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609토
내 기억이 참 흐린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내 인지 기능이 얼마나 티미한지 확인하고 또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난 풍게라는 과일이 자두와는 다른 것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 있는 것이, 사전에 찾아보니 '풍게나무'가 있었는데 나무 이름이 있으니 그 열매가 당연히 풍게인 것으로 여겼다. 좀 의아했던 것은 풍게나무 열매가 새까맸고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어서 이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숙제를 풀지 못하고 그땐 그냥 넘어갔었다. 찾아보니 풍게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교목으로서 단감주 나무라고도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나무는 과일 나무가 아니라 숲 속에서 자라는 나무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과일 풍게는 순 경상도 말이고 자두는 표준말이었다. 물론 지금 자두는 품종개량이 많이 되어 그 옛날 풍게와 크기나 맛을 비교할 바 아니다.
유소년으로 돌아간다. 내가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작은 형이 과수원 밭에 풍게나무를 스무 그루 정도 심었었다. 과수원 속 아래 밭에 꽉 심었으니까 스무 그루는 당시 나의 셈법에서 큰 숫자였다. 나중에 다 익었을 때 풍게들은 매끈하고 반들반들한 꿈의 열매였었다. 밤나무 감나무는 크기에서나 번성하는 벌레 수에 있어서나 내게 지우는 일의 무게에서 부담 주는 나무였는데 보리 이랑 사이 풍게나무는 그렇지 아니했다. 난 열매의 모양새와 이름 ‘풍게’ 그리고 그렇게 시디시던 맛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
그런데 여기 매실의 고장인 악양에 와서 또 살짝 착각한 것은 매실과 풍게다. 자라면서 매화, 매화나무에 대해서는 사군자 그림 이야기 등을 통해 듣고 자랐지만 열매 ‘매실’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아니 그 한참 후까지 실제로 본 적도 없었다. 2005년 말미에 하동 악양 여기 매실의 고장과 인연을 맺은 이후 알게 된 것은, 매실의 수요가 동의보감의 저자를 주인공으로 한 ‘허준’ 이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었다. 그 이후 매실에 대한 인식도 크게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여러 해 전인 1999년에 방영되었는데 대한민국 역대 사극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으로, 이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허준 드라마 열풍 때문에 그때 생겨난 매실 음료가 만년 1등인 코카콜라를 이긴 적도 있다고 하니, 난 비록 그 드라마를 단 1분도 본 적이 없지만 매실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드라마에서 매실은 역병을 이겨 내는데 도움을 주는 만병통치약처럼 소개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 집에도 매실을 많이 담근다. 매실을 담그기에 매실을 알았지 이걸 먹어도 되는 건지 그건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님을 뚜렷이 식별하여 인지하게 된 것은 요 몇 년 전후다. 여기 마을 뒤편의 산기슭 우리 밭에 출입하기 시작한 이후에야 난 매실에 대해서, 매실과 풍게의 차이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매실은 매실이지 자두나 풍게가 아님을 말이다.
매실을 땄다. 6월 8일, 내가 먼저 악양 우리 밭에 내려와서 기다렸다. 이튿날 9일 토요일에 편은 시외버스 타고 내려왔다. 우리 밭의 매실나무는 이제 막 심은 거라서 건너 편 K네 고목 매실나무로 갔다. 면 소재지에 사는 K는 큰 매실나무 한 그루를 우리 몫으로 남겨 두고 있었다. 그 나무는 우리가 흔히 매화나무라 부르는 토종 매실나무였다. 봄이 오기 전에 홀로 의연히 꽃피우고 서 있던 그 고목 매실나무다.
가서 보니 매실은 거의 다 익어 있었다. 연한 주황색이었다. 손만 대면, 손대기도 전에 주르르 떨어졌다. 다 딴 후 포대를 드니 제법 묵직하다. 따온 매실을 열매로도 나누어주었지만 담근 후 진액 즉 엑기스를 또 여러 집에 나누어 주게 될 것이다.
이제 구분하겠다. 매실은 매실이고 자두는 자두임을 인식하겠다. 하지만, 풍게와 자두는 아직 분리하여 인식하지 못하겠다. 지금 풍게나무 사진을 보니 이건 내가 한 번이라도 보았음직한 나무가 아예 아니다. 풍게가 진화하여 자두로 된 줄 알고 있는 이 인식 범위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겠다. 그런데 사실, 풍게라는 말은 실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 유소년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또래의 사람들에게 풍게를 아느냐고 물어봐도 안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그 옛날 우리 집에 풍게(자두)를 남들 보다 서너 발 앞서 심었다는 점이다. 그 옛날 우리 과수원 풍게 밭이 생각난다.
K네 매실나무 옆의 여러 그루 뽕나무에서 오들개도 많이 땄다. 지금은 ‘오디’라고 부르지만 그때 우리는 오들개라고 불렀던 뽕나무 열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