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대룡산을 올라가는 방향이 여러 곳이라는 정보를 가지고, 한 곳 한 곳 찾아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내가 다니던 고은리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길 외에 거두리 전원주택이 길게 이어진 비탈길 쪽으로도 가보고, 구봉산 카페거리에서 올라가 보기도 하고, 거두리에서 순정마루 쪽으로 올라가는 길로도 가보았다. 매번 정상까지 갔던 건 아니었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생뚱맞은 마을길로 나와 차도를 따라 주차한 곳까지 되돌아온 적도 있고,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반도 올라가지 못하고 되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래도 각각의 길에 대한 느낌은 알쟈나~ 나의 원픽은 거두리에서 순정마루 쪽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산 정상으로 가는 다양한 길이 있고, 각각의 길이 주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구를 찾는 건 쉽지 않지만, 경사가 가파른 길을 잠시 올라가자 넓은 공터 느낌의 언덕이 나왔는데, 개인 소유의 묘지가 있었다. 등산로에 묘지가 있다기보다는 묘터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산을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할까. 뻥 뚫린 양지바른 곳이라 무서운 느낌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묘지를 관리하면서 길을 가꾸는 것인지, 오솔길 따라 돌을 쭉 세워놓고, 돌탑을 쌓아놓고, 또 그 주변에는 아기자기하게 예쁜 꽃들을 심어두어 정성을 많이 들여 가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갑자기 보슬비가 내린 곳이 바로 이곳! 게다가 그날은 마루, 루루, 코코와 함께 딸아이까지 데리고 산에 오른 것이니 비가 내릴 기미가 보이는 순간 망했다는 생각에 바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이 개를 한 마리씩 담당했으니, 사진을 찍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사진은 다음에 찍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여기가 딱 좋은 길이라는 것은 이제 알았으니 언제라도 올 수 있다며 남편이 집에서 갈 수 있는 동네산에 대한 정보를 자꾸 찾아오는 탓에 재방문은 점점 늦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더 지나, 낙엽조차 다 떨어진 11월 초에 다시 방문한 그 아기자기 예쁜 길은......음......없었다. 사라졌다.
사람들이 왜 단풍 구경하겠다고 그 짧은 기간에 미친 듯이 산을 다니는지 이해가 되었다. 물론 봄이 되고 초록초록해지면 다시 예쁜 길이 되겠지만, 그것도 4월은 돼야 가능할 터이니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 국화와 메리골드, 구절초 그리고 예쁜 단풍이 물들었던 그 길을 보려면 11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했다.
진작 사진을 찍어두지 않은 나를 탓하는 소용없는 짓을 하며 그래도 사진을 찍어본다. 그리고 그 쌀쌀한 사진 위에 내 눈에 담아두었던 그 예쁜 풍경을 덧씌워본다.
지금은 낙엽이 다 떨어진 쓸쓸한 길이지만, 초록초록한 봄과 단풍 가득한 가을에 꼭 다시 오리라 마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