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의 안면도 꽃지

(그때 그 어느 때 04)

by 로댄힐


1991년 9월의 서해안 태안반도 안면도는 아직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전, 한적하고 고요한 서해안의 정취가 그대로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섬 특유의 느긋한 분위기와 함께, 바다 내음이 짙게 퍼져 있는 시골 해변 마을의 풍경은 여유롭고도 정겨웠다.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은 그때 황량했다. 특히 가을의 초입에 접어들며 더욱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끝없이 펼쳐진 넓은 백사장은 해수욕객들로 북적이던 여름의 흔적을 간직한 채 해변에는 지난여름의 열정인 쓰레기더미만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멀찍이 떨어진 작은 두 섬이 섬인 듯 섬이 아닌 듯 바다 위에 외로이 솟아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섬들은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였다.


백사장은 여름철의 흔적이 사라져 가듯 조용하고, 파도는 낮고 잔잔하게 해안을 핥고 있었다. 해수욕객들의 발자국이나 웃음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대신 모래 위에 남겨진 바퀴 자국과 해변에 흩어진 음료수 캔과 쓰레기들은 한때 붐볐던 사람들의 흔적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는 듯, 여름날의 뒤편을 담담히 보여주고 있었다. 티브이 화면에서 보이는 요즈음의 꽃지 해수욕장은 저 때 꽃지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나의 첫차 르망, 운전 교습을 받을 때 면허시험 합격하기도 전에 구입한 르망은 비록 중고차였지만 내 눈엔 금색으로 빛난 화려한 차였다. 저거 몰고 장거리 여행 많이도 다녔다. 도고온천에서의 학회를 마치고 혼자 안면도 꽃지 해수욕장으로로 들어갔다가 다시 출발하여 진도에 도착하니 늦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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