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칼질'이 키우는 평생 써먹을 '대인관계력'

AI시대, 코치형 부모는 부엌에서 대인관계 역량을 키운다.

AI 시대, 대인관계 역량이 가장 중요한 이유

AI가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힘이 더 중요해집니다. AI는 지식과 정보를 아무리 빠르게 처리해도, 사람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며 관계를 맺는 일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아는 전문 분야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과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결과물은 '사람'을 위합니다. 사람을 모르면서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아도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산업은 사람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 발전해 왔습니다.


AI 시대에는 우리는 더 인간다운 교류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기계가 많은 일을 대신할수록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시간은 더욱 귀해지니, 이런 시간을 많이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삶의 질 또한 더 높아질 것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대인관계 역량은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핵심 역량입니다. 저 역시 이 말에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요한 대인관계 역량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부모가 가정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놀라운 방법이 있습니다.


부엌에서 시작되는 대인관계역량 키우기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이유 중 하나는 "학교 끝나고 다들 학원을 가니까, 학원에서 친구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학원이나 학교를 넘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경험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가정에서도 충분히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저는 특히 '부엌'에 주목합니다. 부엌에서 아이에게 역할을 맡기고 함께 요리하며 대인관계 역량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이 역량을 부모가 키워줄 수 있는 방법 중 제가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바로 집에 친구들을 초대하는 일입니다. 엄마가 만든 밥을 대접하면서 아이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또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거죠.


친구를 집에 초대하면 여러 면에서 좋습니다. 가정에서의 내 아이 모습과 친구 관계 속 아이 모습을 모두 볼 수 있고, 어떤 친구를 사귀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다양한 친구를 사귀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대인관계 역량을 키우게 됩니다. 많이 해봐야 느는 게 역량이니까요.


그런데 친구를 초대하려면 음식을 대접해야 합니다. 이때 아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딸의 이야기: 유치원 참관수업에서 깨달음

딸만이 유치원 때 있었던 참관수업 이야기입니다.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도마 위에 놓인 오이 껍질을 까는 모습을 부모들은 뒤에서 숨죽이며 지켜봤습니다. 칼이 아니라 '필러'라는 껍질 까는 도구를 사용했는데도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유치원생에게 저런 도구를 줄 생각도 못했던 때라, 마치 수술 장면을 지켜보는 마음이었죠. 반면 아이들은 부모님들 앞에서 무슨 묘기라도 부리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이 작업을 해냈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이런 걸 아이가 해도 되는구나!"


아이는 몇 살부터 칼질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정확한 나이 지침 같은 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도, 딸도 언제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 수업 후 '껍질 깎이'는 딸이 맡아하게 된 건 분명합니다. 이 수업이 없었다면 아마도 딸에게 이걸 해보게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래 집을 비우는 동안 대학을 졸업한 딸에게 아빠를 위해 사과를 깎아 드리라고 했는데, 아이가 이걸 못하더라. 그러고 보니 한 번도 이 일을 아이에게 해보게 한 적이 없었어."


"한 번 해보면 하게 될 일"을 부모가 첫 시도를 막아서 '할 수 없는 일'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요? 꼭 칼질만은 아니겠죠.


아들의 이야기: 칼질이 만든 인간관계의 마법


아들 훈이는 유독 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칼질을 자기가 맡겠다며 칼 세트를 사자고 조르는 바람에 결국 구입했습니다. 처음에는 염려했지만, 훈이는 기대 이상으로 칼질을 잘했습니다. 확실히 저보다도 잘했죠. 힘이 센 남자가 할 일이라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요리할 때 칼질은 주로 훈이가 해주니 저도 일이 줄어 좋았습니다. 대신 재료를 씻거나 껍질을 버리는 일은 제가 하게 되어, 누가 봐도 부엌에서는 훈이가 '주방장'이고 저는 '시다' 노릇을 하는 꼴이 되곤 했죠. 이렇게 칼질을 도맡아 하니 실력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훈이가 제일 좋아한 건 수박 썰기였습니다. 크기가 커서 썰는 재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제일 맛있는 부분을 가장 맘에 드는 사람에게 예쁘게 대접할 수 있는 '권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셰프처럼 특별한 제스처로 손님들에게 수박을 내놓으며


"이건 진액예요!"


