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아둔 산문들을 책으로 묶는다. 첫 권이다. 묶어 펴내려고 할 때마다 부끄러워 미루었는데,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내 글의 한계를 알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미루려다가 더는 그럴 수 없어 용기를 냈다. 『계간수필』의 초회 추천이 2003년 겨울이고 추천 완료가 2004년 가을이니, ‘수필’이란 형식의 글 쓰는 마당에 발을 들여놓은 지 14년 만이다. 지금은 수필계의 대가(?)들이 모여 있는 수필 문우회에도 이름을 걸고 있다.
대학교수는 말과 글을 통해 일을 수행하는 직업인지라 글의 기본이 어느 정도는 되어 있다. 그래서 구태여 추천 형식을 거치지 않고서도 자기가 쓴 글을 산문집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그런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때 그렇게 하지 않고 ‘심사를 통한 추천’이라는 형식을 거친 것은 내 나름대로의 ‘글에 대한 겸손’ 때문이었다. 글에 대한 자만심을 으깨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추천사를 다시 꺼내 읽어본다.
“지난해 겨울, ‘진부령, 밋밋하여 어이없던 고갯길’로 초회를 통과했던 배채진 선생이 이번에 등산 수필 ‘철쭉이 지나간 자리’로 천료 되었다. 탄탄한 문장에다 개성 있는 풍모가 빼어났기에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철쭉이 지나간 자리’는 등산의 화제 속에 철 지난 철쭉의 잔화(殘花)와 늪을 조명하면서, 철학자의 수필답게 도가(道家)적 느림의 미학과 무화(無化)의 모성적 유연성을 평이하고 친근하게 표현한 그 솜씨를 샀다. 더구나 서양철학 교수의 동양적 덕성의 모색은 상대적 난제의 극복이란 점에서 돋보인다.”
수필 마당에 발 들여놓도록 내게 문을 열어주신, 심사 후 추천해 주시고 추천사를 써주신 두 분 선생님, 허세욱 선생님과 김태길 선생님은 벌써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저 세상으로 가셨다. 즐거운 하늘나라 생활을 두 손 모아 빈다.
산문적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때 머리맡에 두었던 H. D. 소로의 ‘펄떡이는 심장으로 호흡하는 문학을 위한 자신의 노력’에 대한 말을 다시 음미한다. ‘글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신체적인 일로 낮에 땀을 흘린 후에 밤에 쓰는 글쓰기, ‘땀내 나는 삶을 위한 글쓰기’가 나의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한 그의 말은 이러하다.
“자신의 글 속에서 쓸데없는 잡담과 감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다. 그런 후 저녁에 방 안에 앉아 그날의 경험을 단 몇 줄로라도 적어보라. 상상력은 뛰어나지만 공상에 불과한 글보다는 더 힘 있고 진실성이 담긴 글이 될 것이다. 작가란 노동의 경험을 글로 옮겨야 하며, 몸을 움직여서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해야 하는 노동은 글 쓰는 일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무척 중요한 가치가 있다. 엎드려서 책을 읽는 것보다 부끄러운 일이 또 있겠는가.”
나는 앞으로 연이어 내어놓을 내 산문들을 ‘길뫼 철학’이라는 틀로 엮으려고 한다. 여기서 ‘길뫼’는 나의 또 다른 이름을, ‘철학’은 나의 사유를 뜻한다. ‘철학’이라는 말이 주는 무게가 가볍지는 않다. 그래도 이 말을 쓰려는 것은 처음에 독후감이나 여행기 등 글을 실린 홈페이지 이름이 ‘로드 필로소피’였기 때문이고, 또한, 30년 그 이상을 들락거린 강의실 주제가 ‘철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산문들을 그냥 편하게 ‘철학’이라는 범주 아래에 두려고 한다. 이런 나의 철학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니라 ‘참을 수 있는 철학의 가벼움’ 정도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
‘길뫼’는 부산 한얼 신경정신과 의원 원장이신 독두 이수정 선생이 내게 붙여준 호(號)이다. 우리는 부산 독서 아카데미에서 10여 년 이상 세월 동안 매달 만나 지적 담론을 나누었다. 그때 호를 주면서 선생은 “길과 뫼와 내가 함께 하는 삶”이라고 의미를 풀이해 주셨다. “길이 나 있는 곳의 뫼는 자유로워서 스스로 들기도 하고 나기도 할 가능성으로 존재”함이라는 의미도 덧붙여서. 내가 길을 따라 산으로 가는 것이지만 가다 보면 내게로 오는 산을 문득 깨닫게 된다는 의미이겠다. 내가 산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산이 내게로 온다는 것. 내가 현실적으로는 시간과 공간에 매여 있지만(구속) 가능적으로는 자유로울 수 있는(불구속) 지평을 이 이름에서 나는 본다. 이름을 주면서 그분은 당신 사는 모양을 보니 “이 이름이 당신에게 제 격”이라고 했다. 감사히 받았다. 선생은 주면서 ‘뫼’를 더 강조했던 것 같다.
‘길뫼’를 이름으로 받은 지 한 해 후에 섬진강 길을 따라 도착하게 되는 하동군 악양면 동매 마을 뒤편 ‘지리산 기슭(뫼)’이 거짓말처럼 내게로 왔다. 10년도 더 지난 얘기다. 우연치고는 절묘한 우연이다. 야생차 순이 막 나기 시작하는 차밭을 한 뙈기 사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부산의 만덕동 백양산 기슭과 하동의 악양 지리산 기슭은 내 생활의 두 축이 되고, 길뫼 즉 ‘길’과 ‘뫼’는 또 내 사유의 두 축이 된다. 내게 있어 길뫼의 ‘길’은 나아감, 자유, 진보 그리고 동중정(動中靜)을 의미하고 ‘뫼’는 머묾, 수양, 관조 그리고 정중동(靜中動)을 의미한다.
그래서 ‘길’로 표상되는 나의 사유를 ‘로드(Road) 필로소피’ 즉 ‘길 철학’이라 하고 ‘뫼’로 표상되는 나의 사유는 ‘힐(Hill) 필로소피’즉 ‘뫼 철학’이라 부르려고 한다. 이 가운데 여기서 엮은 글은 나의 ‘로드 필로소피 1’이다. ‘여정의 단상’쯤 되겠다. 내가 다닌 곳 중 강원도 고성의 화진포, 경남의 진주, 태안반도의 가로림, 통영 욕지도에서 보고 느낀 것과 내 삶의 편린, 또 일상적 주제에 대한 단상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다음에 내게 될 산문집은 ‘힐 필로소피 1’이 될 것이고. 여기에는 악양 지리산 기슭 생활이 주로 담길 것이다. 이 둘을 합치면 ‘배채진의 길뫼 철학’이 된다. 이제부터 ‘길뫼 철학’은 ‘로드 필로소피’, ‘힐 필로소피’라는 부제를 달고 죽 이어져 책으로 나온다.
편과 쎄울의 아이들, 오래 기다렸다. 막 이사 들어간 부산 집의 서재를 우리 아이들, 수-주-희 셋이서 꾸며 주었다. 그들이 잡은 서재의 콘셉트는 ‘울 아버지 글 쓰고 정리하기 좋은 의자와 책상’이었는데 앉아서 글을 정리해 보니 과연 그랬다. 동고동락 나의 편 숙자 씨에게 책이 나오면 맨 먼저 손에 쥐어준다. 기다려봐라. 이제 계속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