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4
나는 가끔, 내 걷는 모습이 궁금했다. 내 눈은 앞을 향해 있을 뿐, 스스로의 보폭과 리듬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에게 부탁해 내가 걷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은 적도 있었다. 그렇게 찍어서 본 화면 속의 내 걸음걸이는 뜻밖에 낯설었다.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균형조차 서툴러 보였다.
"저것이 과연 내가 걷는 모습일까?"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걷는 행위와 나의 존재가 어긋나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 모습만으로는 ‘걷는 나’를 제대로 담아낼 수 없었다.
오늘, 사량도 윗 섬을 한 바퀴 도는 중에 차를 세운 곳 ‘수우도 전망대’, 나보다 먼저 올라간 편이 올라오는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밤에 숙소인 통영 스탠포드 호텔 앤 리조트에서 보여주는 이 영상을 보고서야 비로소 무릎을 쳤다.
그렇거니, 이것이 바로 지금 이 나이의 내가 걷고 있는 모습! 화면 속에서 걸어 올라오는 모습, 나이의 무게를 안고서도 힘차게 떼려는 발걸음,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나’였다. 완벽하지도, 젊지도 않은 걸음, 그러나 그렇다고 노화로 인한 비틀거림이 비치는 것도 아닌 걸음걸이!
나는 이 모습을 '걷는 나(Ego ambulans)'로 받아들인다. 내가 걸어온 세월과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결국 나를 증명해 주고 있음을.
오늘도 나는 말한다: “나는 걷는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Ambulo, ergo sum)
‘관절’은 말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침묵 속의 말을 자주 듣는다. 그 말은 소리로 오지 않고, 통증으로, 묵직한 느낌으로, 때로는 계절의 변화처럼 느리게 다가온다.
며칠 전 나는 추석 연휴 사량도 다녀온 이야기를 <걷고 있는 나, Ego ambulans>라는 제목으로 몇 줄 글을 썼었다. 그 글 아래에 “아직 걸음이 당당하시다”라는 취지의 댓글을 몇 분 지기들이 달아주셨다. 그 말속에는 호의와 격려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씩씩한 걸음 속에 오래된 사고의 그림자가 함께 걷고 있음을. 30여 년 전의 교통사고 흔적은 왼쪽 무릎 깊숙이 자리 잡았다. 잊고 있던 그 기억은, 세월을 따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에게 말을 건넨다.
“조심해라.” “오늘은 조금만 걸어라.” “이만큼 걸었으면 충분하지 않겠니?”
그 신호를 들을 때마다, 나는 잠시 걸음을 늦춘다. 그러다 어느 날, 통증의 신호주기가 짧아졌다는 걸 느낀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갑자기 자주 찾아오는 것처럼, 무릎은 내 몸의 가장 솔직한 대화 상대가 된다.
어제는 외과의사 만나러 가려다가 그만두었다. 오늘 새벽녘, 통증이 약해진 무릎을 어루만지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괜찮다’라는 이 잠깐의 순간조차 나에겐 축복이 된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생 걸어왔다. 길 위에서 사유하고, 길 위에서 글을 쓰고, 길 위에서 '나'를 찾아왔다. 그 모든 길마다, 관절은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다.
때로는 항의하듯 쑤시고, 때로는 격려하듯 부드럽게 움직이며 늘 내 삶의 리듬을 조율해 왔다.
‘관절’이 보내오는 신호는 고통의 언어가 아니라 삶의 언어이다. 내가 걷는 한, 그들은 나와 함께 있고, 그 있음의 증거로서 나를 부드럽게 그러나 확실히 일깨운다.
오늘도 무릎이 나직이 속삭인다. “자네, 천천히 걸으시게. 그래도 계속 걸음을 멈추지는 마시게.”
그 말에 힘을 얻어 나는 다시 걸음을 내디딘다. 완벽하지 않은 무릎으로, 그러나 분명한 의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