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101木)
영화 ‘중앙역’의 마지막 장면이 뜬금없이 떠올랐다. "조수에, 난 오랫동안 못 부칠 편지만 써 왔다. 하지만, 이 편지는 꼭 부친다고 약속하마. (…) 너희 아빠는 꼭 돌아오실 거야. 나도 나의 아빠가 보고 싶다. 그리운 게 너무 많아!"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상실의 무게, 부성애의 빈자리. 영화 ‘중앙역’은 브라질의 가난하고 복잡한 삶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그 안에 인간애와 회복의 온기를 품고 있다. 영화는 마치 오래전 우리네 삶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일까. “그리운 게 너무 많아”라는 그 한 문장이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러 있다.
나는 문득 그 말을 이렇게 바꾸어 본다. ‘부끄러운 게 너무 많아.’ 살아온 세월만큼, 아니 그보다 더 빠르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문득문득, 가슴 한편이 뜨끔해지는 일들 그것들은 누군가에게 말하기 상영 당시, 그러니까 내가 한창 젊었을 시절엔 그 영화를 보지 못했고, 장년을 거의 지날 무렵에야 겨우 보게 되었다. 어려운 부끄러움이다. 그런 것들 중 하나는 ‘바보들의 행진’을 제때 보지 못한 일이다. 이는 윤리적 부끄러움이기보다는, 문화적 부끄러움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영화 속에 흐르던 노래, ‘날이 갈수록’. 들을 때마다 확인하게 된다. 무엇을?
나도 영화 속의 도라처럼 그리운 게 너무 많다는 걸 말이다. ‘날이 갈수록’의 70년대, ‘바보들의 행진’의 70년대는 내가 어깨를 펴지 못했던, 고개를 들지 못하던 70년대였다. 세상과 불화를 말할 만한 의식 있는 청년도 아니었다. 삶에 쫓기고, 내 안의 문제에만 갇혀 있던 쩨쩨한 몰골이 내 자화상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영화도, 음악도 나를 비켜갔다. 그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 건 훨씬 후의 일이었다.
뒤늦게야 알게 된 이름, 감독 하길종, 그의 영화에 담긴 시대의 무게와 아픔, 그리고 그 속의 노래, ‘날이 갈수록’은 들을 때마다 가슴을 건드리고 자꾸만 그리움을 불러낸다.
요즘 하동으로 갈 때 나는 진주에서 유수, 완사, 북천을 지나가는 길을 택한다. 가을 이후로는 늘 그러하다. 그 길목, 차 안에서 ‘날이 갈수록’을 들었다. 날이 갈수록, 들을수록 여운이 진해진다. 들을 때마다 그리움이 속을 채운다. 누구를, 무엇을, 어디를 그리워하는지 모를 만큼 마음속이 가득해진다.
어쩌면 그것이 삶일지도 모르겠다. 날이 갈수록, 그리움이 늘어가는 것 그리고 그리움이 나를 조금 더 인간답게 만든다는 것‘ 그런 것들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