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016
해가 기울어 간다. 편과 함께 아래 바위밭으로 내려갔다. 이제부터 그 바위를 숙진암(淑鎭岩)이라 부르기로 했다. ‘숙’은 편의 이름에서, ‘진’은 나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전에 몇 번 불렀던 ‘연리암’은 잠정적인 이름일 뿐이었다. 나는 바위에 기대어 앉아 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위는 숙진암이니까 그건 나와 나, 나와 편 사이에 말이 오가는 것이기도 했다.
우연히 보게 된 EBS 다큐 프라임 〈그린란드의 여름 이야기〉 속 한 장면이 자주 떠오른다. 그물채를 등에 숨기고 바위틈에 앉아, 하늘을 보며 날아드는 새를 낚아채려던 일본인 노인의 모습이었다.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도 아니고 일부만 보았을 뿐인데, 그것이 3부작이라는 사실이나 정확한 제목조차 나중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 노인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는 것은,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최북단까지 오게 되었다.” 그의 이 말이 내 귀에 오래 머물렀다.
삶의 길은 내가 선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살아가다 보니 그 길 위에 서 있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렇다. 살아가다 보니 직업적으로, 가정적으로 지금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아주 젊은 시절부터 북쪽 길을 택했고, 그 끝 지점에서 자신의 삶을 일구었다. 그는 일본을 떠난 뒤 노인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돌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살아 계신 어머니가 가끔 그립다고 했지만, 일본은 더 이상 자신이 머물 땅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곳이 ‘살 곳’이든, 그것이 ‘자기 삶’이든, 스스로 선택한 길을 끝까지 지켜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살면서 잃어버린 삶이 어디에 있는지”를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린란드의 새를 잡던 그 노인에게는, 잃어버린 삶이 없어 보였다.
한때 나는 ‘소유적 삶’과 ‘존재적 삶’, ‘속물적 삶과 자아실현적 삶’을 자주 입에 올렸다. 그러나 정작 나는 어떤 삶을 사는지 성찰하지 않은 채, 그저 말만 늘어놓았던 때가 많았다. 그런 나는 정작 어떤 삶을 사는지에 대한 반성도 없이 그렇게 하기도 했다. 그건, 마음속에서는 은근히 난 소유적 삶과 속물적 삶의 반대편에 있다는, 그야말로 속물적인 근성에 분칠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엘리엇이 말한 “살면서 잃어버린 삶”은, 소유와 속물성에 매달리게 하는 자본주의, 그리고 그보다 더 집요한 후기 자본주의적 삶의 양태를 두고 한 말일까. 악착같이 매달리지 않고서는 생존조차 힘든 현실 속에서 말이다.
유흥초 이는 내가 여기에 와서 처음 접한 꽃이고 새로 알게 된 이름이다. 유흥초는 숙진암 아래 돌 틈에서 뚜렷한 형체로 피어 있는 작은 꽃이다. 그리 크지 않지만, 또렷한 형체의 유홍초는 숙진암과 말벗이었다. 곧 들국화와 쑥부쟁이에게 자리를 내주고 계절 너머로 사라질 참이었지만, 그 잠시의 존재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유홍초의 그 단정한 모습은 나로 하여금 ‘잃어버린 삶’에 대해 묵상하게 했다. 마치 지금이라도 회복해야 할 삶이 있음을 일깨워주는 듯했다. 그 작은 꽃의 존재는 내 눈에 유난히도 선명했다.
나는 늘 바쁘게 살았다. 살다 보니 바빠졌고, 바쁠 수밖에 없는 일들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바쁨 속에서 ‘살면서 잃어버린 삶이 어디에 있는지’, 혹은 내가 빠뜨린 삶은 없는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내왔다.
“우리가 살면서 잃어버린 삶은 어디에 있지?”
이 물음은 T. S. 엘리엇의 〈바위가 부르는 합창〉 속 구절이라고 한다. 그의 『시와 극 전집』에 실려 있으며, 나는 E. 다이아몬드의 『철학 콘서트』를 통해 이 개념을 처음 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