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상환계획서를 받았다.
2층의 아이 방과 작은 거실, 그리고 옥탑 가득 아이의 물건으로 가득하다.
풍요롭다 못해 넘치는 물건들로 주체하지 못할 지경이다.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는 아낄 줄도 모르는 것 같다.
그냥 던진 말로도 냉큼 반응해서 사주고 싶은 엄마의 심리를 이용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게 다 내 잘못이니, 이제라도 제대로 된 경제관념을 심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잘못된 경제관념으로 그릇된 소비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한 달에 한 번 용돈을 주었다. 용돈 기입장을 쓰는 조건으로.
며칠 쓰는 듯하다가 용돈 기입장은 그대로 책상 구석에 박혀있기 일쑤였다.
그리고 사실 아이는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전원주택에 사는 관계로 등하교를 엄마와 함께 하는 아이가 용돈을 쓸 수 있는 시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은 탓도 있었고, 이제는 코로나 시대에 밖에 나갈 일이 없어져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냥 쌓여가는 용돈을 방구석 아무 곳에나 던져 놓았다.
용돈 기입장도 쓰지 않고, 돈도 함부로 방치하는 이 사태를 그냥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앞으로 아이가 필요한 것은 아이 스스로 벌어서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돈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가사 노동 알바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잡초 뽑기 1통 1천 원, 화장실 청소 3천 원, 개 산책 30분당 2천 원, 모닝 개똥 치우기 5백 원, 건조기에서 옷 꺼내놓기 500원 등등 각각의 항목에 아이와 합의된 금액으로 아르바이트비를 주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용돈이 필요하지 않은 아이는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가 없었다.
냉장고에 붙은 아르바이트비 목록은 그렇게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어느 날, 디지털 드로잉을 배우고 싶다는 딸은 아이패드를 사고 싶다고 했다.
이 기회를 이용해 경제관념을 심어줄 수 있겠다 싶어서 속으로 ‘잘됐다!’고 외쳤다.
“아이패드가 필요하다고? 그럼 네가 돈 벌어서 사면되겠네. 집에 컴퓨터랑 노트북이랑 태블릿까지 다 있는데, 그림 그리겠다고 아이패드를 사는 건 낭비잖아. 그래서 나는 살 수가 없어. 그런데 네 돈으로 사는 것까지 뭐라 할 순 없으니까 네가 벌어서 사.”
“내가 어떻게 사? 돈이 없는데?
“네가 사고 싶은 모델의 가격을 알아봐. 그리고 어떤 알바를 어느 기간 동안 하면 되는지 생각해봐.”
딸랑 아이패드 가격만 알아온 아이에게 말했다.
“봐봐, 아이패드만 필요한 거야? 그림 그리려면 펜도 있어야 하고, 디지털 드로잉 제대로 하려면 수업도 들어봐야 할 거 아니야. 아이패드를 사면서 추가되는 소비 항목에 대해서도 조사를 해야지.”
“다 알아왔어. 그런데 아르바이트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몇 년은 지나야 살 수 있겠는데, 그냥 엄마가 사주면 안 돼?”
“얘야, 너 생일이나 명절, 때때로 발생하는 이벤트 날마다 이모들이나 할아버지가 규칙적으로 주는 용돈이 있잖아. 그게 1년이면 얼마야? 그거 모아도 꽤 되잖아.”
“나는 당장 필요한데, 그런 것까지 생각해봐도 지금 살 수 없잖아.”
“네가 잘만 하면 당장 얻을 수도 있어.”
“어떻게?”
“내가 빌려줄게. 대신 넌 이 돈을 다 갚아야 하는데, 어떻게 갚을지에 대해 상환계획서를 써와야 해.”
“상환계획서? 그게 뭔데?”
“돈을 빌리는 대신 어떤 방법으로 언제까지 갚겠다는 계획서를 써와야 한다는 거야. 인터넷에 보면 적당한 양식이 있을 테니까, 작성해 와 봐. 아이패드를 미리 사줄지 안 사줄지는 네가 상환계획서를 얼마나 잘 써오는지에 달려있으니까.”
아이가 작성해 온 상환계획서는 구체적이지 않았다.
항목 하나하나를 설명해주며, 구체적으로 적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이제는 조금 컸다고 사달라고 떼쓰지 않고 엄마 말대로 상환계획서를 적고 있는 아이가 기특했다.
“그림 그리는 목적이라 휴대성이 좋을 필요는 없으니까 큰 사이즈를 사도록 해. 대신 사이즈 업하는데 드는 비용이나, 키보드, 종이질감 필름 같은 액세서리는 아빠 찬스, 앱 구매랑 디지털 드로잉 수업은 엄마가 온라인으로 신청해줄 테니까 그 항목은 엄마 찬스로 부가 사항에 따로 적고.”
“진짜? 엄마랑 아빠가 그렇게 해주는 거야?”
필요해서, 너무나 갖고 싶어 하는 것을 부모가 사줘야 하는 게 아닐까 잠시 흔들리는 마음을 접고 적절한 선에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을 포함시켜 상환계획서 작성을 완료했다.
두 장을 적어 도장을 쾅쾅 찍는 아이의 얼굴이 행복해 보였다.
첫 몇 달 아이는 나름 열심히 알바를 해서 매달 갚기로 한 일정 금액을 갚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가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주위의 어른들이 주는 용돈으로도 기한 내 갚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는지, 매일 하기로 한 알바를 안 하고 버티는 날들이 늘어났다.
어쩔 수 없이, 다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아이야, 너의 퍼스널 컬러가 뭐지? 너 좋아하는 화장품 브랜드 세일한다는데 필요한 거 없니? 오늘 2층 청소기 밀고, 화장실 청소하면 5천 원 줄게, 돈 모아서 사!”
아이의 경제관념을 위한 것이더냐, 아니면 가사 노동을 떠넘기고 싶은 것이더냐!
사악하고 악랄한 엄마의 꼬임에 딸아이는 기꺼이 가사 노동에 참여할 뿐 아니라, 돈이 좀 많이 모인 날은 이렇게 외친다.
“엄마, 엄마도 하나 사줄게, 골라봐!”
아이가 작성한 상환계획서와 아르바이트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