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댄힐 Jul 31. 2023

풍게와 자두 그리고 매실

070609토

내 기억이 참 흐린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내 인지 기능이 얼마나 티미한지 확인하고 또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난 풍게라는 과일이 자두와는 다른 것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 있는 것이, 사전에 찾아보니 '풍게나무'가 있었는데 나무 이름이 있으니 그 열매가 당연히 풍게인 것으로 여겼다. 좀 의아했던 것은 풍게나무 열매가 새까맸고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어서 이거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숙제를 풀지 못하고 그땐 그냥 넘어갔었다. 찾아보니 풍게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교목으로서 단감주 나무라고도 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나무는 과일 나무가 아니라 숲 속에서 자라는 나무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과일 풍게는 순 경상도 말이고 자두는 표준말이었다. 물론 지금 자두는 품종개량이 많이 되어 그 옛날 풍게와 크기나 맛을 비교할 바 아니다.      


유소년으로 돌아간다. 내가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작은 형이 과수원 밭에 풍게나무를 스무 그루 정도 심었었다. 과수원 속 아래 밭에 꽉 심었으니까 스무 그루는 당시 나의 셈법에서 큰 숫자였다. 나중에 다 익었을 때 풍게들은 매끈하고 반들반들한 꿈의 열매였었다. 밤나무 감나무는 크기에서나 번성하는 벌레 수에 있어서나 내게 지우는 일의 무게에서 부담 주는 나무였는데 보리 이랑 사이 풍게나무는 그렇지 아니했다. 난 열매의 모양새와 이름 ‘풍게’ 그리고 그렇게 시디시던 맛을 지금도 뚜렷이 기억한다.     


그런데 여기 매실의 고장인 악양에 와서 또 살짝 착각한 것은 매실과 풍게다. 자라면서 매화, 매화나무에 대해서는 사군자 그림 이야기 등을 통해 듣고 자랐지만 열매 ‘매실’에 대해서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아니 그 한참 후까지 실제로 본 적도 없었다. 2005년 말미에 하동 악양 여기 매실의 고장과 인연을 맺은 이후 알게 된 것은, 매실의 수요가 동의보감의 저자를 주인공으로 한 ‘허준’ 이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었다. 그 이후 매실에 대한 인식도 크게 확산되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는 여러 해 전인 1999년에 방영되었는데 대한민국 역대 사극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으로, 이 기록은 지금까지 깨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허준 드라마 열풍 때문에 그때 생겨난 매실 음료가 만년 1등인 코카콜라를 이긴 적도 있다고 하니, 난 비록 그 드라마를 단 1분도 본 적이 없지만 매실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키는데 기여한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드라마에서 매실은 역병을 이겨 내는데 도움을 주는 만병통치약처럼 소개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 집에도 매실을 많이 담근다. 매실을 담그기에 매실을 알았지 이걸 먹어도 되는 건지 그건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님을 뚜렷이 식별하여 인지하게 된 것은 요 몇 년 전후다. 여기 마을 뒤편의 산기슭 우리 밭에 출입하기 시작한 이후에야 난 매실에 대해서, 매실과 풍게의 차이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매실은 매실이지 자두나 풍게가 아님을 말이다.     


매실을 땄다. 6월 8일, 내가 먼저 악양 우리 밭에 내려와서 기다렸다. 이튿날 9일 토요일에 편은 시외버스 타고 내려왔다. 우리 밭의 매실나무는 이제 막 심은 거라서 건너 편 K네 고목 매실나무로 갔다. 면 소재지에 사는 K는 큰 매실나무 한 그루를 우리 몫으로 남겨 두고 있었다. 그 나무는 우리가 흔히 매화나무라 부르는 토종 매실나무였다. 봄이 오기 전에 홀로 의연히 꽃피우고 서 있던 그 고목 매실나무다. 


가서 보니 매실은 거의 다 익어 있었다. 연한 주황색이었다. 손만 대면, 손대기도 전에 주르르 떨어졌다. 다 딴 후 포대를 드니 제법 묵직하다. 따온 매실을 열매로도 나누어주었지만 담근 후 진액 즉 엑기스를 또 여러 집에 나누어 주게 될 것이다.      


이제 구분하겠다. 매실은 매실이고 자두는 자두임을 인식하겠다. 하지만, 풍게와 자두는 아직 분리하여 인식하지 못하겠다. 지금 풍게나무 사진을 보니 이건 내가 한 번이라도 보았음직한 나무가 아예 아니다. 풍게가 진화하여 자두로 된 줄 알고 있는 이 인식 범위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겠다. 그런데 사실, 풍게라는 말은 실생활에서 거의 쓰지 않는다. 유소년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또래의 사람들에게 풍게를 아느냐고 물어봐도 안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런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건, 그 옛날 우리 집에 풍게(자두)를 남들 보다 서너 발 앞서 심었다는 점이다. 그 옛날 우리 과수원 풍게 밭이 생각난다.    

 

K네 매실나무 옆의 여러 그루 뽕나무에서 오들개도 많이 땄다. 지금은 ‘오디’라고 부르지만 그때 우리는 오들개라고 불렀던 뽕나무 열매를.     

매거진의 이전글 계단식 명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