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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PARK Mar 09. 2020

10년차 우울증 환자의 고백

우울이 정확히 언제 시작된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였고, 엄마의 히스테리가 심해졌고, 아빠는 집을 나갔고,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렸을 때였으니.


그 이후 약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울증을 안고 산다. 예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우울에 여전히 갇혀 있다. 부정적인 감정들, 기억들, 생각에 갇혀 현재의 희열을 누리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현재에서 미래로 움직여가는데, 나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감정에 멈추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하던지, 어디에 있던지, 누구와 있던지, 우울은 나를 따라다닌다.


20대 전체를 우울증과 함께 하면서, 행복할 수 있었던 많은 기회를 놓쳤다. 공부도 제대로 못했고, 일도 제대로 못했다. 도전해보고 싶었던 프로젝트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매일 우울해서 침대에 누워있는데, 어떻게 공부와 일을 제대로 하겠는가. '어자피 해봤자 나는 안됬을꺼야'라는 변명을 지어내지만, 내 안에는 무기력과 자책이 쌓여갈 뿐이다. 


필사적으로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동안 10명이 넘는 상담사들을 만나보았다. 그들에게 성장과정, 내면, 고민을 열심히 털어놓았다. 하지만 상담 1시간 이후 무엇을 깨닫는 듯하다가 일상이 지나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여러가지 약도 먹어보았다. 무거운 짐이 덜어지는 기분이 난다고 들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부작용만 경험했다. 


휴학을 하면서 쉬어도 보고, 연애도 해보고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 한 것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휴양지로 여행도 해보고, 명상도 해보고, 요가도 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시도해본 것 같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동굴에 빛이 들어오는듯 하다가, 사라져버렸다. 엉덩이가 무거운 우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울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지쳐 '끝내고 싶다'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내가 가진 역량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고, 무엇을 해도 딱히 감정을 느끼지 못하며, 나를 잃어버린 상태로 시간을 보내는데, 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나로서 살 수가 없는데!


죽고 싶지는 않지만,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죽음과 삶 사이에서 10년을 보내왔다.




그래도 그동안 발버둥친 것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요즘 조금씩 빛이 보인다.. 아직도 진행중이기는 하지만... 이제는 좀 보일 때도 되지 않았는가. 죽을 수 없어서 사는 것이 아닌, 살고 싶어서 사는 인생이고 싶다.


흔히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불리운다. 정말 언젠가는 나의 우울증도 감기처럼, 힘들 때 찾아오지만 몇 일 푹 쉬면 낫는 그런 병이 되는 날이 올 거라고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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