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002
처음 본 차꽃
차꽃을 실물로 처음 본 것은 남제주 서쪽 안덕리의 넓은 녹차밭에서였다. 그때 느꼈던 경이로움이 지금도 선명하다. 차를 마신 적은 있었지만, 차나무밭 한가운데 직접 서 본 것도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개념으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물로 마주한 적 없는 사물들을 수없이 안다. 실제로는 경험하지 못했으면서 아는 체하는 것이야말로 지식인의 허위의식이 아닐까 싶다.
굳이 정리하자면, 책상머리에서 합리적 인식의 틀을 세우려 애쓰는 것이 공부라면, 시행착오를 겪으며 생생하게 체득하는 것이 내 산기슭 생활의 배움일 것이다. 우리 밭의 차나무들도 꽃을 달았다. 더 튼튼히 자라라고 모두 잘라냈는데, 그때 가지치기를 피한 몇 그루가 봉오리를 틔웠다.
빨간 날이던 3일, 지인 몇과 함께 대변항을 지나 울산 아래의 호미곶에 다녀왔다. 바람과 갈매기, 수평선과 배들이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 주었다. 다음 날은 악양 산기슭의 내 처소에서 시작된 3박 4일 생활의 첫날이었다. 이번에는 쳐내야 할 가을걷이 일이 많다. 뜻밖에 월요일 휴강과 화요일 빈 날이 이어져, 내게는 넉넉한 나흘이 마련되었다.
첫날-내겐 신화의 바위
나흘 동안 해치워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많다. 그 첫 번째는 축담 쌓기였다. 애초 생각대로라면 지금쯤 20평 남짓한 집이 지어져 있어야 했다. 하지만 계획에 차질이 생겨 집 짓는 일은 훗날로 미루기로 했다. 대신 당장 손댈 수 있는 농막 주변을 정비하기로 했다. 축담을 쌓은 뒤에는 집 앞에 잔디를 심을 계획이고, 이후에는 출입문 앞에 데크를 깔고 기둥을 세워 지붕을 얹을 생각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은 우선 굳은 시멘트를 깨며 축담부터 만들어 보았다.
오후에는 바위 밭으로 내려갔다. 숙진암(淑鎭岩), 그 바위는 내게 신화와도 같은 존재다. 숙진암은 수많은 얼굴과 그림을 품고 있다. 그가 내게 건네는 의미는 끝이 없다. 내가 언제쯤 그 의미를 온전히 몸속에 새겨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그와 나누는 교감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를 본다. 그리고 듣는다. 숙진암은 의미를 보여주고, 들려주며, 나와 함께 생각한다. 햇빛을 받으면 역사가 되고, 달빛을 머금으면 신화가 된다고 했던가. 햇빛(日光)의 바위와 달빛(月光)의 바위, 같은 존재이면서도 서로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바위 밭에서 해야 할 두 번째 일은, 밭을 가득 뒤덮은 마른풀을 걷어내는 일이었다. 낫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넓이라 긁어모으기로 했다. 오후 내내 이 일에 매달렸다. 긁고 모으는 동안, 힘겨움 속에서도 ‘운동 삼아한다’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달랬다. 하고 있는 이게 노동이든 운동이든, 땀은 흐르고 몸은 지친다. 그럴 때 바위 앞으로 간다. 바위는 언제나 등을 기댈 벽이 되고, 엉덩이 앉힐 자리를 내어준다.
이튿날-억새로 의사 표시
이튿날 오전에는 들깨를 털었다. 이번에 해야 할 세 번째 일이다. 지금 터는 들깨는 심은 것 중 일부다. 들깨는 위쪽 밭과 아래 바위 밭, 두 곳에 심었다. 위쪽 밭의 들깨는 잎도, 키도, 결실도 풍성하다. 가을 가뭄에도 일정한 습도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위 밭의 들깨는 부실하다. 다른 메마른 땅들과 마찬가지로 건조하기 때문이다. 아직 베지 않은 들깨가 80%가량 남았다. 내일 오후에는 바위 밭 들깨를 베고, 위쪽 밭의 다수 들깨는 편이 내려와 살펴본 뒤 지시에 따라 베어낼 예정이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구름으로 말을 만들고, 그 언어를 우리에게 전한다. 하늘의 언어는 구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숙진암 위로 하늘이 있고, 구름은 숙진암에 한 자락 걸쳐졌다. 앉아 있는 바위자리에서 언덕을 바라본다. 길뫼재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가고 또 온다.
