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바다로 간 샌들

나의 첫 동화

by 박대노

아이와의 추억을 기록하고자 동화를 쓰겠다고 했는데, 소재를 기록하다 보니 제 어릴 적 추억도 새록새록 떠오르더라구요.

엄마가 새로 사준 샌들을 잃어버린 날의 추억을 적어보았습니다.

아무 배움도 없이 무작정 기록한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 입니다.





앞서 걸어가는 오빠들의 발밑으로 흙먼지가 풀풀 올라온다.

두나는 새 신발에 흙먼지가 내려앉을까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평소엔 5분이면 갈 흙길이 오늘은 훨씬 더 길게 느껴지는 건 새 신발을 빨리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 탓이 아니었다.

신발에 흙 묻지 않게 뒷발을 들고 살금살금 걷기 때문이었다.

저기 보이는 다리까지만 걸어가면 그다음부터는 시멘트 길이 나오니까, 다리 앞에 멈춰 샌들의 흙을 털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매번 언니의 신발을 물려 신었는데, 어쩐 일인지 엄마가 이번에는 두나의 신발을 사 오셨다.

원체 잘 안 먹어 또래보다 작은 언니를 대신해 뭐든지 잘 먹는 두나가 언니보다 손톱만큼 키가 더 커져서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언니는 사주지 않고, 두나에게만 사준 새 샌들이 언니의 신발보다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게 좋기만 했다.

평소에는 길게만 느껴졌는데, 오늘은 긴 다리를 걷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깡충깡충 뛰어 다리를 건너면 아빠가 일하시는 공장이 나온다. 누군지 모르지만, 아빠 공장의 문을 지키는 경찰 옷을 입으신 아저씨에게도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공장을 지나 또 한참을 걸어 나가면, 커다란 아스팔트 도로가 나온다.

그 도로로는 버스도 다니고, 택시도 다니고, 아빠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들도 많이 다니는데, 요즘 들어서는 흙먼지며 자갈들을 떨어뜨리고 다니는 커다란 트럭들이 많아졌다.

차 조심하라는 엄마의 잔소리도 많아졌다. 하나가 사는 동네가 점점 커지고 좋아지려고 아파트도 많이 짓고, 길도 넓히느라 그런 거라고 했다.


버스가 다니는 아스팔트 길도 아침부터 공사가 한창이다.

길을 따라 공사장 가림막이 길게 줄 세워져 있고, 학교까지는 그 가림막을 따라 난 좁디좁은 길로 한 사람씩 줄을 서서 가야만 했다.

규칙적으로 뽕뽕 뽕뽕 동그란 구멍이 뚫린 철판을 따라 걷다 철판끼리 겹쳐진 끝부분에서는 쿠앙 소리가 나도록 힘껏 밟았다.

새 샌들의 쿠션은 평평한 축구공 위를 걷는 것처럼 발바닥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만약에, 만약에 평평한 축구공이 있다면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를 더 가야 하지만, 하나는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곱다란 발걸음을 재촉한다.

쌩쌩 달리는 차들의 매연냄새를 참은 발걸음이 모이면, 엄마가 준 버스비를 모아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떡꼬치를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어린 하나와 두나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두 살 터울인 하나와 두나는 엄마가 당부한 대로 손을 꼭 잡고 학교에 간다.

두나가 새봄초등학교 내 부설 병설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 학교 가는 길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나를 챙기는 것은 오롯이 하나 몫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하나의 수업은 두나보다 40분, 또는 그 이상 늦게 끝났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30분도 넘게 걸리는 먼 길이라, 수업이 일찍 끝났어도 두나는 혼자 집에 갈 수 없었다.

차가 다니는 큰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이 한참 이어지는 길이라, 언니 손을 꼭 잡고 다녀야 한다고 엄마가 신신당부한 탓에 하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매일 문밖에서 언니를 기다리는 두나가 심심할까 봐 하나네 선생님은 항상 교실 문을 열어두셨고, 두나는 문지방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언니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가끔은 선생님이 사탕도 주시고, 옥수수도 주시는 날도 있어서 언니를 기다리는 일이 지겹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드디어 하나의 수업이 끝났다.


아침엔 멀쩡했던 하늘에선 슬금슬금 비가 오고 있었다.

학교까지 엄마가 우산을 가져다 줄 리는 없었다.

아침에 같이 출발했던 동네 오빠들이랑 슬금슬금 내리는 비를 맞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다.

“야! 우리 지름길로 가자!”

제일 나이가 많은 오빠가 말했다.


하나는 내키지 않았다. 지름길로 가면 집에 조금 더 빨리 도착하겠지만, 무릎 높이의 작은 도랑을 지나쳐야 했다.

비가 오는 날은 그 좁은 도랑의 물이 넘쳐 물길이 높아지고 물살도 세져서 위험하다고 엄마가 그쪽으로 다니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언니, 우리도 지름길로 가자. 우산도 없는데 돌아가기 싫단 말이야.”

“엄마가 그쪽은 위험하다고 했는데…….”


엄마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두나의 말대로 우산도 없이 멀리 돌아가기는 하나도 싫었다.

높게 자란 풀밭 사이로 좁게 난 길을 따라 큰 아이들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하나와 두나도 다리에 비에 젖은 풀이 닿을까 조심조심 뒤를 따랐다.

도랑은 생각한 것보다 깊었고, 물살도 세져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거센 물길이 무서웠지만, 이미 이만큼이나 와버렸는데,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두나야, 신발 벗겨지지 않게 잘 채워.”

“응.”

“잘 채웠어?”

“응.”

두나는 그냥 훌쩍 건너가면 될 것을 신발 끈까지 잘 채우라고 해대는지, 언니가 귀찮게 자꾸 묻는 게 짜증이 났다.

