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마흔다섯 살이 되었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으면서 어제 있었던 일도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졌고, 회사를 그만둔 후로는 매일이 그날 같은 날들이었다. 지난 45년을 길게 늘여놓았을 때, 어떤 순간순간을 제외하고는 내 인생이 통제로 삭제된 느낌, 마치 바코드의 까만 부분이 소멸된 내 시간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컴퓨터로 치면 저장 공간의 대부분이 정크로 가득 찬 것을 본 기분이었다.
작년 말,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잊지 않으려고 시작한 매일의 습관, 김신지, 휴머니스트, 2021)라는 책을 읽고 난 후, 기록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책에서 작가가 쓴 것처럼, 늙어가는 부모를 기억하기 위해 온 가족이 모인 김장 날의 시끌벅적한 모습엔 김장을 주도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곳곳에 담기고, 과묵한 아빠에겐 한 말씀을 따로 부탁하면서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겼다.
왜 안 하던 짓을 하는지에 대해 식구들이 별나 하면서도, 다들 조금은 즐거워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오랫동안 묵혀뒀던 블로그에 올리면서, 그렇게 나의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책에 나온 기록의 방법 중, 5년 일기장은 바로 따라 하고 싶은 방법 중 하나였다. 평소 일기 쓰는 습관이 없던 터라, 5년 동안 뭔가를 꾸준히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흐지부지 되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러워 3년 일기장을 선택했고, 연말이었기 때문에 3년 일기장이라 봐야 26개월을 채우지 못하는 기간이었다. 너무 좋은 기록이라, 혹시 다른 식구들도, 지인들도 하고 싶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10권이 넘는 일기장을 구매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써보길 강요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기록은 내 일상 곳곳을 침범하여, 수시로 동영상을 찍고, 예전의 사진들을 정리하며 하나씩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하였다. MBTI 중 지독한 I형인 나답게 가족과 몇몇 지인들만 공유한 우리만의 기록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가족과 함께 올해의 목표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에 사건이 터졌다. 보통, 나는 목표가 꼭 필요한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살다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그게 목표지, 몇 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목표를 세우는 것에는 좀 회의적인 사람이었던 거다. 그렇다고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은 절대 아닌, 어제보다 오늘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인간형으로, 한 달이면 10권 이상의 책을 읽고, 백만 스물다섯 개의 취미를 가진 그런 사람. 그런 내가 올해는 동화 한 편을 써보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글이라고는 일기도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인 내가!!!!!
이유는 그랬다. 블로그에 남기기 위해 아이의 사진을 정리하고, 아이와의 추억을 남편과 공유하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다. 30대의 나에게 아이와의 추억이 100개쯤 있었다면, 40대의 나에겐 그때의 추억이 70개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50대, 60대, 70대를 넘어섰을 때는 어떤 추억도 남아있지 않을까 봐 무서워졌다. 그래서 너무나도 예뻤던 내 아이와의 기억을, 그 추억을 동화라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생긴 거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동화를 쓰기로 하였지만, 글쓰기 자체가 처음이다 보니 글쓰기 공부도 해야 했고, 자꾸 떠오르는 소재를 어떻게든 붙잡아두려다 보니 일기에 불과한 에세이 형식으로 남기게 되었다. 매일을 살아가는 중에,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새로운 이벤트는 상시 대기 중이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새로운 많은 것들에 도전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 반성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새로운 도전을 하느라 아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않았더라면, 사춘기 아이와 지내왔을 시간들이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내가 경험한 이 모든 시간들이 감사하다.
딸아이가 겪는 사춘기와 내가 겪는 갱년기, 우리 둘 다 이 시간은 처음이라 매일의 사건들을 통해 배워나가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오랜 시간 고민하고 생각하다 보니, 딸과의 유대감 상승이라는 나름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 이 글이 사춘기와 갱년기를 겪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