만추는 억새를 흔들며 떠날 뜻을 드러낸다. 능동적인 표시라기보다는, 일어서서 뒤돌아보지 않고 가는 몸짓에 가깝다. 이 언덕에서 맞는 세 번째 만추다. 나는 이제 이 언덕 사람이 다 된 듯하다. 비록 정주(定住) 하지는 않지만, 있는 틈을 이곳에서 채우니 머무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새로움도 있지만 이제는 담담하다. ‘오면 오는가 보다, 가면 가는가 보다’ 하며 맞이한다. 이곳의 풍경을 새삼스레 바라보지 않는다. 나 또한 이곳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흗날-들깨 베다 잠시
셋째 날, 월요일. 바위 앞에 앉았다. 숙진암 앞에는 넓적한 돌이 놓여 있는데, 그곳이 바로 나의 돌 자리(石座)다. 여름에는 바위 그늘에 앉을 수 있었다. 그늘은 한여름에도 시원했다. 고로쇠나무가 드리운 그늘만큼은 아니었지만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볕 아래서도 앉을 수 있다. 이 자리에 앉으면 생각이 한결 순해진다.
왼편의 구재봉과 칠선봉, 오른편의 형제봉과 신선대가 나를 품듯 둘러선다. 그중에서도 형제봉은 나의 멘토 같다. 묵묵히 지켜봐 주는 형제봉 위로 이제 곧 해가 걸릴 참이다. 석양.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을 ‘하염없이 앉아 있다’라고 해야 할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형제봉을 바라보는데 전화가 울렸다. 안성 무설재 주인장이었다. 10월 하순 ‘무설재 음악회’에서 색소폰을 부탁하는 전화였다.
바위 밭의 들깨는 모두 베었다. 이번이 네 번째 일이다. 베는 동안 문득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호스를 진작 사 두었다면 물을 줄 수 있었을 텐데, 우리 연못물은 가뭄에도 넘쳐나는데도 말이다. 물을 끌어 댈 호스만 마련했다면 들깨가 이처럼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20m, 40m짜리 호스에 더해 40m짜리 하나만 더 들이면 숙진암 아래까지 물을 댈 수 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과일나무 손질, 삽질, 예취기를 들이댈 땅의 돌을 주워내는 일과 함께 호스를 하나 더 사 바위 밭에 물을 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들깨를 베다 잠시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높고 깊다. 구름은 새하얗다.
바위 아래 돌 틈에 꽃이 피었다. 이름은 모른다. 생김새는 나팔꽃의 축소판 같지만, 더 야성적이다. 볼 때마다 미려함을 느끼지만,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꽃이다. 매실나무를 칭칭 감고 올라가 조여대는 넝쿨 식물이기 때문이다. 서너 번 걷어냈는 데도 다시 무성히 자라 꽃을 피웠다. 청명한 하늘 아래, 우직한 돌 틈이야말로 그 꽃에 가장 어울리는 자리라는 생각을 오늘따라 더 하게 된다.
나흗날-다시 문명세계로
마지막 날, 나흘째. 편을 마중하러 하동읍으로 갔다. 출발하기 전, 범이와 호비 두 녀석에게 단단히 일렀다.
“주인마님이 오시니 마당도 좀 쓸고, 세수도 하고 얌전히 기다려라.”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콧방귀조차 뀌지 않는다.
바위 밭 들깨는 편이 베었다. 내가 맡은 다섯 번째 일은 그것을 받아 운반하는 일이었다. 여섯 번째 일은 대봉감, 단감, 매실, 자두, 살구, 배, 사과, 모과, 석류, 차나무에 호스를 끌어다 물을 주는 일이었다. 이 밖에도 삼시세끼 밥 짓고 설거지하는 일, 밤마다 나팔 부는 일, 그리고 호박잎, 고구마 줄기, 호박, 가지, 고추 등을 챙겨 차에 싣는 일까지 — 일이라면 일이 되는 동작들이 매일 뒤따랐다.
문명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자동차 시동을 거니, 제법 커진 달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섬진강 길 내내 달은 강 위를 따라 흐르는 듯했다. 우리 따라, 강 따라. 핸들을 잡고 있어 눈길은 두지 못했지만, 강과 강변의 백사장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