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를 잃어버리는 중입니다.

옷과의 전쟁

by 박대노

"옷이 저렇게 많은데, 교복 입고 다니면서 또 무슨 옷이 필요하다는 거야!"

아이가 옷을 사달라고 한다. 교복을 입으니 사복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이미 많은 옷을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 무슨 옷이 더 필요한지 의문이었다.

"원피스! 예쁜 원피스 입고 싶단 말이야!"

"집안일 아르바이트해서, 용돈 벌어서 사!"

"친구들 만나면 용돈 모자라니까, 하나 사주면 안 돼?"

그래, 친구들 만나려면 돈 필요하겠지. 어른들도 만나서 차 마시고, 밥 먹으려면 돈 필요한데, 너희들도 그렇겠지.

"무슨 옷? 인터넷에서 골라와 봐!"


허어어어어어어어얼. 아이가 골라 온 옷은 내가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그런 옷이었다.

길이는 얼마나 짧은지 팔 조금만 올리면 속옷 보이겠다 싶을 정도이고, 어깨에 구멍은 왜 나 있는 건지. 조금 양호하다 싶은 옷은 셔링이 잔뜩 들어가서, 이게 중학생이 입어도 되나 싶은 그런 옷들이었다.

"이런 걸 입겠다고?"

"응. 왜?"

"이런 걸 중학생이 입는다고?"

"다들 그런 거 입어."

"다들 누구? 네 친구들이 이런 거 입어? 어른들도 파티나 클럽 가는 거 아니면 이런 옷 안 입어!"

"내 친구들은 치마에 관심이 없어서 안 입는 거고, #스타그램에 보면 중학생들 다 이런 거 입는다고!"

아! #스타그램! 잡았다 요놈! 맨날 그런 거나 보고 있으니까 헛바람이 들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를 아는 지인들은 대부분 아이가 원하는 대로 사 주라고 했다. 요즘 아이들이 다 그러하다고, 아이는 정상적인 발달 과정을 겪는 거라며, 똑 부러지는 아이이니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며칠을 고민했다. 고민하는 중, 다른 어른들은 다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주는데 부모인 나와 남편만 아이를 믿어주지 못하는 건 아닌가 우울해지기도 했다. 사실 그 우울감에 이틀을 울면서 지내기도 했다.


내가 보수적인 사람일 수도 있겠다.

나는 결정권이 없는 어린아이들을 방송에서 보는 것도 불편한 사람이고, 어린 여자 아이돌들이 짧은 치마를 입고 티브이에 나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특히 여자 아이돌에 대해서는 재능을 펼쳐 보이고 싶은 그들을 이용해, 그들의 어림과 예쁨을 성 상품화하는 어른들을 혐오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런 어른들이 상품화한 것들을 아무 생각 없이 쫓는 내 아이가 불안해 보였고, 그런 부분에 대해 아이에게 충분히 내 의견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고민을 하고 또 해도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선이 아니었다.

나도 남의 아이라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한번 해보게 내버려라고 했을 것이다. 옆집 아이의 일이었다면, 친구의 자녀 얘기였다면 '해보라고 해. 자기가 해보고 잘못된걸 스스로 깨달으면 안 하겠지!'라고 말할 수 있었겠지만, 이건 남의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의 일이었다.


옷이란 건, 자기 나이와 상황과 때와 장소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입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옷이 개성을 반영해주는 수단이지만, TPO (시간 time, 장소 place, 상황 occasion에 따라 의복을 경우에 알맞게 착용하는 것)를 반영하지 않는다면 '개성 있는 사람'이 아니라 '경우 없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하기에,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를 명확하게 제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옷은 안 되겠어! 이런 옷은 중학생한테 적합한 옷이 아니야!"

"왜 안되는데!"

"네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야. '너는 그런 옷이 좋은가보다'라고 생각한다고. 그렇지만 옷이란 건 때와 상황에 맞춰 입어야 하는 게 예의이고, 엄마는 예의에 어긋나는 것까지 허용해줄 수는 없어."

"내가 입고 싶은 옷 입는 게 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야?"

"아직 체형이 완성되지 않은 너한테 어울리지 않는 건 둘째 치더라도, 청소년이 입기에 적합하지 않아. 팔 한번 제대로 올릴 수도 없는 그런 옷을 입고 뭘 하고 싶은 건데?"

"예쁜 데 가서 사진 찍고 싶은 거야!"

"그런 옷 안 입어도 예쁜 데 가서 예쁘게 사진 찍을 수 있어!"

"그 옷 입고 찍고 싶다고! 왜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엄마 마음대로 결정하는 건데!"

"부모니까, 미성년자인 너에게 옳고 그름에 대해 알려줄 의무가 있는 거야. 그런 것도 알려주지 않으면 그게 부모야? 네 마음대로, 너 좋은 대로만 하고 살게 내버려 두는 건 방치야! 아동학대고!"

"옷 고르는 게 옳고 그름의 문제야? 말이 된다고 생각해?"

"옳고 그름의 문제일 수도 있어. 엄마가 옷뿐만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하더라도 TPO를 고려하라고 했지? 어떤 일이 TPO에 따라 허용되기도 하고 허용되지 않기도 한다고 했잖아. 저 옷 자체는 네 말대로 취향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야. 그래서 네가 좋아하는 것까지 뭐라 하지 않아. 다만 저 옷을 입겠다는 너! 네 나이! 네 상황! 네가 있을 장소! 그 어떤 것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거야!"

