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쿠, 어렵지 않은 거 맞나요?

by 박대노

지난주부터 <아동문학 창작수업>에서 하이쿠를 배우고 있다. 하이쿠가 너무 낯설어 도서관에 가서 하이쿠 관련된 도서를 찾아보았는데, 꼭 깊이 있는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은 편하게 생각해도 될 것 같다고 마음먹자, 오늘은 30분 만에 20편의 하이쿠를 쓸 수 있었다.

어쩌면 말장난 같기도 한 하이쿠 형식이 나한테 잘 맞는 것도 같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나에게 하는 말인가 보다.


남편에게 잘난 척을 하며 말했다.

"오빠, 오늘은 하이쿠 공장이 돌아가고 있는데, 나는 머리가 겁나 좋은가 봐. 지난주에 하이쿠를 처음 배웠을 때는 5.7.5. 의 음수율을 맞추는 게 어렵다고 했잖아. 일본은 한자를 쓰니까, 우리말로 5.7.5. 까지 맞추는 건 어려운 거 아닌가 생각했거든. 그러고 나서 일주일 동안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오늘은 음수율 맞추는 게 어렵지가 않다! 나는 아무 짓도 안 해도 머리가 혼자 공부하나 봐."


계절을 상징하는 계어 (동식물, 기후, 풍토, 연중행사 등)가 필히 들어가야 해서 그렇게 쓰려고 노력하긴 했지만, 그러다 보니 스스로 한계를 느껴 몇몇의 시에서는 계어가 빠지기도 하였다.

오늘의 하이쿠 공장의 작품들을 소개하겠다. 사실은 음수율만 맞춘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1. 이불 말리기

햇볕에 바짝

보송보송하구나

오늘밤 꿀잠


2. 포도송이

얇은 가지에

주렁주렁 열렸지

수확의 기쁨


3. 식탁

밥먹는 곳에

짐만 가득하구나

식탁의 용도


4. 삽목

계속되는 비

뿌리없는 주제에

잘도 자라네


5. 모내기

어두운 새벽

탈탈탈탈 경운기

모내기구나


6. 제비

마당 한가득

똥을 지려놨구나

봄도 한가득


7. 꿀벌

봄이 왔구나

앵앵앵앵 애애앵

회향나무에


8. 지렁이

비오는 소리

스물스물 나온다

다리도 없이


9. 개구리

나만 놀랬냐

폴짝 튀어 오르는

너도 놀랬지


10. 산딸기

가시 품은 너

다가가기 어려워

더욱 달구나


11. 은행잎

노란 은행잎

책갈피에 꽃아 둔

가을 한 자락


12. 단풍

빠알간 단풍

가을바람 한스푼

쓸쓸한 가을


13. 오디

어렵겠구나

새가 따먹기 전에

술 담그기는


14. 잡초

누군지 몰라

애지중지 키웠네

여기저기에


15. 모자

모자를 썼네

얼굴 타지 말라고

까만 발꼬락


16. 치킨 배달

어느 집이냐

엘리베이터 가득

내 배 꼬르륵


17. 복숭아

시작이로다

천도 백도 황도의

달콤한 나날


18. 풋고추

싱싱한 풋맛

빨간 고추장 찍어

물 말은 밥에


19. 보리수

아침엔 초록

점심엔 주황 익어

저녁엔 빨강


20. TV

시간을 잊어

바보상자 속으로

세월을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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