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야. 언니야.
할머니가 집에 오고나서 잠도 더 잘 자고, 밥도 더 잘 먹고 안읽히던 글도 잘 읽히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변화의 이유는 마음이 편해져서. 내가 할머니를 모시는 게 아니라 할머니가 나를 지켜주는 것만 같다.
할머니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기억이 사라져서 나한테 "언니야" 라고 부르는데, 그래도 괜찮다. 할머니가 내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안정감이 든다. 간밤에는 "언니야" 부르길래 왜 부르냐고하면서 갔더니 "보고싶어서" 불렀다는 대답에 왈칵 눈물이 고인다. 내 이름도 몰라서 언니야라고 부르면서 뭐가 보고싶대. "아이고 이 할마시가 왜 또 울려어!" 하면서 목이 멘다. 할머니는 몇번을 더 불렀다. 언니야. 언니야. 왜요. 보고싶어서. 그 대화를 몇번이고 반복했다. 그게 싫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나는 신이 아니므로, 더이상 기력도 근육도 없는 할머니에게 새로운 몸을 줄 수는 없다. 고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머니의 남은 날들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드리는 게 전부다. 이제는. 그걸 위해서 내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쓰는 일이 더이상 두렵지 않았다. 나에게 진짜 중요한 게 뭔지, 뒤늦게나마 깨달았으므로.
할머니가 집에 온 날, 몇달만에 아주 깊은 잠을 잤다. 모든 불안이 사라지고 나와 할머니만 남은 것만 같은 느낌. 할머니가 곁에 있어서 위로받는 날들. 이런 날들이 얼마 안 남은 걸 알아서 더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