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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PARK Feb 21. 2023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실패한 걸까?

 커리어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1.

LinkedIn 에서 또래 친구들을 스토킹하다보면, 회사에서 중요한 자리에 올랐거나 사업을 하고 있다. 외국인 신분으로 미국에 정착하여 그토록 내가 꿈꾸었던 영주권을 딴 친구들도 보인다. 뒷사정은 알 수 없다만 우선 겉으로 보이는 것은 그렇다.


그러는 반면, 나는 일 조금 하다 여행하고, 또 다른 일을 시도하다 여행하고 다시 일을 찾고 있는 한량이다. 수시로 사는 곳과 아는 사람들이 바뀌고, 무언가 쌓아놓은 것도 없는 것 같다. 다시 각갑고 구직하는 요즘, 현타가 종종 오곤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회사에서 승진하고 인정받는 것이 그닥 나를 행복하게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승진해서 제일 좋은 점이 있다면 돈을 더 많이 받을 것이고 타이틀도 좀 더 간지나겠다. 하지만 일은 더 빡세게 해야 할 것이고, 책임도 더 많아질 것이다. 사업이나 프리랜서도 형태만 다를 뿐이지 일을 좋아하고 많이 해야 하는 것은 변함없다. 물론 일 자체를 정말 좋아하고 그 것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겠다. 하지만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일을 그렇게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님 그런 일을 찾지 못했거나.


이런 내가 너무 비정상적인 것 같았고, 일을 사랑하지 못한 내가 한심스러웠다. 좋은 교육을 받고, 유학까지 갔다왔지만 돈도 제대로 못 벌고, 여러가지를 얕게 파보았지만 무언가를 제대로 해본 것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한 가지에 꽃히기는 싫고, 매일 성장을 외치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처럼 나도 살 수는 없는 걸까?


2.

그렇지만... 왜 일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 인생에 '당연'한 것은 없는데 왜 꿈을 가져야 하고 커리어 개발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건가? 물론 경제권을 갖는 것은 중요하지만, 나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아붙고, 나의 아이덴티티가 되어야 할만큼 커리어가 대단한 것인가?


솔직히 자본주의 사회에 팔만한 재산이 없어 나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기에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땅이 있고 집이 있다면 이런 고민을 머리 아프도록 하면서 나를 괴롭혔을까? 내가 로마 시대의 귀족으로 태어났다면, 맨날 먹고 놀다가 지루해져서 하늘을 관찰하고, 과학 연구를 했을 것 같다. 사교 파티에 가서 철학과 인생에 대해 토론하고 책을 쓰다가 언젠가 죽었겠지. 행복한 인생이었을 것 같다.


<숲속의 자본주의자>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삶을 살아도 되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저자는 미국 유학가서 박사과정을 완료했지만, 그걸로 무언가를 하지 않고 시골집에서 자급자족하면서 매일매일 소박하게 생활하고 살아가는 실험을 7년째 해내고 있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 책을 보면서 많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좋은 교육을 받았으니 너무나 당연하게 좋은 직업을 구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이 쓰는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고정관념을 산산히 부수는 책이었다. 물론 저자 부부는 한국 아파트 시세 차익으로 얻은 투자금이 있기에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살 수 있기도 하다만, 이런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물론 커리어는 단순히 돈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커리어를 자신의 일부와 삶의 의미로 생각하니까. 그런 일을 찾으면 참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삶을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AI가 사회의 대부분의 일을 대체하게 된다면, 이런 삶의 방식이 대세가 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정의가 바뀌어야 하겠지만.


3.

내 취미 중 하나는 클라이밍이다. 클라이밍 중에서도 줄을 걸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스타일인 탑 로핑과 리드를 좋아한다. 요즘 한국에서 한창 핫한 볼더링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볼더링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깨고, 레벨을 올리고, 이를 인증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에 관심이 없다. 나에게 클라이밍은 세상 모든 것에서 벗어나 오직 한 행위에 집중하는 '명상'에 더 가깝다. 내 신경을 발끝 1cm에 집중시키면서 나 자신과 연결되는 과정이 즐겁다. 물론 top까지 가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것은 이 모든 명상을 위한 핑계일 뿐이다. 리드 클라이밍의 경우는, 창의적으로 내가 길을 만들어나간다는 '창조'의 쾌감이 있다. 실내 암장처럼 딱 루트가 정해져 있기 보다는, 자신의 실력, 체격에 따라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길을 만들어내는 것도 클라이밍의 재미이다.


내가 언젠가, 내가 사랑하고 성장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된다면 클라이밍과 비슷한 경험이 아닐까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과를 내고 성취를 하고 인정받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는 것이 '명상'과 가까운 경험이 되는 것.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그 때는 오직 그 행위에 집중할 수 있는 flow를 느끼는 것. 언젠가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인생은 흘러가고 길은 존재하리라.


그냥 다음 생애에는 게으른 고양이로 태어나서 이런 커리어 고민 따윈 안할테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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