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코치형 부모의 사춘기 통과법

AI시대, 코치형 부모는 오직 '좋은 관계 유지’에만 집중합니다.

코칭의 첫 번째 원칙: 관계가 전부다

"선생님이 미운 과목은 공부하기 싫다"는 말, 들어보셨죠?

코칭의 세계에도 똑같은 원칙이 있습니다. 코치와 코칭을 받는 사람 사이에 신뢰와 유대감, 즉 ‘라포(Rapport)’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코칭도 효과가 없습니다. 올림픽 금메달 코치라 해도, 선수가 그 코치를 신뢰하지 않으면 그의 어떤 조언도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코치형 부모의 역할 역시 이 '관계' 위에서 시작됩니다. 코칭의 핵심 도구인 '좋은 질문'이나 '경청'은 자녀와의 신뢰 관계, 즉 라포가 형성되었을 때만 제 역할을 합니다. 만약 관계가 무너진다면, 부모의 모든 조언과 코칭은 잔소리나 훈계로 전락하고 맙니다.


부모-자녀 관계는 특히 사춘기에 더욱 민감합니다. 엄마가 미우면 엄마 말은 잔소리로 들리고, 아빠가 답답하면 아빠 조언은 꼰대 소리가 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 뇌는 '공사 중'이라 논리도, 설득도, 훈계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코치형 부모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단 하나, 좋은 관계만 유지하는 것입니다. 교육도 하고 관계도 좋게 하겠다는 욕심을 버립니다. 이 시기만큼은 오직 하나, '관계'만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관계만 살아있으면, 사춘기가 지나고 나서 다시 코칭을 통해 대화할 수 있지만, 관계가 무너지면 사춘기가 끝나도 회복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첫 째 딸 민의 사춘기 : 고구마 케이크 파티 - 창의성으로 관계 지키기

사춘기가 되면 아이 대하기가 무서워서 피하고 싶었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사춘기에 대비하려고 여러 방법까지 알려주었지만, 중2 딸 민이 이유 없이 짜증을 부리고 도가 지나치자 저 역시 화를 내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저녁 식사 전쟁


한 번은 저녁 식사 준비가 늦어졌을 때입니다. 딸이 아주 못마땅한 얼굴로 식탁 앞에 앉았다가,


"배고픔 정도는 참을 줄 알아야지"


라는 내 말에 갑자기 배가 안 고프다며 방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그 오만하고 거친 표정과 말투는 '내 딸이 이런 아이였나?' 하는 충격을 주었습니다. 결국 저는 평소와 달리 무서운 표정과 사나운 목소리로


"지금 당장 식탁에 앉아!"


라고 쏘아붙였습니다. 딸은 심상치 않은 나의 반응에 식탁에 앉아 밥만 후다닥 먹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다행히 선은 넘지 않았지만, 그 적의에 찬 표정과 눈… 그건 내 딸이 아니었습니다.


높고 두꺼운 벽


아이가 닫고 들어간 방문은 높고 두꺼운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방에 들어가 훈계를 했을 테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그 벽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 관계에 금이 갈 것만 같아 두려웠습니다. "사춘기에는 아이가 무서워진다"는 말이 실감 났습니다.


'교육 차원에서 야단을 쳐야 하나, 이대로 넘어가면 버릇이 되는 건 아닌가?' 머릿속에서는 생각이 맴돌았지만, 지금 저 방에 들어가면 잔소리만 될 게 뻔했습니다. 저는 일단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헬스장으로 갔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뭔가 다른, 좀 더 세련된 엄마가 되고 싶은데… 야단치는 것 말고 관계를 다독일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구마 케이크의 마법


2시간 정도 운동을 하니 기분 전환이 되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집 앞 빵집에 들러 딸이 제일 좋아하는 고구마 케이크를 큰 것으로 샀습니다. 집에 와서는 아이들과 남편을 식탁에 불러 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자, 이것은 민의 화를 풀어주기 위한 깜짝 파티야! 민은 이미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엄마는 믿어. 그러니까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이 고구마 케이크를 먹으며 파티를 하는 거야."


예전의 표정으로 돌아온 딸은 고구마 케이크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까 내가 받은 고통은 딸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했습니다. 아이는 이미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상쾌하게 인사하는 딸에게 밤새 준비한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넌 화를 내기엔 너무 예쁜 아이야."


딸은 장난스럽게 "그래서 엄마는 고슴도치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백 마디 훈계보다 하나의 고구마 케이크가, 긴 설교보다 짧고 긍정적인 한마디가 관계를 회복하는 데 훨씬 더 강력했습니다.


둘째 아들 훈의 사춘기: 운동화에 화풀이 - 인내로 관계 지키기

딸의 사춘기도 힘들었지만, 아들의 경우는 훨씬 더 심각했습니다. 고 1이 된 아들 훈이는 어느 날부터 내 아들이 맞나 싶게 퉁명스럽고 사사건건 부정적이고 공격적이 되었습니다. 문 닫고 방에 들어가 컴퓨터 게임만 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방 속에서 친구와 말하는 목소리는 엄마와 말할 때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밝고, 재미있고, 친절했습니다.


'아, 나에게만 이렇게 대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더 아팠습니다.