오빠들이 모두 건너고, 하나가 건너고, 마지막으로 두나가 건너는 중이다.

“어! 어! 어! 언니 내 신발!”

두나의 새 샌들 한 짝이 거센 물길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조금 더 오래 신으라고 두나의 발보다 한참 큰 사이즈를 사준 탓이었을까.

언니가 샌들 끈을 꼭 잠그라고 몇 번씩이나 얘기하는 것이 귀찮아 잠그는 척만 했기 때문이었을까.

두나가 바닥에 이끼 낀 돌을 잘못 밟으면서 돌아간 샌들이 순식간에 발에서 빠져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곳까지 가버렸다.


하나가 도랑으로 다시 뛰어들었지만, 샌들은 이미 저만치 가버린 뒤였다.

“언니 어떻게 해! 나 이제 엄마한테 죽었다!”

“너 내가 샌들 잘 잠그라고 했잖아! 고리에 잘 채운 거 맞아?”

두나는 샌들 끈을 채우지 않았다고, 언니가 얘기할 때 잠그는 시늉만 했다고 차마 솔직하게 얘기할 수 없었다. 솔직히 자기가 아직 신발도 혼자 제대로 신을 줄 모른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언니가 자기의 거짓말을 눈치챌까 봐, 오히려 더 큰 소리로 짜증을 냈다.

“잘 채워놨다고! 근데 그냥 지가 발에서 빠져나갔단 말이야!”


하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기 신발을 벗어 두나에게 벗어 주었다.

“언니는?”

“난 괜찮으니까 너 신어.”

하나는 두나의 남은 신발 한 짝을 바꿔 신고는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언니, 같이 가.”

두나는 얼른 뛰어가 언니의 손을 더 세게 꼭 잡았다.



“이게 뭐야! 신발은 어떻게 하고 그 꼴로 오는 거야!”

하나와 두나를 보자마자 엄마가 소리쳤다.

“비가 와서 지름길로 오다가 두나가 도랑에서 미끄러졌는데, 신발이 빠져서 떠내려갔어요,”

“뭐? 엄마가 지름길로 다니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하나 넌 언니가 돼서 동생이랑 위험한 데로 오면 돼? 둘 다 벽에 가서 손들고 서 있어!”

엄마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하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엄마가 회초리를 가지러 간 사이, 두나는 문 쪽으로 살짝 자리를 옮겼다.

회초리를 찾아온 엄마는 지름길로 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엄마가 하지 말란 짓을 왜 한 건지 하나에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하나가 울면서 엄마에게 용서를 비는 순간, 두나는 문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야! 두나! 이리로 안 와!”

엄마가 두나를 부르며 쫓아오는 게 보였지만, 신발도 신지 않고 도망치는 두나를 잡을 수는 없었다.


두나는 자기의 발을 내려 보았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뛰어나오느라 이미 엉망이 되어 버린 발을.

길바닥에 작은 돌멩이들은 어찌나 많은지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발바닥이 아파왔다.

두나는 얼마 걷지 못하고, 동네에서 가장 무서운 할머니가 사는 원석이네 집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았다.

‘우리 집에서 원석이네 집은 멀지도 않은데, 이만큼 맨발로 걸었다고 발바닥이 이렇게 아픈데, 언니는 어떻게 집까지 걸어왔을까’

두나는 자기에게 신발을 내주고, 절뚝거리며 집까지 걸어온 하나 생각이 났다.

‘언니가 잠그라고 할 때, 잘 잠글걸. 그렇지만 고리에 채우는 게 잘 안 되는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내가 미끄러질 줄 알았나 뭐!’

두나는 아직 혼자서 샌들 끈을 고리에 잘 끼워 넣는 게 어려웠다.

언니가 샌들을 잘 잠그라고 했을 때도, 한쪽은 잘 끼워졌는데, 한쪽 끈이 고리에 들어가지 않아 버벅거리다가 그냥 대충 잠그는 척하고 일어섰던 것이다.

혼자 신기도 어려운 신발을 사주고는 혼내기만 하는 엄마가 미웠다.


동네 떠돌이 개 메리가 두나를 보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두나는 메리만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메리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그래도 엄마가 처음 사 준 새 신발인데……. 어디까지 갔을까?”

해가 지고, 아침 같은 저녁이 되었다.

‘이제 엄마는 저녁 준비하느라 나는 잊었겠지?’

두나는 메리를 데리고 몰래 집 쪽으로 다가갔다.

살살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가, 까치발을 들고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부엌 쪽을 쳐다보았다.

쌀을 씻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나는 조심스럽게 엄마 눈치를 살피며 화장실로 가서 발을 씻었다.


하나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언니, 엄마한테 많이 혼났어?”

하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샌들 고리를 잘 끼우라고 몇 번씩이나 얘기했는데도 신발을 잃어버린 것에도, 잘못해놓고 혼자 도망가 버린 것에도 화가 났다.

잘못은 두나가 했는데, 자기만 혼난 게 억울했다.


저녁을 먹고, 일기를 썼다.

두나는 오늘 새 샌들이 물에 떠내려갔다는 내용을 쓸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는 하루였다고 적었다.

새 일기장으로 바꿀 때까지 물에 떠내려간 샌들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싫어서였다.

잠자리에 누운 두나는 조심스럽게 하나에게 물었다.

“언니 자?”

“아니”

“엄마한테 많이 혼났어?”

“아니.”

“언니, 미안해.”

하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언니, 내 샌들은 어디까지 갔을까?”

“몰라, 빨리 잠이나 자.”

아직까지 마음이 풀리지 않은 하나는 두나가 자꾸 말 거는 게 귀찮아서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돌아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나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지만, 하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두나 샌들은 어디까지 갔을까? 에이, 몰라. 물에 떠내려갔으니까 바다로 갔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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