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감정을 먼저 챙기는 공감 스킬
4-3. 아이의 감정을 먼저 챙기는 공감스킬
돌이켜 보면, 제는 두 아이의 감정을 먼저 배려하는 일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현재 어떤 감정인지 파악하기보다는 주로 스케줄을 우선시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3시에 그거 배우러 가야지?”
“숙제는 다 했어?”
“시험 결과는 언제 나오지?”
제가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아주 어려서부터 이런 질문을 먼저, 자주 할 것입니다.
“지금 기분이 어때?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오늘 힘들어 보이네. 어떤 점이 힘들었던 건데?”
“친구랑 다퉈서 좀 그랬겠네.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떤데. 뭘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 같이 뭘 해 볼까? ”
이렇게 쉽고 간단한 ‘마법의 말’이 왜 자주 안 나왔는지, 왜 어려웠는지 돌이켜 보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감정은 참는 것으로 알고 자랐습니다. 화남, 실망, 우울. 슬픔 등 여러 다양한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엄마, 아빠, 여성, 남성으로서의 역할에 따라 감정은 잘 참을수록 좋다고 여기는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에, 감정을 표현하거나 다루는 방법을 모르고 자랐습니다. '공감'이라는 단어도 예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눈에 띄게, 한국은 급성장했습니다. 현재는 ‘감성, 이미지, 상상력, 스토리’의 중요성이 강조되며 감정까지도 놓치지 않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더 나아가, 고도의 지능을 가진 첨단 기계 문명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계가 못하는 ‘상대방의 생각과 감성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공감 능력’ 이환영 받고 있습니다.
‘감정’이 중요해지는 시대로 가고 있는데도, 아이의 감정을 무시한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다행히 이것을 계기로 저도 아이의 감정을 먼저 챙기게 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이 친구 5명과 타운하우스에서 생활하던 때였습니다. 2층 방을 쓰는 딸은, 방 창문에 참새가 둥지를 틀자 거기에서 벌어지는 일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 북에 올렸습니다. 책상이 창문을 향하고 있어 얼굴만 들면 바로 참새들이 보여 시간만 나면 사진을 찍었습니다. 덕분에 참새는 둥지를 만들고, 세 개의 알을 낳고, 새끼새들이 어미 새가 물어주는 음식을 먹으며 자라나는 걸 저도 생생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새끼들이 음식을 먹을 때 얼마나 입을 크게 벌릴 수 있는지도 그때 알았습니다. 그러던 중,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큰 일 났어요!”
딸의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는 다급한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무슨 인인데? 빨리 말해 봐.”
“엄마, 새끼 새 한 마리가 밟혀 죽었어요. 몸집이 큰 놈이 더 먹으려고 새끼 새를 밟았나 봐요. 어떻게 해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였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정말 큰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너무 놀랐던 그 마음에 비해 황당한 이야기라 짜증 섞인 말이 나왔습니다.
“아니, 그 새 한 마리 죽은 걸 가지고 뭘 그래. 정말 큰 일 난 줄 알았네. 아니 그렇게 약해져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려고 해? 나 원참.”
생각도 하기 전에 말이 먼저 튀어나왔습니다. 2년 후에는 딸을 캐나다에 남겨 두고 귀국할 계획이어서 어떻게든지 ‘홀로 강하게 설 수 있는 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전화 속에서 이번에는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 코칭 공부하신다는 분이 말을 그렇게 하세요? 내 슬픈 마음을 그냥 받아 주면 안 돼요? ‘그랬구나~’ 한 마디만 해 주면 되는 걸 그걸 못하세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변명의 말이 나왔지만 구차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원래 자식은 달라. 자식에게는 배운 대로 잘 안 되는 법이라고.”
시간이 지난 후에 전 딸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모성의 보호 본능이 앞서면 아이의 슬픈 상황을 바로 없애주고 싶어 진다고. 엄마가 도움을 줄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 일 아니라는 말부터 해서라도 마음을 바꿔 주고 싶다고. 결과적으로 엄마 때문에 더 슬픈 상황을 만들어 미안하다고.
‘공감’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저는 이때가 떠오릅니다. 아이의 끝말을 반복하거나, “그랬구나”라는 말로 시작하라는 ‘공감’의 기본을 머리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감정을 챙긴다~’ 이것도 너무 긴 프로세스라 어떤 상황에서는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무조건 ‘~구나!’를 먼저 하는 식으로 습관을 들이려 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의식적으로 아이 말의 끝을 반복하거나, ‘그랬구나’를 먼저 말했습니다.
(1)
“엄마, 저 이거 먹기 싫어요.”
‘왜 먹기 싫어, 엄마가 널 위해 만든 건데. 한 번 먹어 봐’ 대신에,
“먹기 싫구나. 그럼 뭘 먹고 싶어?”
(2)
“엄마, 학교에서 선생님이 내 답이 틀렸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내가 맞는 것 같아서 기분 나빴어요. 하루 종일”
‘왜 선생님이 답을 틀렸다고 하는 거야? 선생님도 이유가 있겠지.’ 대신에
“기분이 나빴구나, 하루 종일, 나라도 기분 나빴겠는 걸”
이제 소아과 의사가 된 딸이 워크숍에서 배운 내용을 말해 주었습니다. 어느 나라건 엄마들이 아이의 말을 우선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합니다. 별거 아닌 사소한 말에서도 엄마는 아이들의 말을 부정하는 식으로 대꾸하고 있고, 이런 엄마의 무의식적 행동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상당히 끼친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의 엄마들이 그렇다고 하니 조금은 위로가 되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여길 일은 아닙니다.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것을 의식적으로 조금만 바꿔도 아이에게 부정적 영향 대신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데 당연히 노력해 봐야 죠.
딸에 의하면, 엄마들은, 아이들이 하는 말을 일단 부정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1)
“엄마, 자러 가기 싫어요.”
(“자러 가기 싫구나”)를 먼저 하면 좋은데,
“왜 자러 가기 싫어, 얼른 들어가 자야지.” 가 나옵니다.
(2)
“엄마, 이 옷 너무 두꺼워서 입기 싫어요.”
("아, 이 옷 너무 두꺼워서 입기 싫구나.”)를 먼저 하면 좋은데,
“왜, 날씨 추운데 입어야지.”가 튀어나옵니다.
(3)
“엄마, 강아지가 죽어서 마음이 아파요.”
(“강아지가 죽어서 마음이 아프구나.”)를 먼저 하면 좋은데,
“괜찮아, 강아지가 아팠잖아. 지금 안 아프니 더 나을 거야. 다른 강아지 찾아보자.”를 말하게 됩니다.
코칭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입니다. 코치형 부모는 현재 어떤 부분을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주목합니다. 부모로서 아이의 감정을 먼저 챙기지 못했다면, 이제부터는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면 됩니다. 말의 표현을 조금만 바꿔도 가능합니다.
부모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바로 전에,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 주는 그 한마디 말, 끝말의 반복은 조금만 신경 쓰면 됩니다. 코치형 부모는, 의식적으로 3초를 생각하고, 아이의 끝말을 반복하며 ‘~ 구나’로 공감을 표현합니다. 아이는 부모와 대화하는 걸 좋아하게 되고 그러면 그 후 코칭이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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