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 창작수업>에서 한 줄로 된 시, 하이쿠에 대해 배웠다. 단가로 불리는 정형시로 출발하여 5.7.5. 의 열일곱 자가 독립되어 의미와 계절감각을 갖춘 하나의 완성된 시 형태로 발전한 것이라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하이쿠를 소개해주시면서, 형식이나 소재에 있어서 다양성을 고민해보라고 하셨다.
17 음수율에 맞추는 하이쿠도 신기했지만, 일전에 소개해 주신 김창완 님의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는데 잠깐만 놀고 하려고 놀이터에 갔다가 미끄럼틀에서 넘어져서 이빨이 부러져 치과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어쩌다 이랬냐고 물어서 한 말'이라는 긴 제목의 시도 무척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다. 제목이 이렇게 긴 것에 비하여 시의 내용은 '모아요'라는 단 세음절로 끝나는 시였기에, '이토록 독특한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시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는데 잠깐만 놀고 하려고 놀이터에 갔다가 미끄럼틀에서 넘어져서 이빨이 부러져 치과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어쩌다 이랬냐고 물어서 한 말
김 창 완
모아요
이렇게 형식이나 소재에 있어 독특한 시들에 자극을 받아, 나도 다양하게 동시를 써 보았다. 여전히 깊은 성찰이 없어 고민스럽지만, 선생님께서는 나만의 순발력, 위트가 있다며 잘하고 있다고 용기를 주셨다.
소나기
이럴 줄은 몰랐어
난
널
만날 준비가 안되었는데
살금살금 발뒤꿈치를 들고 흔들흔들 비틀거리면서 조심조심 걸었는데 어어어어어어어어
에이,
밟았네, 똥
다이아몬드
캐럿!
네가 주황색이 아니라니!
제비
온 사방에 똥바닥을 만드는 네가
혹시라도 우리 집에 집을 지을까
봄이 되면 펄럭펄럭
주유소 풍선처럼 너를 쫓아냈는데
5월 말, 돌아오지 않는 너를 기다린다.
네 집 지으려던 지붕 밑을 서성인다.
도시화도 기후변화도 내 탓인 것만 같다.
라일락
겨울을 지내고, 봄이 왔건만
말라버린 가지에 싹이 트질 않아
죽은 줄만 알았다.
너를 보려고 봄을 기다렸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뽑지도 못하고 내버려 뒀더니
땅을 뚫고 새가지가 올라왔다.
좋아하는 걸 들키지 말아야겠다.
부침개 부치는 날
애호박은 착착착착
양파는 톡톡톡톡
계란은 토오오옥
부침가루 설설설설
기름판에 촤아아악
부침개는 노릇노릇
엄마의 뒤집기 한판,
이때야!
부침가루 한줌쥐어
엄마 몰래 살금살금
내 발걸음 총총총총
눈가루는 소록소록
달팽이
달팽이는 어쩌자고 그렇게 느릿느릿한 걸까
하늘과 바람과 비,
풀포기 하나하나 오롯이 즐기려고
분수에 맞는 집 한 채 짊어지고
천천히 살기로 한 걸까
개구리
물을 준다.
상추잎이 가득한 작은 밭에
뿌려 준다.
솔솔솔솔 마른 흙이 흠뻑 젖도록
아이, 깜짝이야!
나를 놀래키려 여태 숨어있던 거니?
비웃는다.
입큰 개구리가 놀란 나를
좋아한다.
상추 잎을 팔딱 튀어오르며
테니스 배우기
하나에 자세 잡고, 둘에 옆으로 돌아, 셋에 라켓을 휘두른다.
하나에 자세 잡고,
둘에 옆으로 돌면서 공이 오는 방향으로 왼손을 뻗어 가리킨다.
자, 자, 네트를 넘어 온 공이 한 번 튀어 오르면,
셋! 바로 지금이야!
타아앙!
텐션을 울리며 반대쪽으로 넘어가는 공
은 보이지 않고
라켓 잡은 내 손, 허망하게 허공을 허우적거린다.
두리번두리번 공 찾느라
갈길 잃은 눈동자에
선생님의 찢어진 눈초리가 들어온다.
라인 밖을 튕겨나간 공은
초보에겐 잡힐 생각 없다며
저만치
통
통
통
비웃으며 가버린다.
하나에 자세 잡고, 둘에 옆으로 돌아, 셋에 라켓을 휘두르고,
넷에 공 찾으러 간다.
알람시계
째깍째깍 시간이 흐르면
아무도 맞추지 않은 알람이 울린다.
내 시계는 두 번의 열두 시간,
하루에 세 번 밥때를 알리고
네 시계는 한 번의 열두 달,
일 년에 한 번 꽃 때를 알린다.
째깍째깍 소리도,
따르르르릉 소리도 없지만
너와 나만 아는 알람이 울리면
내 배속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네 줄기에서는 꽃송이가 나온다.
오늘도, 올해도
아무도 맞추지 않은 알람이 울린다.
선인장
물을 주지 않아서
가시 돋친 거냐
따가워 죽겠다
몬스테라
빛 좀 받아보겠다고
제 이파리 갈기갈기 찢으며
애쓰는구나!
꽃과 열매
얼마나 좋은가,
꽃이 지면
열매가 달리는 게!
바람
누가 온 줄 알았다.
바람이었구나!
그래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