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악으로 깡으로는 안됩니다만

by 동자

"정신력으로 뭐든지 할 수 있어! 정신력으로 버텨!"


우리 아빠가 언젠가 술먹고 외치던 말이다. "악으로! 깡으로!" 돈이 없어 빚쟁이한테 쫓기면서도 악으로 깡으로 그리고 정신력으로 살아남았단다.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겼단다. 추측컨대 조금 위험한데서 돈을 끌어다 썼다가 죽을 고비를 넘긴 것 같다.


나는 우리 아빠의 피를 받았으나 악과 깡이 없었는지, 고3 수험생활 내내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공부할 시간에 맨날 자빠져 잤거든. 맨날 늦잠자서 지각했거든. 자면 안된다는데, 그러면 아무것도 못하겠었거든. 한번은 야간 자습 시간에 졸다가 걸렸는데 선생님한테 빌었다. 잘못했다고 빈게 아니라 이렇게 빌었다.

"선생님, 제발 30분만 자게 해주세요. 자고 일어나서 진짜 열심히 할게요. 진짜 제발 30분만 잘게요."

선생님은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결국 집요한 내 부탁에 못이겨 30분만 자라고 하고 자리를 떴다. "허, 참" 하면서 자리를 떴다. 잠 잘 시간에 공부를 하라는데, 나는 잠을 못자면 도저히 집중이 안됐다. 공부는 해야겠는데 몸은 안따라주고, 아주 죽을맛이었다. 나는 태생이 잠 많고 게으르고, 체력이 약한 인간인 줄 알았다. 전 남자친구와 헤어지기 전까지는.

몇 해 전 사귀던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계기로 운동을 시작했다. 크로스핏 체육관에 가서 버피를 하면서, 싯업을 하면서, 복싱을 하러가서 샌드백을 치면서, 스파링을 하면서, 머리속으로 '개새끼', '소새끼' 되뇌었다. 그렇게 1년, 운동하며 그를 잊었다. 1년여 넘는 시간동안 하루 걸러 하루 운동을 하다보니 어느새 운동을 하지 않으면 허전했다. 그리고 2년, 3년이 지나자 운동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개새끼를 잊기 위해 시작했으나 결과적으론? 탄탄한 허벅지, 근육으로 다져진 팔, 그 외에 둔근, 복근까지 근육으로 다져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일주일에 3번은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 그러니까 운동으로 이별 후유증도 극복하고, 근육을 얻고 새 삶을 얻었다.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고 있으나 전부 근육이 찐 덕에 날씬하면서도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고, 그 어느때보다 건강하다.

라고 하기엔 며칠전에 심하게 아팠지만. 그저 쉴 때가 온 것이라 생각하고 또 잘 쉬었다. 이것 보라, 모든 걸 긍정적으로 넘기는 긍정성도 다 신체의 건강에서 나온다.

어느 순간 체력이 따라온다. 운동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그러다보면 나는 그런 내가 썩 마음에 들고, 다른 거 할 시간에 운동을 하고싶고, 그렇게 꾸준히 운동하는 내가 너무 좋다. 아, 운동을 하면 하는만큼 정직하게 변화하는 내 몸도 운동을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운동을 꾸준히 하는 어른을 본적이 있던가? 생각해보면 있다. 바로 우리 아빠다. 술을 잔뜩 먹고 와도 주말 새벽이면 꼬박꼬박 조기축구, 족구장을 헤치고 다니며 땀을 쭉쭉 빼던 인간이 우리 아빠다.

비록 운동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먹는 바람에 몸매는 항아리 마냥 커다랗지만, 우리 아빠는 사실 조기죽구의 힘으로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사실 아빠가 외치던 "악으로! 깡으로!"는 사실 "축구로! 족구로" 인지도 모른다.


아빠의 "악으로! 깡으로!"는 나에게로 와서 "러닝으로! 복싱으로! 크라브마가로! 필라테스로! 헬스로!"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 운동을 해야한다.

매거진의 이전글별 것도 아닌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