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이 기분에 대해 먼저 묻지 않았을까

by 박대노

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담임선생님 수업이 아닌 타 교과의 줌 수업 중에 아이가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아서 지적했더니, 아이가 거울 보면서 화장을 하더라고. 다시 한번 지적하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고 했다.

평소의 아이 행실로 보아 그럴 아이가 아닌데, 담임선생님도 상황을 전해 듣고 당황하셨다고, 그리고 이렇게 좋지 않은 얘기를 전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하셨다.

좋은 일보다 안 좋은 일로 연락 주시는 게 당연하다고, 전화 주셔서 고맙다고, 아이와 얘기해보겠다고 말하고 담임선생님과의 전화를 끊었다.

아이와는 며칠 전부터 전쟁 중이었다.

본인 방이 난장판인 건 본인 방이니까 내가 안 보면 된다는 마음으로 눈을 꼭 감고 있었는데, 방뿐 아니라 2층 거실과 화장실까지 쓰레기장이 따로 없었다.

과외 선생님이 오시는 날은 어디 쑤셔 박아서라도 치운 척하더니, 이제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허용할 수 있는 건 네 방뿐이라고, 다른 곳은 네 공간이 아니니 깨끗하게 사용하지 못할 것 같으면 침투해선 안 된다고 수만 번 얘기했는데, 도무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게다가 초등 고학년 때부터 매달 배송되는 독서 잡지는 이 달에 받은 그대로 뜯어보지도 않은 상태였다. 매일 조금씩 읽어야 하는 것을 매달 방치하던 만행을 걸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이후에 다시 또 이 상태로 발견된 거라 이번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간섭하고 싶지 않아서 어쩌다 한 번 잘하고 있냐고 물으면 거의 다 했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믿고 살다가 1년 넘게 떠둘러보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한 바탕의 전쟁이 있었고, 앞으로 이 잡지를 계속할지 말지 스스로 결정하라고 했다.

아이의 대답은 계속하겠다였고, 본인이 그렇게 대답해놓고 다시 또 이런 짓을 저지른 것에 화가 치밀었다.


더 이상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너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나도 딱 필요한 만큼만 해주면서 살겠노라 선언하고 그 뒤로 침묵 속에 냉전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런 전화까지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집에서 가끔 버릇없는 행동을 할 때, 밖에 나가서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은 없는지 물으면 아이는 유쾌하게 말하곤 했다.

“엄마, 나 밖에서는 안 새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데 이게 뭔가, 담임선생님의 전화는 밖에서 새고 있으니 단속하라는 말이 아닌가.

또 뒤통수를 맞은 건가 싶었다.




얼마 전부터 아이는 자기감정을 자기도 모르겠다고 얘기하곤 했다. 자꾸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쁜데, 자기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본격적인 사춘기로 돌입하나 보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아이의 행동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는 안되었나 보다.

워낙 기질 자체가 달라 원래 서로 힘든 부분이 많은 아이와 나는 사춘기 대 갱년기로 대립되는 날들이 늘어갔다. 자유로운 아이와 계획적인 엄마,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날을 세웠다.


그동안 나는 내가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은 엄마라고 생각해왔다. 학업보다는 아이가 하고 싶은 꿈을 응원해주고,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엄마. 다른 건 몰라도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공부보다는 하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과외 수업도 아이가 본인 스스로 원해서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좋은 성품의 선생님을 찾아주는 것까지가 내 몫이라고 생각하고 성적에 대해서는 터치하지 않았다.

전문가이신 선생님들을 통해 학업적으로 보충이 되는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내가 과외를 계속 시키는 이유는 무엇보다 인성 좋은 선생님들이 아이와 교감하면서 아이의 정신적 지지자가 되어주시기 때문이었다.

과외를 그만시키겠다는 것이 아이에게 무기가 될 정도로 아이도 나도 믿고 의지하는 선생님들이었기에, 부모와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선생님들에게 털어놓기도 하면서 아이는 선생님들을 통해 정신적으로도 성숙해지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아이와 지속적으로 솔직하게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비밀 보장을 해 주셔서, 꼭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내용이 아니라면 아이와 대화한 내용을 나에게 전해주지 않으셨다. 나에게 표출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그 어른들을 통해 상당 부분 해소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해서 나 역시 묻지 않았다.


