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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PARK Feb 07. 2020

괜찮아, 그게 나야.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 상담을 시작했다. 첫 상담은 MBTI 검사였다. 재미삼아 온라인으로 무료 검사를 몇 번 본적이 있었는데, 무료 검사이기에 결과는 신빙성이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번은 유료 검사에 검증된 상담사가 진행하기에 좀 더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꺼운 시험지를 받아들고 최대한 솔직하게 질문들에 답하였다. 


1주일 후, 검사 결과가 나왔다. 


역시나, INTP.

"세상 살기 피곤한 성격이네요."


검사 결과지를 보면서 상담사가 말하였다. 그리고 4가지의 척도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1시간 가량의 긴 설명 후 상담사가 나에게 물었다. "이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해가 좀 되나요?"


결과는 비교적 정확했지만, 세상 살기 피곤한 성격이라는 것을 누가 인정하고 싶었겠나. 나는 차갑게 말했다. 


"아니요, 전 이런 성격이 아니에요."


상담사 선생님의 당황한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10년 전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 이후 나는 내 성격을 좋아할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싫어했다. 외향적이지 못하고, 현실 감각 떨어지고, 계획적으로 일을 해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이 되기 싫었다. 경쟁적으로 성취와 성공을 중요시 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고 일하면서, 나와는 다른 진취적인 사람들을 부럽게 여겼고, 그들처럼 되기 위해 나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울증은 심해졌고, 자기 혐오에 빠져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대니엘 레틀의 책 "성격의 탄생"을 읽으면서, 성격와 나 자신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고, 자기 혐오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성격은 50%가 유전이며, 나머지 50%는 기타 다양한 요소에 (어린 시절의 경험, 어머니 임신 중 받은 스트레스 등등)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놀랍게도 가족 관계나 양육 환경은 큰 영향이 없다고 책에서는 주장한다. 나이가 들면서 약간씩 바뀌기도 하지만, 기본 기질은 결국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다양한 성격이 존재하는 이유는 진화론적으로 환경에 따라서 생존하기 유리한 성격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변화가 잦고, 자극에 재빠르게 대처해야 하는 환경과, 변화가 크게 없고 원만한 인생을 살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의 기질은 다른 것이다. 


좋고 나쁜 성격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 성격에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외향성이 큰 사람들은 성취를 추구하는 경향이 높으며, 이를 위해서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심리학계에서는 MBTI 검사보다 Big 5 Personality Test를 더 정확하게 여기며, 이 검사에서 사용하는 5개 성격 특성(외향성, 성실성, 친화성, 신경증, 개방성)을 중심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사람들은 5개 성격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각자 다른 수치를 가지고 있다. 


나는 신경증과 개방성이 높은 편이며, 친화성과 외향성이 낮은 편이다. 이를 고려했을 때, 내가 왜 항상 불안해하면서 살아왔는지, 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 대하는 일을 피곤해했고, 사회적인 명성이나 지위를 얻으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이유가 다 있었다.


모든 것이 성격으로만 설명될 수는 없으며 이 이론에도 오점은 있겠지만, 우선 나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사실 그동안 받은 상담보다 더 효과적이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845759




상담사가 말한대로, 나는 참 피곤하게 살고 있다. 남들이 가는 길 곧장 따라가지 않고, 시키는 대로 성실하게 일하지 않고, 나를 비롯한 모든 것에 불만을 가지고 이를 개선시킬 수 있는 고민을 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내 기질대로 살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가장 피곤한 일이다. 남들에게는 피곤해보일 수 있는 일이, 나에게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 일수도 있지 않을까? 그 것이 나의 강점이 될 수도 있다. 


내 성격을 바꿀 수 없지만, 내 성격을 바라보는 관점은 바꿀 수 있으니까.


그 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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