도 하고, 잘 안 되는 동작을 분석하고 공부할 뿐 아니라, 저녁마다 죽도를 들고 연습하고 연습한다. 남자인지라 힘도 우리보다 좋을 수도 있어서, 처음엔 남편만 진도를 빠르게 나가 내 자존심에 금 가지는 않을까 심히 우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남편은 기합과 검의 타격과 발구름을 일치시켜야 하는 기검체의 밸런스가 안 맞았다. 박치라서 그런가? 그래서인지 사부님들은 남편이 제일 문제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곤 하셨다.


손동작이 되면 발동작이 어렵고, 발동작이 맞으면 기합의 타이밍이 안 맞는 등 새로운 걸 배울 때마다 뭔가의 문제점이 계속 생기니 서로의 자세를 보며 이게 어떠니 저게 어떠니 참 말도 많다. 칭찬 한 마디 들으면 그걸 가지고 잘난 척을 해가며 '내가 더 잘한다'를 외친다. 그래서 각자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정신승리* 방법이 있는데, 딸아이와 나는 사부님들에게서 들은 말을 근거 삼아 떠드는 반면 남편의 정신승리 방법은 근본이 없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딸: 내가 열심히 안 해서 그렇지, 내 자세가 제일 좋다고 하는 거 들었지? 수석 사부님이 나 키우고 싶으시다잖아! 이게 아빠처럼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나: 지난번 A 사부님이 나 봐주시면서 요즘 가르쳐 본 애들 중에 내가 밸런스가 제일 좋다 하셨어! 내가 때리는 힘이 좋은 게 다 그 밸런스가 잘 맞아서 그런 거야. 니들이 밸런스를 알아?

남편: 니들이 모르는 게 있는데 나는 스펀지야. 사부님들이 가르쳐주는 것들을 스펀지처럼 쫙쫙 흡수한다고. 사실은 사부님들이 내 실력에 깜짝깜짝 놀라고 있는데, 니들 상처받을까 봐 표현을 안 하시는 거야.

딸과 나:.......


*정신승리: 본인에게 불리하거나 나쁜 상황을 좋은 상황이라고 왜곡하여 정신적 자기 위안을 하는 행위이며 실상은 자신의 망상으로만 이기고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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