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엉망이다. 청소는커녕 밥도 겨우 먹고 설거지도 못한다.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은 반반이다. 못하는 것이기도 하고, 안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냥 마음이 그렇다. 하기 싫어. 그래서 안 해. 그리고 못하겠어서. 못해. 안 해, 못해.
이렇게 죽어라 청소를 안&못 하는 것은, 퇴근을 하고 운동까지 하고 나면 청소까지는 할 여력이 없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나라는 인간이 원래 좀 더러운 건지, 이런저런 이유를 댈 수가 있겠다. 사실은, 무언가를 외면하고 회피하는 중이다. 아니 사실은, 슬픈 것이다.
왜냐하면, 복남이 다시 요양원에 갔으므로. 몇개월 전 병원에 있던 복남을 다시 데리고 왔다. 복남은 거동이 불가능하므로 누워만 있었다. 잘 움직이지 않고, 그러던 어느 날엔가, 너무 많이 누워있으면 생긴다는 큰 상처가 생겼고, 대수롭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었다. 아침저녁으로 허리춤에 생긴 커다란 상처에 진물이 흐르는 것을 본다. 그것을 보면서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가끔은 억장이 무너지다가도, 왜 이지경까지 왔는가에 대한 끝없는 고찰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수백 번 생각하다가 어떤 날들이 떠오른다. 내가 무너졌던 어느 날들. 더 많은 것들을 하고 싶었지만, 조금만 더 놀고 싶었지만, 그래도 내가 돈을 벌어야 하니까. 꾹 참고 취업을 했던 어느 날, 4시간 통근이 힘들어 엉엉 울면서 다녔던 어느 날, 주말이면 할머니랑 장을 보고, 목욕도 가고, 병원도 가고, 외식도 했던 수많은 날들, 그 와중에 나는 가족이 살 집의 세를 냈고, 생활비를 댔고, 각종 비용을 댔다. 가족을 책임지게 되었다. 아빠가 아니라 내가 모든 책임을 지게 되었다. 책임져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어깨가 무겁다고 생각했던 많은 날들이 떠오른다. 꽤나 오랜 기간 그것들이 무거운 줄도 모르다가, 견딜 힘이 없어진 어느 날도 떠오른다. 그리하여, 길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야 했던 날들도. 그때에 나는 살기 위해서 복남을 외면했다. 밖으로만 돌았다. 내가 살아야 되니까, 친구들을 만나고,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고, 전시를 보러 다니고, 별 병신 같은 짓들을 하며 돌아다녔다. 복남을, 서울 집에, 가둬둔 채로.
아마도 그때부터 복남은 무너졌을 것이다. 평일에는 갇혀있어야 하는 복남을, 유일하게 데리고 바깥 구경시켜주던 손녀가, 주말이면 장보고, 병원 가고, 여름이면 시원한 빙수도 먹여주던 손녀가 사라졌으므로. 주말이면 복남이 좋아하는 곱창을, 갈비를, 바닐라 라테를 사주던 손녀가 죽었으므로.
손녀는 어느 날엔가, 쌓아왔던 수많은 이유들로 무너졌다. 그래서 주말에도, 평일에도, 갇혀있는 복남을 꺼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복남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모르게 혼자 수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사회와 단절되어갔을 것이다. 복남은 서서히 인지능력과 운동능력 따위의 것들을 잃었을 것이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서서히 잃었을 것이다.
그즈음 그 손녀는, 복남까지 건강을 잃어가는 모습에 그의 부모들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그들은 도울 능력 또는 의지 그 무엇도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으나, 그 도움이라는 것은 복남을 병원에 보내는 것이었고, 복남은 그렇게 어느 날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었다.
그렇게 수개월, 손녀는 일어서서 걷게 되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족들의 도움으로, 수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손녀가 퍽 괜찮아졌을 때, 정신을 차렸을 때 복남은 병원에 있었다. 복남을 다시 데려오려고 손녀는 병원에 갔으나, 복남을 입원시킨 것은 손녀가 아니므로 복남의 아들의 허락이 있어야 했는데, 복남의 아들은 자기 딸이 복남을 다시 데리고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복남의 아들은 자기 딸이 복남과 같이 살겠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허락하지 않았다. 손녀는 그렇게 놀다가도 울고, 웃다가도 울고, 몇 달을 보냈다. 몇 달 동안 전화통을 붙잡고, 울고 불고, 할머니 내놓으라며 소리지르고, 사람들의 힘을 빌려 설득도 해보고, "복남 부양 계획서" 따위를 작성해서 보여주는 통에 복남의 아들은 자기 딸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손녀는 복남을 데리고 집에 온 것이다. 그리고 웬 카메라를 든 남자가 와서는 한참을 찍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TV에 나오기도 했다. 바다에도 가고, 회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잔뜩 먹고 복남과 손녀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손녀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복남은 손녀를 힘들게도 했으나, 손녀는 복남이 없이는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복남을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그러나 복남의 시간은 복남도, 손녀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복남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복남은 앉는 것조차 어려워했고, 어느 날 복남의 등에 생긴 상처는 점점 깊어져 갔다. 손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손녀는, 매일매일 복남의 등에 있는 상처에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다가, 그래도 나아지지 않는 상처와, 점점 더 안 좋아지는 복남을 보는 것이 점점 버거웠다. 자책도 하기 시작했다. 손녀는 그가 복남을 부양하는 것을 힘들어한다는 것조차 미안했다. '누군가를 제대로 책임지지도 부양하지도 못하는 인간. 너는 그런 인간이야. 너는 그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야. 벌써 또 지쳤어? 사랑하는 가족을 이렇게밖에 못 챙겨?' 따위의 말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복남의 아들은, 복남의 상처와 자기 딸의 모습을 번갈아 보던 복남의 아들은, 복남을 병원으로 보냈다. 자기 딸도, 복남도, 안쓰러워서 봐줄 수가 없었다. 복남의 아들은 또다시 악역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복남은 다시 병원에 갔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손녀는, 복남과의 수많은 시간들을 곱씹다가, 이렇게 된 것은 전부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들은 자신이 무너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즈음 복남은 죽고 싶다고, 날 좀 죽여다오. 말하기 시작했던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 손녀는, 운동을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활짝 웃다가도, 엉엉 울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