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당해야 할까요?

가족 웹툰 제작기

by 박대노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일상 속에서 재미있는 우리만의 얘기를 그냥 한번 웃고 넘어가는 것이 아닌, 우리만의 이야기로 남기고 싶었다. 거창하거나 의미 있는 이야기가 아닌 만큼, 일상툰이라는 형식으로 가볍게 접근하고 싶었다.


우리의 이야기인 만큼, 가족 모두가 참여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두의 동의를 얻어 그렇게 가족 웹툰을 그려 나가기로 하고, 주 1회 웹툰 제작 회의를 하기로 했다.

소재를 찾아 내용을 구체화하는 것은 가족 모두가 참여하고, 회의 내용을 정리하여 러프(그림의 시작 단계에서 구도나 묘사를 대략적으로 그려내는 일)를 만드는 일은 내가 하기로 하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또 우리 중에 제일 잘 그리는 딸아이에게 그림 작업을 맡겼다.



모든 일에 열정적인 나와 달리, 마냥 여유롭기만 한 남편과 딸아이는 약속시간이 되어도 회의를 준비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회의 10분 전에 알람을 울려주어도 함흥차사인 것은 마찬가지. 이들을 질질 끌고 가서 자리에 앉혀 놓는 것부터가 회의의 시작이 되었다.


회의를 시작한 지 5분쯤 지나면, 남편은 비스듬히 눕는다. 딸아이도 남편의 비스듬한 각도에 맞춰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내가 찾아온 글감을 설명하고, 러프를 그리며, 적절한 대사를 읊어대는 동안 그들은 그렇게 왼쪽 귀로는 내 말을 듣고, 오른쪽 귀로는 내 말을 흘린다.


첫 회의에서는 웹툰의 제목을 정하고, 캐릭터를 설명하는 그림을 그리기로 하였다. 남편과 딸아이, 우리 집 멍멍이 3에 나까지, 각각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캐릭터를 설명하고 다음 주 회의까지 그려보라고 딸아이에게 주문하였다.


러프를 그린 노트를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토요일에 첫 회의를 하였는데, 목요일이 지나도록 러프 노트는 식탁 위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금요일이 되어, 참을 만큼 참은 내가 물었다.

“웹툰 캐릭터는 안 그릴 거야?”

“아니. 그릴 거야.”

잔소리가 듣기 싫었던 딸아이는 노트를 자기 방으로 가져갔지만, 웹툰을 그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딸아이의 방에서 춤추며 노래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 것으로 미루어 보아, 거의 확실하게 그리지 않은 상태였다.

사춘기 딸아이를 자극하기 않고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을 더 주어야 할 것 같았다.

토요일로 잡아둔 2번째 회의를 일요일로 연기했다.

변경된 회의 일정을 알려주며, 회의 때 캐릭터 작업을 대충이라도 끝내 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요일 오후 2시, 약속의 시간이 되었다.

10분 전부터 회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려주고, 시간이 다 되었을 때는 남편과 딸아이를 질질 끌고 가서 자리에 앉혀 놨다.

난 잔소리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비장하게 캐릭터 작업물을 요청했다.


할 말이 없었다.

분명 어제 30분도 끼적인 것 같지 않은데, 딸아이가 그려온 캐릭터는 내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잘 빠졌다. 어차피 전문가도 아닌 우리끼리의 놀이터에 이만한 성과물이라니! 게다가 30분 끼적거린 수준이 이 정도라면, 내 기준에서 우리 아이는 천재가 분명했다!

잔소리로 무장되어 있던 내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신이 나서 다음 작업할 내용을 설명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바짝 붙어 앉아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비굴한 자세로 부탁했다.

“딸아. 요건 요로케 해주고, 저건 조로케 표현해줄 수 있어?”

딸아이는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채팅을 하며 건성건성 대답했다.

“알았어. 러프 노트에 적어서 식탁 위에 갖다 놔.”




2번째 회의 후 2주가 지났다.

1주가 지나서 요청 작업을 다 했는지 물었을 때, 딸아이는 금방 할 것처럼 대답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물론 중간에 코로나19 확진이라는 변수가 있었지만, 무증상의 딸아이에게 그 변수가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성격 급한 내가 딸아이의 작업을 기다리는 건 아무래도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에게 물었다.

“너 웹툰 그리는 거 할 거야 말 거야?”

대답 없는 딸아이에게 다시 말했다.

“그럼 캐릭터라도 내놓든가. 그림은 그렸어도 아이디어는 내가 냈으니까 공동 작업물이잖아. 네가 안 그릴 거면 내가 그릴께!”

내 의견이 많이 반영된 캐릭터이지만, 최종적인 그림 형태로 표현한 사람은 내 딸아이인 만큼 저 캐릭터의 저작권은 딸아이에게 있다는 것을 딸아이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본인이 처음으로 만든 창작물이니 내놓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이해는 되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아이는 '아이패드'와 '프로크리에이터'라는 디지털 드로잉에 최적화된 툴을 가지고 있다. '프로크리에이터'는 '아이패드'나 '맥북'에서만 사용 가능한 툴이다.

내가 가진 건 삼성 노트북. '메디방페인트프로'라는 툴을 이용해 혼자 그림을 그려 보았다. 아무래도 딸의 연장이 더 좋은 것 같다. 그렇다. 분명히 연장 탓일 거다.

남편이 글 쓰라고 이번에 최신형 노트북으로 바꿔준 지 한 달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패드'를 하나 더 사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딸아이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딸. 다음 주까지는 완성해 올 거지?”



딸아이 생애의 첫 캐릭터 그림



내가 그린 캐릭터, 생애 첫 디지털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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