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주문리와 자혜리 그곳들의 내 인연을 이어주는

사천대교

by 로댄힐

어느 오후, 다리 앞의 찻집에 차를 세웠다. 찻집 이름은 ‘델마르 커피’이고 다리는 경남 사천시 용현면 주문리와 서포면 자혜리를 잇는 사천대교이다. 풍경이 아름다운 곳, 주문리도 자혜리도 내겐 깊은 인연과 사연이 있는 곳이다.


핸들을 놓고 나와 서니 바람이 불었다. 갯내음이 ‘훅’하고 코를 때렸다. 바다 건너, 다리 건너편 지형의 윤곽이 오늘따라 아득하게 내 사유 속으로 스며든다. 바라보는 다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유였다. 시간과 공간, 사람과 자연, 떠남과 머묾 등, 이 모든 것들이 교차하는 자리인 다리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이제야 새삼 내 시야에 들어왔다.


찻집, 들어가서 확 트인 창가에 앉으니 건너편 비토섬과 자혜리 포구가 희미하게 보인다. 그 위로 차를 몰고 지나가기만 한 다리, 앉아서 바라보니 오늘따라 의미체로 다가온다. 그래, 가끔 잠깐 멈춰 설 필요가 있지. 어디로 갈지 보다, 지금 여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시간. 다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조금씩 나를 되짚었다.


주문리 이곳은 고딩 때 사귄 친구 집이 있어 진주에서 제법 먼 거리의 비포장도로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3년 동안 여러 번 드나들었던 추억의 마을이다. 그때 우리 셋, 그중 한 명은 일찍이 하늘나라로 갔고 주문리 친구와 나는 아직 지구에 머물러 있다. 또 그때 우리 셋과 더불어 방파제를 걸었던 진주간호고교생 셋, 그중 한 명은 일찍이 행방이 불명이라 허고 나머지 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른다. 지금은 쉽게 또 자주 드나드는 마을이지만 차비 없고 교통 불편하던 그때 어렵게 드나든 마을인지라 서울에 머물 때나 부산에 살 때 회상하면 아련히 떠오르는 반농반어 마을이었다.


자혜리 저곳엔 군복무 후 복학 전 여름 방학 때 교리교육 봉사하러 두어 달 머물렀던 서포 공소가 있었다. 일정을 다 마치고 떠나올 때 자혜리 포구 저곳까지 십오여 리 길을 공소 신자들 남녀노소 2~30여 명이 줄지어 와서는 배(아마 나룻배) 타고 떠나는 강 수사(修士)와 나 등 우리 둘을 파도 뒤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 흔들어 주었었다. 그 정경은 오랫동안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 학생이던 어떤 애가 여러 해 후에 처자 되어 내 앞에 나타났고 그렇게 해서 어찌어찌하다가 우린 서로에게 ‘편’이 되었다.


그때 그곳, 여기 주문리와 저기 자혜리를 잇는 다리가 놓여 2006년 12월 개통 이후로 난 그 뱃길 위를 이젠 차를 몰고 다닌다.


바다는 말이 없었고, 바람은 낮게 불었다. 썰물은 다리 아래의 진실을 드러낸다. 바다의 이면 늘 감추어진 자리 그것은 마치 우리가 일상적으로 건너는 수많은 다리들 아래에서 무심코 지나쳐버린 삶의 바닥을 보는 일 같다. 그리고 색색의 블록은 그 진실 위에 얹은 작은 놀이 같기도 하다.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보라 등, 무채색의 풍경 속에 놓인 그 색들은 삶의 유머 같기도 하다. 때로는 그런 소소한 삶의 색깔들이 우리를 살맛 나게 한다. 인생의 진짜 다리는, 어쩌면 그런 작은 색채 위에 놓여 있는 것 아닐까. 삶이란 결국 진흙과 색채 사이를 오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다리는 그 위를 지나가는 우리의 발끝에서 흔들림 없이 버티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인생의 여러 다리를 건너왔다. 처음 학교에 들어가던 날, 가족과 떨어져 처음 자취방으로 향하던 오후, 뜻하지 않은 이별을 겪고 홀로 떠났던 여행길 등, 그런 순간마다 우리는 물을 건넜고, 마음을 넘었다. 다리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지나왔기에 알게 되는 감정들이 그 위에 쌓인다. 누구와 건넜는가, 어떤 계절이었는가, 어떤 표정이었는가. 다리는 기억의 기둥처럼 마음속에 남는다.


나이가 들수록, 다리를 건넌다는 것은 한 시절을 떠나는 일처럼 느껴진다. 이전에는 ‘도착’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건너는 중’이 소중하다. 속도보다 방향, 효율보다 감정, 결승선보다 풍경. 인생은 결국 어디에 닿느냐보다 어떻게 건너느냐의 문제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다리 위에서 자라난다. 아프기도 했고, 흔들리기도 했고, 후회도 했다. 그 모든 건너온 다리들이 지금의 나를 이룬다.


삶의 다리는 언제나 예고 없이 나타난다. 때론 선택이고, 때론 운명이다. 누군가는 건너지 않고 돌아서고, 누군가는 망설이다 다시 되돌아간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모든 다리 앞에는 각자의 시간이 있고, 모든 건넘은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다리 앞에서 두렵기보다 고마운 마음이 든다. 여기를 건넌 나에게, 그때의 나에게, 그리고 건너는 중인 지금의 나에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4년 전의 안면도 꽃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