라고 말할 때, 사람들의 관심은 훈이에게 집중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 엄마를 도와주네", "분위기를 참 좋게 만드는구나" 같은 칭찬은 공부하던 훈이를 디저트 시간에 어김없이 부엌으로 나오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유명인'이 되다

이 경험의 절정은 교회 피크닉에서 찾아왔습니다. 여러 명이 대충 수박을 썰고 있을 때, 훈이가 나서서 칼을 들었습니다. 집에서 갈고닦은 실력은 한눈에 달랐습니다. 훈이가 썰어놓은 수박은 각이 잡히고 먹기 좋게 정렬되어 있었죠.


수박을 먹으러 온 사람마다 훈이에게 칭찬을 건넸습니다. 칭찬을 들을 때마다 싱글벙글 웃는 훈이를 보며, 저는 확신했습니다. 공부가 아닌 일상의 작은 능력이라도, 남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호감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최고의 대인관계 기술이라는 것을요. 훈이는 그 후 교회에서 '수박 썰기 잘하는 아이'로 유명해졌고, 부모들이 기억해 주는 기특한 남자아이가 되었습니다.


칼질에서 요리로, 요리에서 관계로

칼질을 잘하다 보니 부엌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고, 자연스럽게 요리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요리는 대학 시절, 친구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습니다. 훈이가 함께 사는 친구들에게 음식을 자주 해주니


"훈이가 있는 곳에 가면 맛있는 걸 먹는다"


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요리 하나가 친구 관계를 더 부드럽게 만드는 아주 쉬운 방법이 된 겁니다. 저는 훈이에게


"설거지는 하지 말고, 대신 요리를 하라"


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곧 남을 초대하고 대접할 수 있는 능력으로 연결되어, 후에는 사회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훈이는 미국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요리로 잘 이어가고 있습니다.


칼질의 긍정적인 효과는 남편에게도 이어졌습니다. 집안일을 좋아하지 않던 남편에게도 칼질부터 시켰더니, 역시 요리로 이어졌고, 부부가 함께 요리하니 손님을 초대하는 일도 부담이 사라졌습니다. AI 시대에 사람과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더욱 귀해지는 만큼, 이런 시간을 많이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코치형 부모, 아이에게 '역할'을 선물하세요

대인관계 역량은 특별한 곳이 아닌, 아주 작은 일상에서 길러집니다. 아이의 잠재된 역량을 찾고 강화하는 일은 우리 집 부엌에서부터 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칼에 대한 작은 관심이 훌륭한 칼질 능력으로 발전했듯, 그 능력은 아이를 꼭 셰프로 만들지 않더라도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건강하게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칼질에 관심을 보인다면 안전하게 시도할 기회를 주세요. 일상의 작은 일이라도 반복을 통해 숙련된 스킬은 아이의 삶에서 반드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칼질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아이들이 부엌에서 요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기회를 주면 어떨까요?


"이건 엄마가 다 해줄게, 너는 공부해"


라는 말은 이제 멈춰주세요. 이것은 단순히 부모의 수고를 덜기 위함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자기 스스로 밥도 해 먹고 남을 초대할 수 있는 '자기 식사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일입니다. 이 자기 관리 역량은 더 나아가 타인과 교류하는 대인관계 역량까지 연결되는 아주 중요한 생활 교육이자 미래 교육입니다.


아이가 부엌에서 하나의 역할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격려하세요. 될 수 있는 대로 부엌에 더 자주 와서 자기만의 역할을 찾을 수 있도록 코치형 부모가 되어 기회를 열어주세요.


제 딸 민이 이제 엄마가 되어 자기 아이가 크면 도시락을 스스로 싸게 하겠다고 합니다. 제가 아이들 도시락을 싸주던 것에서 한 수 더 나아간 겁니다. 아이가 자기 도시락을 스스로 챙기고, 나아가 친구에게 요리까지 해줄 수 있는 아이로 자라도록 돕는 것, 이것이야말로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자립적이고 사회적인 교육 방법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부엌에서의 작은 역할 하나가,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엄청난 대인관계 역량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가 AI 시대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도록, 지금 바로 부엌으로 초대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코치 이진영의 미래 역량 코칭 -

[‘AI 시대, 코치형 부모가 답이다 (28화)]

[5장:AI 시대, 부모는 '내 아이 맞춤코치'가 되다]

이전 27화5-5. 코치형 부모의 사춘기 통과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