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댄힐 Jul 16. 2023

다시 또 봄

내 삶의 기록 그 두 번째 2017년 3월 17일 발간

이 책은 나의 12년여 년에 걸친 악양 지리산 기슭 생활 중에서, 첫 여섯 계절의 터 일구기에 관한 사색 기록이다. 터를 일구기 위해 나는 부지런히 괭이질과 삽질했고, 씨앗을 뿌려 거두었으며, 나무를 심어 가꾸었다.

 

필자는 지난번에 출판한 나의 산문집 제1집 『길 위의 사색』에서 내 사유의 연속성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 “나는 앞으로 연이어 내어놓을 내 글들을 ‘길뫼 철학’이라는 틀로 묶으려 한다. 여기서 길뫼는 나의 이름(號)을, 철학은 나의 사유를 뜻한다. 길뫼의 길은 나아감, 자유, 진보, 동중정(動中靜)을 의미하고 뫼는 머묾, 수양, 관조, 정중동(靜中動)을 의미한다. 그래서 길로 표상되는 나의 사유를 로드(Road) 필로소피라 하고, 뫼로 표상되는 나의 사유는 힐(Hill) 필로소피라 부르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산문집은 나의 ‘뫼 철학 1’이다. 지난번 산문집, 『길 위의 사색』은 ‘길 철학 1’이었고.

 

내가 그의 삶을 존경하는 농부 철학자 윤구병은 H. 니어링과 S. 니어링 부부의 공저 『조화로운 삶의 지속 Continuing the Good Life』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헬렌과 스코트 니어링이 『조화로운 삶 Living the Good Life』을 펴낸 것은 스코트가 우리 나이로 일흔두 살 때였다. 둘 다 농사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내기였다가 스코트 나이 쉰 살이 되어 처음으로 버몬트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스무 해가 넘는 농사경험이 『조화로운 삶』으로 묶인 것이다. 이에 견주어 귀농한 지 세 해 만에 ‘잡초는 없다’고 흰소리를 치면서 마치 농사꾼이 다 된 것처럼 거들먹거리던 내 꼴은 얼마나 우스운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와 『조화로운 삶』을 읽으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많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말하자면 니어링 부부는 귀농 22년 차 그러니까 니어링 나이 일흔두 살 때 그동안의 농사경험을 『조화로운 삶』으로 활자화했는데, 윤구병 자신은 변산 공동체 생활 겨우 3년 차 경험을 『잡초는 없다』는 책으로 활자화한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는 내용이다. 참고로 니어링 부부의 두 번째 책인 『조화로운 삶의 지속 Continuing the Good Life』은 스코트가 죽기 네 해전 그러니까 아흔일곱 살일 때 내어 놓은 책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 책도 첫 번째 책 출간 이후 25년 만에 내어 놓은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니어링에게서는 ‘완숙’이라는 느림의 지혜를, 윤구병에게서는 ‘속성’이라는 빠름의 결단을 배운다. 비록 보여주거나 알려주는 일보다 사는 일에 더 치중한 니어링의 뜸 들이기에 더 많이 기울어져 있긴 하지만.

 

물론 나의 뜸 들이기는 게으름과 내용의 별것 없음에 더 기인한다. 부산 집과 악양을 오가며 산 나의 제한적인 산기슭 생활을 니어링의 버몬트 생활이나 윤구병의 변산 공동체 생활에 감히 견줄 수는 없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활자화하려는 것은 나의 길뫼재 생활이 비록 전적인 귀농은 아닐지라도 온 힘을 다해 수행한 삽질, 괭이질과 나란히 하는 사색 기록이기 때문이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는 면사무소에 출근하실 때 어린 나를 자전거에 태워 등교시켜 주셨다. 그때 길이 평탄했겠는가. 자갈길이었다. 형제 중에서 내가 아버지의 자전거를 가장 많이 탄 것 같다. 책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중학생이던 그때 들은 아버지의 『닥터 지바고』 이야기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저자 이름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그때 발음도 따라 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때 『닥터 지바고』를 아버지 권유로 읽었던 것은 나의 소중한 독서 자산이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께 바람을 쐬어드리기는커녕 사이다 한 병을 사드리지도 못했다. 내게 인문적 소양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책이 나오면 부모님 산소로 들고 가서, 새로 산 포켓 트럼펫으로 서너 곡을 불어 출판 보고를 드릴 참이다.

 

여러 해 전에 나이 연하장이라는 게 관심을 끈 적이 있다. 이 연하장을 만든 이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며 ‘어른다운 어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면서 “나이를 잊고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가 모두 자신을 한 번쯤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 연하장에서 69세는 “상을 받을 때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되는 나이”이고, 70세는 “대통령 이름을 그냥 불러도 건방짐이 없는 나이”였다. 내가 이제 이 지점에 와 있다. 종심(從心), 그 의미를 새삼 새긴다.

 

별 일이 없는 한 앞으로 한해에 두 권씩 내 삶의 기록을 세상에 내놓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길 위의 사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