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뉘 부르는 소리 있어 나를 멈춘다."(박화목의 시 보리밭 / 처음 제목은 옛 생각이었는데 나중에 보리밭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갤럭시 버즈 2 프로>를 샀다. 최신형 무선 이어폰이다. 난 나의 신체가 내 연령대에서 건강한 편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 앞에 장사(壯士) 없다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신체 기능들이 퇴화하는 건 자연적인 순리다. 내 청각의 경우 정상적이지만 왼쪽 귀는 오른쪽 귀보다 말귀를 알아듣는 능력이 좀 떨어진다. 청각 검사 후 결과지에 왼쪽 귀의 여성 고음 청취력이 떨어진다고 적혀 있었다.
지난 추석 연휴에 모두 모인 우리 가족이 티브이로 영화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볼 때 영화 속의 대사를 청취하는데 난 어려움을 좀 겪었다. 여럿이 앉은자리인지라 볼륨을 내 귀에 맞게 높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소리 증폭기’를 하나 사두면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소리 증폭기를 찾는 중에 요즘 무선 이어폰 즉 갤럭시의 버즈와 아이폰의 에어팟은 본래 기능인 입체적 음악 청취 본 기능 외에 청각 보조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서는 방향을 무선 이어폰 쪽으로 틀었다. 그렇게 해서 사게 된 게 <갤럭시 버즈 2 프로>다.
선이 없는 이어폰이 처음 등장한 건 1970년대의 어느 인기 드라마에서였다고 한다. 그 후 실제로 구현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처음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이 출시됐을 땐 누가 저런 걸 사용하느냐는 반응이 많았지만 이젠 길거리에서 유선 이어폰을 쓰는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어졌다. 그만큼 무선 이어폰이 이제 대중화되었고 성능도 아주 향상되었다.
무선 이어폰에 청각 보조 기능이 강화된 건 획기적인 발전이라고 한다. ‘노이즈 캔슬링’과 ‘주변 소리 듣기 기능’을 이용해, 주변 소음은 제거하고 목소리는 키우는 방식인데, 무선 이어폰 제조사들은 이들 기능이 경도 난청이나 청각이 저하되기 시작한 소비자, 보청기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소비자에게 유용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보청기 측에서는 이어폰이 보청기를 대신할 수 없다고 펄쩍 뛰지만 무선 이어폰의 청각 보조 기능은 언젠가는 보청기 시장을 잠식하게 될는지도 모른다는 이비인후과 의료인의 견해도 있었다.
아무튼, 보청기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타인의 시선을 덜 받을 수 있는 무선 이어폰이 주목받고 있는 건 사실이다. 실제 무선 이어폰이 보청기 못지않은 성능을 낸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고 한다.
사실 무선 이어폰이 청각 보조 기능을 강화한다고 해도 보청기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청각이 저하되기 시작한 노년층 등 보청기를 착용할 정도의 난청을 겪고 있지 않은 소비자에게는 충분히 유용할 것이라는 견해에 동의하면서 나는 무선 이어폰을 구매했다. 며칠 후에 가게 될 우리들의 문경 가을 여행의 밤에 둘러앉아 담소 나눌 때 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서는 유달리 음성이 조용조용한 분의 목소리를 경청해 볼 참이다. 말하자면 성능 테스트를 그때 해볼 참이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서 뉘 부르는 소리가 있어도 그걸 듣지 못해 나를 멈추지 못하면 어쩌나, 그런 일이 없게 보청기 끼는 사전 연습을 '버즈'라는 무선 이어폰으로 지금부터 나는 한다. 올해에는 감나무 잎이 빨리 떨어진다. 붉게 물들어 떨어지는 잎은 아직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