아이에게 훌륭한 어른 친구를 만들어 준 것만으로 내 역할을 충분히 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름 좋은 엄마라고, 나름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그 나름이라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렸다. 내 아이도 전두엽이 작동되지 않는 파충류가 된 것인가.

평소와 달리 필요한 것만 챙겨주고 일절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는 게 딸아이도 불편했겠지만, 나는 불편을 넘어 우울함이 찾아왔다. 마음속에서 뭔가 떨어져 나간 것만 같은 허전함에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에게는 주변에 좋은 어른들이 많아, 엄마가 받아주지 못하는 부분을 많이 채워주고들 계셔서 내 불편한 마음과는 별개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좋은 어른들은 아이에게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되었다고, 이제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대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을 해주었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처럼 매일매일 다른 감정의 아이를 만나게 될 거라고, 그 아이의 상태는 짐승과 같을 거라고도 했다.




그 조언을 듣고, 며칠 이어진 짐승과의 냉전을 끝내기로 했다.

아이를 학교에서 픽업해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물었다.

“수업 태도를 지적하신 선생님하고 그 이후에 만난 적 있어?”

“응, 왜?”

“그 뒤로 더 뭐라 하시진 않고?”

“응.”

작은 짐승이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다시 물어왔다.

“그 뒤로 뭐라 하셨음 어쩔 건데?”

“그날은 어쨌든 결과론적으로 네 행동에 문제가 있었지만, 그 이후로 혹시 그 일을 빌미로 너한테 선을 넘는 행동을 하셨다면 가만있지 않으려고 했다, 왜!”

엄마가 자기편이라는 말이 필요했던 걸까,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아이 성격 상, 지적받는 상황에서 뭔가 자존심이 상했거나 부당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엇나간 행동을 했을 거라는 것을.

그럼에도 아이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많은 아이들이 어수선한 상황에서, 심지어 줌 수업에 카메라를 꺼둔 아이들도 있는 상황에서 선생님의 타깃이 되었다고, 그래서 억울했다는 아이의 말을 먼저 들어줘야 했는데. 왜 나는 항상 결과가 먼저 보이는 것일까.

아이가 이 짐승의 시기를 견디는 중에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부당하거나 험난한 상황을 지속적으로 부모에게 말할 수 있도록 아이 기분을 더 살펴야 했는데, 가르침은 그 뒤로 미뤄도 됐을 텐데 말이다.

아이는 이제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7살의 어린이가 아니다. 감정은 아직 어리고 여린 어린이지만 몸과 마음은 어른을 향해 가는 만큼 그만큼의 대우를 해주어야겠다.

간섭하지 말고, 걱정하고 사랑하는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지 말고, 내 도움이 조금은 필요한 그런 어른으로 대해야겠다.

짐승 같은 아이를 탓할게 아니라, 내가 달라져야 할 때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겠다.

아이에게 앞으로 내가 달라지겠다고 말하자, 아이는 내가 금방 포기하게 될 거라고 말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데 자기보다 3배나 더 산 엄마가 변하기는 어려울 거라고, 자기가 변하는 게 빠를 거라고도 했다.

“네가 변하겠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네 몫이야. 그런데 너는 너 스스로도 네 감정을 모르겠다면서. 모르는 감정을 어떻게 컨트롤할 수가 있겠어? 그러니 너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내 감정을 아는 내가 내 몫으로 변해보겠다는 거야.

네 말대로 내가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어. 네 기질과 내 기질이 그렇게나 다르고, 내가 살아온 시간이 있으니 조만간 또 열폭하고 포기한다고 너한테 화낼지도 몰라. 그래도 나는 그 노력, 또다시 할 거야.

포기했다 노력했다 계속 반복될 수도 있지. 그런데 아무 노력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우리, 짐승으로 살아갈 이 시기를 잘 지나가 보자!”



딸아이와 나는 이 책도 같이 읽었는데, 막상 닥치지 보고 들은 게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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