"그건 엄마 기준이잖아? 엄마 기준이 다 옳아?"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내가 너 하고 싶다는 거 안해준 거 있어? 무조건 안된다고 한 적 있어? 어떻게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아? 네가 성인이 되어서도 그렇게 살 수는 없어! 사람은 좋은 것만 하고 살 수도 없는 것도, 싫다고 안 하고 살 수도 없는 거야. 더구나 지금은 엄마 아빠의 보호 아래 살고 있으니, 엄마 아빠의 기준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들, 너를 지켜줄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가르치고 지켜줘야 하는 게 부모의 역할인데, 내가 그런 가이드라인도 못 줘? 너도 내가 이렇게까지 반대하면 엄마가 왜 반대하는지 생각해봐야 하는 거 아니야?"

화가 나서 소리 지르는 내게 아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는 아이대로 화가 났겠지만, 한바탕 난리를 치고 아이의 방에서 나온 내 속도 말이 아니었다.

아이가 저만큼 자라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게 기특하기도 하면서, 언제 저만큼 자랐나 싶어 마음이 허해졌다.

남편이 아무리 위로해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 손바닥 안에서 고만고만하게 놀던 내 아이가 내 손바닥 밖으로 떨어져 나간 기분이었다.


원태연 시인의 시, <취미>가 딱 내 마음 같았다.


딱 저 마음이었다. 남편에게 저 시를 읽어주며 원태연 시인이 사춘기 딸을 두고 저 시를 쓰신 건가 보다고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도, 텅 빈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며 밤을 보냈다.





"엄마 아빠는 집순이 집돌이라 집 밖에 나가는 걸 싫어하기는 해도, 제가 하고 싶다는 게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다 해주셨어요."

아이가 선생님께 한 말이란다.

그랬다. 아이가 하고 싶다는 게 있으면 처음엔 그런 걸 왜 하냐고 퉁퉁거리면서도 결국은 방법을 찾아 다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내 생각에 저런 걸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도, 안전이 보장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아니라면 가능한 방법을 찾아 지지해주고 지원해주려고 노력해왔다.

전두엽 발달이 안된 사춘기 아이라 이성적 판단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저렇게 인정해주니 고마웠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어제 마지막에 한 말, 하고 싶다는 거 안해준 적 없다는 말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아침 일찍 내려온 아이가 해맑은 얼굴로 이전과는 완전 반대되는 스타일인 롱 원피스들을 보여주며 내 의견을 물었다.

'뭐지? 다른 방법의 반항인 건가?'싶을 정도였지만, 아이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진심으로 엄마와 타협할 수 있는 절충안을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역시 아이에게는 어울릴 듯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노력해서 찾아온 아이의 의견을 그런 이유로 반대할 수는 없었다.

"그런 롱 원피스는 엄마도 많으니까, 엄마 거 한번 입어볼래? 엄마 거 다른 것도 한번 입어보고 너한테 어울리는 걸 찾아봐."

내 옷장을 뒤져 아이가 고른 옷과 비슷한 옷들을 찾아 입혀보았다.

결과야 뭐, 당연히 안 어울리지.

"너 <스물다섯 스물하나>라는 드라마에서 김태리가 어른 흉내 내느라 엄마 옷 입고, 엄마 화장품 바르고 나이트 간 거 기억나지? 거기에서도 아이인 김태리가 어른 흉내를 내는 게 어울리지 않고, 오히려 촌스러워 보인다고 표현됐잖아. 너도 마찬가지야. 얼굴도 앳되고, 체형도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너무 어른스러운 옷은 어울리지 않는 거야. 근데 이건 지금 안 어울리는 거지, 네가 나이 들면 또 달라 보일 수 있어."

결국, 쪼~금 어른스러운 옷을 입고 주말 외출을 하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

이 사건이 있고 나서,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을 갔다.

매장 한 두 군데가 아니라, 아이가 입어보고 싶어 하는 모든 옷을 입어보게 하고 본인에게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스스로 판단해보라고 하고 싶었다. 그렇게 고른 옷이라면, 설사 내 기준에 맞지 않더라도 사줘야겠다는 큰 마음을 먹고 집을 나섰다.

집 밖에 돌아다니는 것을 워낙 싫어해 쇼핑몰을 돌아다니더라도, 남편이 한 바퀴 돌며 골라놓은 것들만 추려서 입어보고 사 오는 내가 이런 결정을 하다니, 나 스스로를 기특해하며 몇 시간을 따라다니며 옷을 입혀보았다.

그렇게 수십 벌의 옷을 입어 본 아이가 결정한 옷은 결국 청바지와 크롭티셔츠 몇 벌, 속에 받쳐 입을 탱크톱 같은 것들이었다. 본인한테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게 하니 이렇게나 쉬울 일을, 그동안 괜한 시간과 감정만 낭비한 꼴이었다.

"지금은 체형이 완성되지 않아서 그런 옷들이 안 어울리는 거야. 나이가 들면 어울리는 옷 스타일도 달라져."

혹시라도 아주 혹시라도 샤랄라 한 스타일이 안 어울려서 속상할까 봐, 위로의 말도 잊지 않았다. 자기 옷만 몇 벌씩 사서 기분 좋은 딸아이의 귀에 들리지는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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