알고 있는 걸 실천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머리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에는 기다려라", "관계를 우선하라"... 하지만 막상 아들이 돌변하니 모든 이론이 무용지물 같았습니다. 나는 아들을 사랑하는데, 아들이 미워지는 내가 싫었습니다.


한 번은 아들이 불손하게 문을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방에 따라 들어가 한바탕 야단을 치고 싶었지만, 그 순간 예전에 읽은 책에서 본 '말하기 전 3초만'이 떠올랐습니다. 일단 이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낫겠다 싶어 헬스장으로 갔습니다.


러닝머신 위를 뛰며 저는 수없이 다짐했습니다.


'그래, 배운 대로 하자. 코칭의 첫 번째 원칙은 라포, 관계가 먼저야.' '다 내려놓고 좋은 관계만 유지하자. 오직 관계만 신경 쓰자.'


이런 다짐을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습니다. 자정이 다 되어 집에 들어오니 훈이가 눈치를 보며


"엄마, 아까 죄송했어요"


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사춘기는 이해보다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운동화 사건


하지만 인내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훈의 불손함, 엄마의 마음 상함과 인내, 훈의 사과... 이런 식이 반복되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현관 앞에 놓인 훈의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지런한 딸의 부츠와 달리 한 짝씩 다른 구석에 처박혀 있는 운동화를 보니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저 운동화처럼 제멋대로구나. 저 운동화가 꼭 훈이 같네.'


꼴도 보기 싫은 느낌. 그래서 훈의 운동화를 마구 발로 밟았습니다. 쿵쿵쿵.


이런 행동을 하는 내가 우스웠지만, 뭔가 속이 풀리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나니, 훈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운동화야 좀 억울했겠지만, 사춘기 절정에 바닥난 엄마의 인내심은 이런 식으로 폭발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운동화를 정성스럽게 닦아서 하얗게 빨아 말렸습니다.


전환점


솔직히 매번 참았던 건 아닙니다. 실패한 날은 훈에게 소리를 질렀고, 훈은 더 문을 꽁꽁 닫아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시작했습니다. 코치형 부모가 된다는 것은 완벽한 부모가 되는 게 아니라, 실패해도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 노력하는 부모였습니다. 그러던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이 불쑥 말했습니다.


"엄마, 컴퓨터 거실로 내놓아야겠어요. 제 마음이 바뀔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 컴퓨터와 책상을 거실로 옮겨요."


우리는 바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컴퓨터가 거실로 나오면서 훈도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고, 오가며 자연스러운 소통이 회복되었습니다.


돌아보며


대학을 졸업할 때쯤 운동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훈의 얼굴 표정이 묘했습니다. 마치 생각지도 않게 엄마의 발길질을 받은 운동화처럼 당황한 그런 얼굴이었습니다.


"엄마, 내가 사춘기를 그렇게 심하게 했어요?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전 정말 조용히 지낸 것 같은데......"


훈이는 자기가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기억도 못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기억도 못하는 행동들에 대해 과하게 반응하지 않고, 기다렸던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구나.'

나중에 훈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가 사춘기 때 많이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 중에는 부모님이랑 완전히 틀어진 애들도 있거든요.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운이 아니라 선택이었다고, 매일매일 '관계'를 선택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냥 웃으며 들었습니다.


AI 시대, 관계 유지를 위한 코치형 부모의 지혜

대학 때 시를 가르치던 교수님은 "앎과 삶은 다르다"라고 하셨습니다. 알고 있는 것(참고 기다려라, 관계를 우선하라)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사춘기를 겪으며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AI 시대, 인간적인 '관계'가 핵심 역량인 시대입니다. 기계가 지식을 대체할수록, 사람과 연결되는 능력, 즉 라포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집니다. 사춘기는 '관계'를 지키는 실천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사춘기 아이와 관계 지키는 5가지 실천법

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은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나눕니다.


1. 화날 땐 일단 그 공간을 벗어나라

헬스장, 산책, 카페... 어디든 좋습니다.

말하기 전 3초가 아니라 3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2. 아이 없을 때 물건에 화풀이하라

운동화, 베개, 쿠션... 아이에게 직접 화를 내는 것보다 낫습니다.

화풀이한 뒤엔 미안한 마음으로 정성껏 정리해 주세요.

3. 말 대신 행동으로 표현하라

좋아하는 간식, 옆에 앉아주기, 함께 영화 보기

백 마디 훈계보다 하나의 고구마 케이크가 강력합니다.

4. 짧은 긍정 메시지 한마디를 준비하라

"넌 화내기엔 너무 예쁜 아이야"

"엄마는 네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밤에 준비해뒀다가 다음 날 아침 건네세요.

5. 부딪치는 시간 줄이고, 혼자 있는 시간 존중하기

억지로 대화하려 하지 마세요.

방문 앞을 지나가며 "잘 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는 결국 ‘인내심의 예술’입니다. 말보다 침묵이, 훈육보다 믿음이, 잔소리보다 라포가 더 큰 힘을 냅니다.


- 코치 이진영의 미래 역량 코칭 -

[‘AI 시대, 코치형 부모가 답이다 (27화)]

[5장:AI 시대, 부모는 '내 아이 맞춤코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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