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친구들에게 밥 해 주기
5-3. 기억에 남는 엄마 밥의 위력 – 친구들에게 밥 해 주기
아직 엄마가 되기 전, 내 아이에게 꼭 기억에 남을 음식 만들어 주겠다는 다짐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학원 시절 친한 친구의 어머님이 집들이를 열었습니다. 그때는 1980년으로, 대학생들을 집에 초대하여 음식을 차려주는 일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 어머님은 무려 10명이 넘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때 나온 요리는 딱 3가지. 탕평채와 깐풍기, 그리고 빈대떡이었습니다. 뷔페 식당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접시에 나온 음식은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넉넉히 들어있는 간 소고기에 김이 들어 있는 탕평채, 매콤 달콤 비율이 완벽한 깐풍기, 작은 밥공기 크기의 두툼한 빈대떡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친구들 모두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요리에 관심도 재능도 없는 저였지만, 이 한 번의 식탁 경험으로, 내 아이와 그 친구들을 위해 식탁을 차리고 대화를 나누는 멋진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까지 멋지고 대단한 아이로 보였던 순간이었습니다. 엄마가 만든 식탁의 힘은 대단해 보였습니다.
소망이 현실로 이뤄지기까지는 늘 그렇듯 실패의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닭튀김을 만들었는데, 너무 딱딱하게 되어 실망만 주기도 했고, 너무 허둥대거나 음식이 늦어져 좋은 추억과 거리가 멀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친구들에게 내가 직접 만든 요리를 해 주려 애를 썼습니다. 아들이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집에 모여서 팀 프로젝트를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 날에는 퇴근길에 장을 보고, 부랴부랴 저녁을 해 주었습니다. 주 요리는 스테이크, 삼겹살과 보쌈. 고기를 좋아할 나이이기도 했고 피자 값으로 훨씬 좋은 음식을 푸짐하게 먹일 수 있어 번거로워도 이렇게 했습니다.
식탁에서 아들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친구들을 잘 알 수 있었고, 친구들 속에 있는 아들의 다른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창 고기를 좋아하는 나이여서 제 고기요리는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친구 집에서는 주로 피자나 치킨을 시켜 주는데 엄마표 고기 요리를 먹었으니 아이들에게도 특별했을 겁니다. 몇 차례 이런 시간을 가졌지만, 곧 아들은 졸업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식 날, 아들 친구 엄마로부터 이런 인사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걸 많이 해 주셨다면서요? 우리 애가 훈이 집에만 갔다 오면 맛있는 거 많이 먹었다고 말했어요. 한 번 꼭 인사드리려 했는데 이렇게 뵙게 되네요. 저는 그냥 피자만 해 줘서 미안했어요. 정말 감사드려요. 호호”
남자아이들이라 내가 해 준 음식에 대해 집에 가서 말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이런 인사를 받아서 정말 좋았습니다. 대학원 시절의 소망을 이룬 것 같아 뿌듯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 후, 이 친구는 대학생이 되어 아들이 있을 때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함께 머물며, 고등학교 시절 제가 해 준 음식, 특히 보쌈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는 화기애애했습니다. 캐나다에서 우리 집에서 함께한 여러 차례의 식사 때문에 그 친구와도 더 많은 주제로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딸 친구와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1달 동안 딸과 함께 보내며, 방학에 갈 집이 없는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을 해 주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였는데, 이때가 그때 제가 만든 음식을 먹은 친구들은 모두 사회인이 되었고, 결혼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결혼식에서 한 친구가 ‘오늘 음식 정말 맛있었지?’라고 말을 했는데, 한 남학생이
“그때 민의 엄마가 해 준 음식보다 더 맛있었어?”
라고 말했답니다. 이 짧은 한 마디 말을 전해 듣고, 혼자 얼마나 기뻤던지. ‘자신이 원하는 일’은 이루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느낌이었습니다.
엄마의 음식과 관련된 기억은 계속 이어집니다. 2012년 가을. 귀국한 저를 위해 대학원 시절 그 친구 엄마께서 저를 초대하셨습니다. 이번에도 똑같은 음식 3가지(탕평채, 깐풍기, 빈대떡)였습니다. 80대 나이에 건강이 예전 같지 않으신데도 그때와 똑같은 맛, 아니 더 맛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 친구 어머님께 저의 롤 모델이 되었었고, 두 아이 친구들에게 기억에 남는 식탁을 차려 준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친구 어머님도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그리고 또 하나의 새로운 소망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나도 70 즈음에 두 아이의 그때 그 친구들 불러 놓고 예전에 해 준 음식을 먹으며 훈훈한 대화를 나누는 것. 그때의 음식에는 꼭 ‘보쌈’과 ‘파전’은 들어간다고.
엄마의 식탁의 추억은, 말보다 더욱 강력하게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친구를 위해 요리를 하고 나누는 시간은 인생에서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이 짧았던 시간은 지금 사회생활을 하는 30대 두 아이에게 계속 이어지고 있어 참 다행입니다. 두 아이는 기회만 되면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음식을 나누며 즐깁니다. 물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저는 언제나 응원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집에 사람이 몰려올 때, 그때가 너희들이 잘 살고 있는 때란다. 친구들 많이 초대하고 음식도 푸짐하게 만들어 대접하렴.”
‘코칭하는 부모는 식탁의 힘을 안다.’
제 경험에서 나온 코칭 철학입니다. 아이의 내부에 잠재된 능력을 깨우며 양육하는 코치형 부모는 아이들을 늘 응원하고 지원합니다. 말로도 지원할 수 있지만, 밥으로 지원하는 일은 더욱 실질적이고 오래갑니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따뜻한 연결고리가 바로 코칭의 기본 원칙인 관계형성을 확고하게 정립하게 해 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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