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처음입니다.
아이가 주말에 친구들과 만나서 놀고 들어와도 되느냐고 물었다.
예전같으면 이 시국에 무슨 말이냐고 펄쩍 뛰었을 테지만, 사춘기 아이에 대해 공부한 엄마답게 이유를 물었다.
"친구 A랑 B가 생일이 비슷한데,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서 영화도 보고 놀기로 했단 말이야. 나 포함해서 4명인데, 가면 안돼? 마스크도 잘 쓰고, 엄마 걱정하는 일 없도록 할게."
코로나 이후, 아이가 친구들과 만나서 놀겠다고 허락을 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이라고 아이가 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지 않았겠냐마는, 방역 지침과 의료 상황 등을 설명하며 외식도 안 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친구들이 놀자고 하면 스스로 거절해왔다고 한다.
"엄마, 내가 친구들이랑 나가서 놀겠다고 하면, 이 시국에 미쳤냐고 나가지 못하게 할 거지? 그럴 줄 알고 친구들이 시내에서 만나자는데 안된다고 했어."
한창 친구들이 좋을 나이인데...... 조금 더 참아야 하지 않겠냐는 말은 하지 못했다.
방역지침이 완화되고, 인원 제한은 있지만 사람들끼리 모여 식사도 가능해진 후에도, "조금만 더 지켜보자."라는 부모의 말에 아이는 동의하지 못하면서도 오랜 시간 순순히 따라주었다.
그러니 방역 지침도 잘 지키겠다며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싶다는 아이를 무슨 말로 설득하겠는가.
"친구들이랑 영화도 본다고? 무슨 영화? 재미있겠네. 놀다 와."
"진짜? 엄마 고마워!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이는 괴성을 지르며 친구들에게 엄마의 허락 사실을 알렸다.
아이는 아이로서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고 살아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 자신의 시간을 포기하고 살아왔다. 아이는 그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뿔난 망아지처럼 말도 안 듣는 사춘기 딸의 순한 맛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딸, 너 돈 있어? 친구들이랑 점심도 먹고, 영화도 보고, 쇼핑은 안 해?"
"나 돈 없지. 엄마가 예쁜 딸 외출하라고 용돈 좀 주는 건 어때?"
"내 예쁜 딸은 7살 이후에 못 본 거 같아. 너는 아닌 거 같은데?"
"왜 그래, 엄마! 나야 나!"
기분 좋은 딸이 오랜만에 미소 띤 얼굴과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너 지금 용돈 얼마 있는데? 얼마나 필요할 거 같은데? 영화 만천 원, 밥 먹는데도 넉넉하게 만원, 만화방 같은 데는 안가? 만화방에서 군것질도 할 거지? 쇼핑은 아이쇼핑만?"
"난 아이패드 빚도 갚아야 하니까 돈 많을수록 좋지. 지금 3만 원 정도 있고."
아싸! 나는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돈 많이 필요하겠네. 그럼 벌어! 대신, 3년 만의 첫 외출이니까 나도 최대한 배려해서 알바비를 줄게. 우선 네 방은 네가 치우는 게 원칙이지만, 내가 도저히 못 참겠어. 네 방 옷 정리까지 포함해서 2층 청소하면 5만 원 줄게. 대신 깨끗함은 내 기준이야."
"좋아! 1층, 2층 화장실 청소하면 그건 따로 줄 거지?"
"원래 층당 3천 원으로 6천 원이지만, 이번만 만원 줄게."
"근데 엄마, 나 한 달에 한번 용돈은 안 줄 거야?"
"너 용돈 받는 거, 돈 관리 엉망으로 해서 네가 포기한 거잖아. 내가 안 주고 싶어서 안 준 게 아닌데? 그래서 필요하면 알바해서 벌어 쓰는 시스템으로 바꾼 거잖아."
"그럼 다시 주라. 나 이제 한창 돈 많이 필요한 중학생이잖아."
부모보다 친구가 중요한 아이가 자기 사고 싶은 것도 사야 하고,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기도 해야 하는데 돈 필요하겠지, 알바만 해서 충당하라고 하기엔 마음이 또 약해졌다.
"청소 상태 봐서. 내 기준으로 제대로 치울 줄 아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그 기준을 충족시키면 월 5만 원의 용돈 받을 자격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겠어."
"나 6학년 때도 용돈 5만 원이었는데, 2년이나 지났는데도 계속 5만 원이야?"
"나와 계속 딜을 시도할 생각이라면, 없던 일로 하겠어."
"아아, 알았어, 알았어. 나 청소하러 간다!"
아이는 집에서도 하루 종일 친구들과 함께 지낸다.
줌(온라인 화상회의 시스템)을 틀어놓고 같이 모여있는 것처럼 다 같이 악기 연주를 하기도 하고, 각자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숙제를 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한 순간도 아이와 친구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안 들리는 때가 없다.
하루 종일 친구들과 놀고 집에 돌아와서는, 쿠키를 만들어 포장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는 우유를 데워 핫초코를 탄다.
어제 만나서 친구의 생일 파티도 하고 선물도 줬지만, 오늘이 진짜 생일이라 준비해 가는 서프라이즈 선물이란다.
저 아이가 내 생일 선물을 저리 준비해 본 적이 있던가.
엄마 생일엔 엄마랑 싸웠다고 써놓았던 편지도 찢어버렸다는 녀석이 잠시 괘씸했지만, 친구들을 배려하고 생각하는 아이의 마음이 기특하다.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잘 자라고 있으니, 아이를 올바르게 키워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아이의 행동을 마음 편하게 보지 못했던 나를 이제는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
아직까지 딸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 친구사이에 있었던 일을 나에게 재잘재잘 얘기한다.
언젠가 다른 일에 집중하느라 건성으로 듣는 것 같자, 아이가 나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엄마, 나는 엄마가 내 말에 먼저 집중해줬으면 좋겠어. 나도 엄마를 방해하고 싶지 않지만, 난 바로 얘기하지 않으면 엄마한테 하려던 말을 까먹는단 말이야."
아직까지 아이가 나를 보고 있구나, 감격스러운 심정이었다.
아이가 나를 봐줄 때, 나도 더 아이에게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학창 시절의 친구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성인이 되어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가 가족 이외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통해, 인간관계란 일방적이지 않으며 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현명하게 배워나가길 바란다.
아이의 첫 인간관계를 지지하고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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