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할머니 집에 갑니다.
나의 첫 그림 없는 그림책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아이와의 추억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적어본 그림책입니다.
형식은 그림책이지만, 그림은 그릴 줄 모릅니다.
그림도 이제부터 슬슬 배워보려고 합니다.^^
1.
나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의 바쁜 출근 준비를 기다립니다. 엄마는 출근 준비를 다하고 나에게 말합니다.
"이하나! 준비 다했어?"
난 아까부터 준비 다했는데 말입니다.
2.
엄마가 회사에 가면, 나는 할머니 집에 갑니다.
할머니는 엄마의 엄마입니다.
할머니는 나에게 맛있는 것을 주시고, 어린이집이랑 발레학원에도 데려다주십니다. 놀이터에서 내가 넘어지면 제일 먼저 달려오는 것도 우리 할머니입니다.
3.
할머니 친구들이 할머니한테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 않아도,
할머니가 나를 키워주고, 돌봐준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습니다.
나는 할머니를 참 좋아합니다.
할머니는 나에게 고마운 사람입니다.
4.
“또각또각”
앗, 엄마의 구두 소리가 들립니다. 늦게 오는 날 엄마가 뛰어오는 소리, 내가 가장 반가워하는 소리입니다.
5.
엄마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할머니는
“너는 늦으면 늦는다고 전화할 줄도 모르냐?”라며 인상을 찌푸립니다.
“내가 늦고 싶어서 늦어? 나도 너무너무 미안한데 어쩔 수가 없잖아. 매일 내가 오기만 기다리는 서원이한테도 미안하고, 서원이 보느라 여기저기 아프다는 엄마한테도 미안하고, 회사는 회사대로…….”
엄마는 말을 하다 말고 울음을 터뜨리더니, 빠르게 내 짐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봅니다.
6.
오는 차 안에서 엄마가 나에게 물었습니다.
"하나야, 엄마 울어도 돼?"
"울고 싶으면 울어. 나는 괜찮아"
어린이집에서 현우랑 싸웠을 때, 나도 엄마처럼 기분이 안 좋아서 집에 돌아와 엉엉 울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엄마를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현우랑 싸우고 나서 울던 나를 엄마가 안아주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7.
그런데 나는 뒷자리 카시트에 앉아있어서 안아줄 수가 없습니다.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끗흘끗 쳐다볼 만큼 아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나도 울고 싶어 졌습니다.
8.
한참을 울고 난 엄마는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하나야 미안해. 그래도 이렇게 울고 나니까 엄마 마음이 좀 괜찮아졌어. 기다려줘서 고마워"
엄마가 왜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괜찮아졌다니 다행입니다.
9.
엄마가 노트북이 들어있는 회사 가방이랑, 핸드폰이랑 화장품이 들어있는 작고 예쁜 가방이랑, 내 유치원 가방이랑 발레 가방이랑 할머니 집에서 챙겨 온 내 짐이 잔뜩 든 커다란 가방까지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손을 꼭 잡았습니다.
10.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습니다.
우리 집은 15층입니다.
엄마는 숫자 버튼을 누를 수가 없다고 항상 나한테 눌러 달라고 합니다.
오늘은 엄마가 말하기도 전에 내가 먼저 15 숫자를 눌렀습니다.
엄마가 칭찬해주기를 기다렸는데, 나를 보고 있던 엄마가 다른 말을 합니다.
"하나야, 이제 할머니 집 안 가도 돼. "
11.
“엄마 이제 회사 안 가도 돼? 아니면 나 혼자 집에 있는 거야?”
내가 물었지만,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숫자만 쳐다봅니다.
밥은 어떻게 하고, 어린이집이랑 발레학원은 안 가도 되는 건지 묻고 싶은 게 많은데 엄마 얼굴을 보자 더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도 엄마처럼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숫자만 쳐다봅니다.
12.
아침입니다. 다른 날보다 더 일찍 눈이 떠진 나는 엄마가 뭐 하고 있는지 가만히 살펴봅니다.
엄마는 아까부터 화장도 다 하고, 회사 갈 때 입는 멋진 옷도 다 입고서는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습니다.
“엄마, 회사 안 가?” 내가 물어도, 엄마는 대답도 안 해줍니다.
13.
딩동
누가 왔습니다! 할아버지입니다! 우리 할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오셨나 봅니다!
“너는 엄마한테 그렇게 하고 가는 애가 어디 있냐? 하나 걱정하지 말고 빨리 출근이나 해.”
할아버지 말씀에, 엄마는 예쁘게 화장한 얼굴이 망가지는 것도 모르고 또 웁니다.
14.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아파트 놀이터를 지나, 슈퍼를 지나, 언니들이 다니는 학교를 지나 할머니 집에 갑니다.
모든 것이 어제와 똑같습니다. 내 옆에 할머니가 아니라 할아버지라는 것만 빼고 말입니다!
15.
집에 오는 길에 할아버지가 묻습니다.
"엄마 어제도 울었냐?"
"응. 근데 왜 나는 할머니 집에 못 간다고 하는 거야?"
"이따 아이스크림 사줄게."
내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데, 할아버지가 이상합니다.
16.
현관에 신발을 벗어두고, 살며시 부엌에서 상을 차리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큰소리로 “하나 왔다”라고 말합니다.
아! 눈치 없는 할아버지! 나는 지금 할머니의 기분을 살피고 있었는데…….
17.
“우리 하나, 왜 그러고 있어? 빨리 와서 밥 먹어야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머니 말씀에 나는 갑자기 배가 고파졌습니다.
어제 엄마가 이제부터 할머니네 안 가도 된다고 얘기할 때부터, 나는 엄마가 없는 동안 뭘 먹고, 어떻게 혼자 있어야 하는지가 제일 걱정이었는데…….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수가 없어서 얼마나 답답했었는데…….
다행입니다. 할머니는 내가 올 줄 알고, 내 밥을 준비하고 계셨던 겁니다. 나는 "할머니 최고!"라고 외치면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18.
밥을 먹고,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 맛있는 것을 주시고, 어린이집이랑 발레학원이랑 놀이터에 데려다주셨습니다. 아침에는 할아버지였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다 똑같아졌습니다.
19.
그런데 내 마음이 자꾸 콩닥콩닥 합니다. 할머니를 한번 쳐다봅니다. 또 콩닥콩닥합니다.
"할머니 나 가슴이 콩닥콩닥해요."
"왜? 어디 아파??"
“그게 아니고……. 할머니, 엄마한테 아직 화났어요?"
할머니가 가만히 내 얼굴을 보더니, 내 가슴을 어루만져줍니다.
"할머니, 엄마가 잘못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할머니가 어른이니까 엄마를 용서해줘요.”
20.
할머니는 나를 포옥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서원아. 네 엄마는 왜 김치찌개를 좋아할까? 할머니가 어려서 그것만 끓여줘서 그런가? 우리 오늘 저녁에는 김치찌개 먹을래?"
내가 대답합니다.
"네 좋아요!"
밥은 역시 할머니 밥이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