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어느 때 03
"안갯속을 걸어 봐도 채워지지 않는 빈 가슴 / 잡으려면 어느새 사라지는 젊음의 무지개 / 커피를 마셔 봐도 느낄 수 없는 빈 가슴 / 내 젊음의 빈 노트엔 무엇을 써야만 하나."
유미리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젊음의 노트' 발췌다. 바스크모 빛바랜 사진을 볼 때 갑자기 이 노래가 떠올랐다.
나는 바스크모를 쓰고 20대, 30대 초반을 보냈다. 고교 모자를 벗고 까까머리에 머리칼이 막 길어 날 때 이태리 사람인 우리 본당신부님이 바스크모와 세트인 이태리제 트렌치 코드를 내게 주셨다. 그때 처음 바스크모를 머리에 얹어 봤다.
군복무 후 짧은 머리가 길어나기 시작할 무렵 이번에는 또 누가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서 가져온 거라고 하면서 진짜 바스크모를 내게 주었다.
그 바스크모를 30대 초반까지 쓰고는 다시는 안 썼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서울살이 하다가 낙향, 시골집에 1년 머물 때까지만 썼다. 이 모자를 쓰고 있을 그때 편의 만나 지금까지 부부연을 잘 이어오고 있다.
내 젊음 마지막 바스크모 그때, 그 모자를 쓰고서 진주 남강 안갯속을 걷는다고 걸어 봐도 통 폼이 나지 않았고, 걷다가는 다리가 아파 남강변 찻집에서 커피를 마셔봐도 빈 가슴은 채워지지 않았었다.
잡으려 해도 참 잡히지 않던 내 젊음의 무지개 즉 기회, 잡힐 것 같지 않던 그 기회가 내게도 찾아와 내 손에 잡혀줬다. 그때부터 빈노트가 한 자 두 자 글자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저 모자를 요새는 베레모라고 하지 바스크 모라고 말하는 사람 없는 것 같다. 생각난다, 저 모자 쓰고 올랐던 설악산 가을, 또 저 모자 쓰고 걸었던 경남 사천 두량못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