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31일마다 새해 인사를 할 사람 리스트를 만든다. 매년마다 리스트에 있는 사람이 달라진다. 과연 내가 내년에도 이 사람에게 인사를 하게 될까?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른 도시로, 다른 나라로 떠난다. 이미 불안정함에는 익숙해져있다. 부피가 큰 겨울옷을 제외하고서는 나의 소지품들은 대부분 배낭에 들어간다. 애초부터 짐을 늘리지 않기 위해서 물건과 옷을 잘 사지 않는다. 언제라도 나는 지금 있는 곳을 떠날 수 있기에.
하지만 인간 관계는 내 소지품처럼 쉽게 정리할 수가 없다. 매번 떠날 때마다 괴롭고, 슬프고, 마음에는 계속 상처가 남는다. 계속 연락을 하자고 약속하지만, 결국은 각자 사는게 바빠서 연락이 뜸해지고, 끊긴다. 사는 공간이 바뀌면 인연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안정성을 주는 가족의 관계가 있으면 좋겠지만, 나에게 가족은 상처와 불편함의 근원이다.
SNS에는 그동안 만난 인연들이 창고에 있는 물건처럼 쌓여있다. 내가 매주 만나서 브런치하는 친구부터 여행지에서 한 번 술 마시고 추가한 사람이 한 공간에 같이 모여있다. '친구' 아니면 '팔로워'라는 명칭으로. 가끔씩 외로울 때면 SNS 친구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을 쭉 훝어본다. 얘기한지 몇 년이 지난 사람이라도 그들이 어제 무엇을 먹었는지, 한 달 전에 어디를 다녀왔는지의 업데이트를 보면 꼭 최근 이 사람과 연락을 주고 받은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된다. 그래도 나는 이 사람과 연결되어 있구나 라는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어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멀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새로운 인연을 만나거나 옛 인연과 다시 이어지기도 한다. SNS를 통해서 몇 년동안 얘기하지 않았던 고등학교 동창과 연결이 되어서 같이 여행을 하거나, 몇 년 전 파티에서 만났던 사람과 다시 만나서 술을 마시러 가기도 했다. 새로운 도시나 나라로 가면 항상 다른 곳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있다. 관계를 다시 형성하는 것에는 시간이 걸리지만, 인생은 그 거겠지.
그래서 이제는 조금 내려놓기로 했다. 어자피 인생에 영원한 것은 없고, 인간 관계도 그러하다. 내가 세계 어디에 있던 최소 한 달에 한 번 스카이프 할 친구 한 두 명은 있으니까,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사는 곳을 옮겨다닐 때마다 인연들을 잃지만, 또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게 되니까. 어자피 지금 내 인생의 불안정함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떠나간 인연에 집착하지 않되, 그렇다고 새로 올 인연에 대해서 냉소적일 필요도 없다. 오픈 마인드로, 인연의 실을 따라가면 뭐 어떻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