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랫방망이, 잊힌 기억의 연결선

by 로댄힐


며칠 전, 가족 단톡방에 올라온 짧은 대화가 오래된 기억의 문을 열었다. 막내가 느닷없이 빨래터를 물었다.

“우리 오래전 A 아파트에 살 때 빨래터 있었지? 공식적인 빨래터였나?”
“빨래터? 잘 모르겠는데.”
“아파트 단지 위쪽 계곡에 물 흐르는 도랑이 있었잖아. 유치원 때 엄마랑 같이 갔던 기억이 있어.”
“맞아, 단지 위 놀이터 지나서 약수터 쪽으로 가면 그쪽 계곡이 좋았지.”
“거기서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빨래하고 ‘탕탕탕’ 소리가 났어.”


그렇게 우리는 40여 년 전으로 돌아갔다. 백양산 자락 아래 자리한 A 아파트, 암반이 드러난 깊은 계곡 옆의 자연 속에서 우리는 약 8년을 살았다. 비록 공식 시설은 아니었지만, 그 계곡은 아파트 단지의 젊은 엄마들의 ‘자연 세탁실’이었다. 그때 유치원생이었던 막내는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유년 시절의 추억이 아련할 법하다.


“그 빨랫방망이 아직 있나? 엄마가 쓰시던 나무 도구.”
“응, 세탁실 구석에 있을 거야. 내가 한 번 찾아볼게.”


짧은 대화였지만, 그 한마디는 나를 회상의 숲으로 이끌었다. 지금은 높은 아파트 숲으로 변해버린 그 계곡엔, 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자연의 품속에서 아파트 단지의 젊은 엄마들이 모여 삶을 나누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 빨랫방망이, 납작한 나무로 된, 손에 꼭 들어오던 그 도구는 세탁기 시대 아이들에겐 낯설겠지만, 이전 세대에게는 ‘엄마’라는 단어와 깊이 얽힌 존재다. 계곡물에 헹구기를 반복하면서 방망이로 두드리던 엄마들의 손놀림과 리듬 속엔, 단순한 세탁을 넘어 생활의 무게와 사랑이 스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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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탁실 구석을 뒤져 그 낡은 빨랫방망이를 꺼내 먼지를 털고서는 햇볕에 말렸다. 누렇게 바랜 나뭇결, 닳아버린 손잡이, 그 모든 것에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문득 손잡이를 쥐니 아내—우리 아이들의 엄마—의 손길이 느껴졌다.


빨랫방망이는 옷이나 이불 등 빨랫감에 묻은 때를 제거하고 더러움을 물리적으로 두드려 빼는 도구이다. 세탁 과정 중 헹굼과 타격을 반복하여 깨끗이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주로 야외에서 사용하며 물에 젖은 천을 넓적한 바위나 빨래판 위에 놓고 탕탕 치며 세척한다. 빨랫방망이는 자연과 어우러진 ‘생활 노동의 상징’이다.

빨랫방망이 소리는 다듬잇방망이 소리와 더불어 한국의 전통적 삶의 풍경을 대표하는 ‘노동의 소리’이다. 이 둘은 닮은 듯 다르고 각각 독특한 문화적 상징성과 감성을 지니고 있다.


빨랫방망이 소리가 반복적인 타격음이라면 다듬잇방망이 소리는 타악기 연주처럼 경쾌하고 박자감 있는 소리다. 빨랫방망이 타격의 목적이 세탁물을 때려 때를 빼고 헹구는 실용적 기능이라면 다듬잇방망이 타격의 목적은 갓 짠 베나 삼베, 무명 등을 부드럽게 하고 윤기를 내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빨랫방망이는 ‘생활의 소리’이고 다듬이는 ‘의식의 소리’이다. 전자는 손의 온기와 물소리로 연결된 자연의 일부이고, 후자는 전통과 품격이 살아 있는 실내의 풍경이다. 아무튼, 두 소리는 모두 한국 여성의 삶과 정서 그리고 공동체 문화를 대변하는 아름다운 소리의 기억이다.


오늘날엔 버튼 하나면 세탁이 끝난다. 물 온도도, 세제 양도 기계가 알아서 조절한다. 사람의 손은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세탁기는 기계음 속에서 모든 과정을 알아서 처리해 준다. 사람의 손은 점점 뒤로 빠지고 시간은 절약되며 노력은 최소화된다. 편리함은 축복이지만 그 이면에는 ‘기억의 침묵’이 있다. 손의 감각, 물의 온도, 비누 거품 내음, 햇살에 말리던 흰 천의 촉감 같은 감각적 기억들은 세탁기의 빠른 회전 속에서 잊혀 간다.


사실 빨랫방망이는 고단한 삶을 동반했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시간과 관계를 만들어냈다. 이웃과 함께한 빨래터, 아이들의 물장구, 빨래를 널며 나눈 이야기들 그것은 ‘함께’의 시간이자 ‘느린 삶’이었다. 반면에 세탁기는 개인의 시간과 공간을 보장하지만, 그만큼 단절과 고립도 동반한다. 기술은 인간을 편하게 해 주지만, 기억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억은 손끝, 감각, 냄새, 소리 속에 머문다.


어쩌면 빨랫방망이는 ‘몸이 기억하는 세계’를, 세탁기는 ‘두뇌가 조절하는 세계’를 대표하는지도 모른다. 전자는 감각과 관계의 도구, 후자는 기능과 효율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 둘 사이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을까?


세탁기와 낡은 방망이, 이 둘은 마치 서로 다른 시대의 상징처럼 묘한 대조를 이룬다. 하나는 손의 감각과 공동체의 삶을, 다른 하나는 기술의 효율과 고립된 시간을 말해준다.


낡은 빨랫방망이는 지금 쓰이지 않아도 그 존재만으로도 하나의 의미체이다. 세월의 때가 묻은 빨랫방망이는 단순한 세탁 도구를 넘어 과거의 기억, 가족의 온기 그리고 사라진 풍경에 대한 마지막 연결선이다. 기능을 다한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음으로써, 존재의 의미를 말없이 증명한다. 잊힌 삶의 리듬과 정서를 지키는 물질적 기억의 형상이다.


나는 다 말린 빨랫방망이를 세탁기 옆에 조용히 세워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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