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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댄힐 May 13. 2023

‘길뫼재 일지’ 원고를 다시 손보면서

 

써 둔 「길뫼재 일지」 원고를, 출판을 위해 다시 손본다. 길뫼재 일지 첫 부분은 『다시 또 봄』이라는 제하에 2017년에 출판했었다. 원고 손질 후 출판을 위해 생각하고 있는 제목들은 ‘다시 또 여름’, ‘다시 또 가을’, ‘다시 또 겨울’, ‘그리고 다시 또 봄’ 등이다. 마지막 제목 즉 ‘그리고 다시 또 봄’까지 출판되면 그땐 아마 내 생애 봄날도 거의 다 갔을 터.

    

손보는 원고는 2007년 6월부터의 기록이다. 나의 여기 길뫼재 생활은 온 힘을 다해 전력투구하는 삽질, 괭이질 생활이다. 그래서 일지는 ‘길뫼재’라는 별서(別墅)를 지을 때까지의 과정과 지은 후 머물면서 짓고 있는 농사 과정에 대한 사색이다. 한 마디로 터를 잡고 터를 일구며 살아가는 내 산기슭 땀의 기록이다.   

  

길뫼재 여기서 나는 밭일과 글 일을 한다. 밭일은 낮에 하고 글 일은 밤에 한다. 또 봄과 여름 가을의 새벽은 아무래도 밭일 몫이고 겨울의 새벽은 글 일 몫이다. 이런 이곳 생활 나는 ‘산거경독(山居耕讀)’이라 부른다.     

길뫼재 이후 나의 삶은 ‘은둔과 집중’으로 바뀌었다. 나는 느리고도 빠른 자연의 흐름 속에 그냥 잠긴다. 은둔이다. 산과 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조화를 본다. 집중이다. 느림에서는 ‘완숙’을 빠름에서는 ‘결단’을 얻는다.     

뒤편과 양옆의 지리산, 저기 앞의 백운산과 섬진강 그리고 악양 평야…, 하던 일을 멈추면 보이고 들린다. 그들의 모습과 소리가 말이다. 듣고 보는 것은 일차적으로 육안(肉眼)과 육이(肉耳)의 일이지만 그것은 또한 내 심안(心眼)과 심이(心耳)의 일이기도 하다. 보느라 보고 귀를 기울이느라 기울이지만 감응이 더디다. 그래서 펜촉도 무디고. 녹슨 머리와 무딘 펜으로 씨름하다 보면 길뫼재의 밤이 나도 모르게 깊어간다.  

    

2005년 11월 이후의 제주도가 어떻게 변했을까? 괭이 삽 잠시 내려놓고, 원고 일 잠시 손 놓고 오랜만에, 아주 오래간만에 다녀오려는 제주도 서귀포, ‘안개 낀 서귀포’와 가파도가 미리 궁금해진다. (안개 낀 서귀포‘는 1958년의 영화 제목)    

2005년 11월의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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