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12
내가 혼자 사용하는 방은 두 곳이다. 부산 아파트의 서재와 이곳 길뫼재의 컨테이너 작업실이다. 서재는 비교적 정돈되어 있지만, 작업실은 늘 어수선하다. 그런데 2013년 퇴직 이후 대부분의 글은 이 어지러운 공간, 컨테이너 작업실에서 써 내려가고 있다. 그래서 ‘나를 닮은 방’이라면 서재보다는 이곳, ‘글 작업실’이 더 어울린다.
방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오랫동안 머문 사람의 습관과 마음결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나의 글 작업실을 둘러보면, 그 안에는 내가 지나온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처음 이곳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 겨울이 지난 후 컨테이너를 들여놓던 때였다. 그때로부터 치면 벌써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책상 위의 필통과 필기구들은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지켜온 나의 고집을 보여주고, 흩어진 종이들은 여전히 미완의 사유를 닮아있다.
그래서 먼저, 방은 나를 닮았다. 정리되지 못한 책더미와 기록물 속에는 내 안의 욕망과 미완의 흔적이 숨어 있고, 구석에 서 있는 낡은 도사 지팡이는 버리지 못하는 추억을 증언한다. 이 방은 말없이 내 성격을 드러내는 거울이자, 나도 모르게 써 내려간 자서전이다.
방 안의 사물들은 기능을 넘어 내 삶의 의도와 흔적을 담은 기호가 된다. 결국 방은 단순한 수납의 틀을 넘어, 내 정신의 무늬를 시각화한 하나의 ‘텍스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또한, 방을 닮아가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창을 열어 햇살이 들어오면 마음도 환해지고, 방 안의 공기가 흐트러지면 내면 또한 탁해진다. 방이 정리되면 나도 한결 가벼워지고, 방이 무너진 듯 어지러우면 나 역시 그 혼란을 피해 가지 못한다.
결국 방과 나는 서로의 거울이다. 방은 내면을 비추는 외부이고, 나는 방의 구조를 내면화한 내부다. 방을 묻는 일은 곧 나 자신을 묻는 일이며, 방을 정리하는 일은 자기 존재의 질서를 새롭게 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방을 닮은 나’는 곧 ‘장소화 된 존재’이고, ‘나를 닮은 방’은 곧 ‘인간화된 공간’이다. 이 둘이 맞닿는 지점에서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 속한 존재인지에 대한 사유를 시작할 수 있다.
치운다고 치우지만 어지러운 방, 컨테이너 작업실, 어수선하지만 여기 들어와 앉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생각이 정리되면 글이 풀린다.
치운다고 치워도 늘 어수선한 방, 그러나 이 컨테이너 작업실에 들어와 앉으면 마음은 오히려 편해진다. 생각이 정리되고 글이 풀린다.
어지러운 공간 속에서 오히려 사유의 흐름이 길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