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근한 새벽의 인사

그 새벽 당신의 배웅이 내게 건넨 것들

by 동자


경기도에서 서울로 통근하던 시절, 다섯 시 반쯤 집을 나서고는 했다.

다섯 시 반, 겨울날에는 너무 캄캄해 조금 무섭기까지 한 시간.

복남은 해가 뜨기 시작하는 여름에도, 어둠이 깔린 겨울에도,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는 나를 배웅했다. 복남의 중요한 일과였다. 아무리 피곤해도, 곤히 자다가도 내가 간다고 하면 어떻게 듣고서는 벌떡 일어난다. "조심해서 다녀와~"하며 손을 흔들어준다.


그 무수한 날들 복남의 배웅은 요상하게도 내 삶에 온기를 불어넣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깨닫는다. 아마도 사랑일 것이라고.

매일 아침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사랑.

아이가 태어난 이래로, 복남은 내내 그런 사랑을 주었을 것이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을 나와 직장에 갈 때 까지 매번 문 앞에 나와 성실히도 건네던 수천번의 인사, 내새끼 아프지 말아라 쓰다듬는 손길. "할머니 손은 약손" 하면서 할머니가 배를 어루만지면 신기하게도 배가 아프지 않았던 순간들. 긴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너만 안다치고 무사히 돌아왔으면 됐다" 하며 꼬옥 안아주는 따뜻한 품, 할머니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에도 그런 것들을 주었을 것이다.

철없는 손녀는 내내 그것을 받고서도 알지 못하다가, 서른을 바라볼 즈음이 되어서야 그 사랑을 깨닫는다. 그 뭉근하고도 무수한 날들은 내 뱃속에 버티고 있다가, 세상이 나를 못살게 구는 어느 날에 나에게 와서 용기가 된다. 매미와 귀뚜라미가 우는 여름에도, 바람이 선선해진 가을에도, 어두컴컴한 겨울에도 복남의 배웅으로 시작했던 그 아침의 시간들은 길바닥에 철퍼덕 넘어져 울다가도 슥슥 털고 일어나서 씩씩하게 걷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살아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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