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15 '다시 또 여름' 출간
여섯 번째 산문집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내 가까이에 있는 독자 세 명은, 출판된 내 산문집 다섯 권을 거의 외우다시피 읽는다. 그러곤 “몇 권, 몇 페이지의 어느 부분”에 대해, 자신이 파악한 글의 배경과 본문 해석을, 잊을 만하면 전화나 카톡으로 알려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깜짝 놀란다. 벌써 여러 해째 이어져 온 일이다. 대충 쓴 글, 별 알맹이도 없는 글을 저렇게 ‘뭔가 있는 것’처럼 심각하게 읽어 주다니….
시답잖은 글인데도 성심껏 읽어 주는 그들에게서 나는 큰 자극과 동기부여를 받는다. 덕분에 원고 검토에 더욱 꼼꼼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원고를 벌써 다섯 번째 읽고 있다.
검토에는 네 대의 기기가 동원된다. 첫째, 세로형 모니터에는 원고를 띄우고, 둘째, 가로형 모니터에는 ‘K-바른 한글’ 맞춤법 검사기를 켜 둔다. 셋째, 태블릿에서는 지금 고치는 글과 이미 출판된 글, 혹은 다른 원고와의 중복 여부를 확인한다. 넷째, 휴대폰으로는 모르는 단어나 뜻을 찾아본다.
세상 참 좋아졌다. 처음에는 노트북과 휴대폰, 이렇게 두 개의 도구로만 검토했는데, 이제는 네 개로 늘려 입체적으로 작업한다.
산기슭에 머무는 동안 열 권 출판을 구상하고 있다. 지금 다듬고 있는 여섯 번째 산문집 원고 외에도 세 권 정도 분량의 글이 더 쌓여 있다.
앞으로는 POD 방식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POD는 Print-On-Demand의 약자로, 주문이 들어오면 책을 개별 인쇄해 배송하는 맞춤형 소량 출판 방식이다. 초기 제작비와 재고 부담이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내가 들여야 하는 노력이 크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피리 불고 춤까지 춰야 하는 셈이다.
낮에는 밭 일하고 밤에는 글 일 하는 생활 즉 주경야필(晝耕夜筆)이 내가 글을 대하는 자세이다. 난 글의 밀도가 좀 떨어지더라도 신체적인 몸놀림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밤이 되면 졸음과 글 등 두넘과 씨름한다. 한 문장, 한 단어를 붙잡고 씨름하다 보면, 내 글이 조금은 단단해지고, 책이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는데도 이미 누군가의 손에 들린 듯한 기분이 든다.
여섯 번째 산문집이 완성되는 순간까지, 나는 오늘도 네 대의 기기 앞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내 글을 다듬는다.
그런 일이 오지 않겠지만, 만일 그럴 기회가 닿아 언젠가 이 네 대의 기기가 박물관에 전시되기라도 한다면, 설명문에는 ‘여섯 번째 산문집의 동지들’이라고 적힐 것이다. 물론 망상이다.
한 번은 넘어야 할 산, 하지만 수년 동안 여러 번 시도했지만, 산 들머리에서 번번이 좌절하고서 오르지 못했던 산, 드디어 오늘 꼭대기에 올라섰다. 교보문고의 <바로출판> POD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현직에 있을 때 작가 등록했던 거니까, 햇수로 치면 약 15년 만이다.
맞춤형 출판 플랫폼 중 대표적인 서비스인 퍼플(Pubple)과 부크크(Bookk)의 체계를 익히고 그들이 요구하는 형식으로 각각 원고를 구성해 보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교보문고의 <바로출판> POD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교보 퍼플을 집중적으로 스터디했다.
A부터 Z까지 직접 내 손으로 다 해내야 하는 POD 출판 방식, 원고를 준비하여 교정, 삼교, 사교가 정도가 아니라 십교(十矯)까지라도 해내겠는데(실제로 그렇게 했음), 문제는 ‘날개가 있는 표지’ 제작이었다. 이번에도 거의 좌초 직전까지 갔었다.
그런데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이, 어떤 작가가 자기도 좌초 직전에 디자인 플랫폼인 <미리 캔버스>를 발견, 여기서 표지 디자인하는 방법을 고투 끝에 알아내, 제작 성공했다는 글을 읽고서 나도 곧장 '미리 캔버스'에 회원 등록을 했다.
나 또한 여기서 악전고투 끝에 드디어 신국판의 ‘뒷날개-뒷면-책등-앞면-앞날개’로 이어지는 펼침 표지 제작에 성공했다. 원고 정리한 기간은 빼고, POD 출판 그중에도 표지 제작 익히고서 제작하는데,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서너 달 걸렸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다른 생각할 겨를은 거의 없었다. 너무 몰두하는 걸 옆에서 보고 편이 걱정도 많이 했다.
지금 만들어낸 표지 보고 혼자서 웃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야, 젊지 않아도 잘하는 사람이야 퍼뜩 산뜻한 작품을 만들어내겠지만, 농사짓는 무딘 내 손으로 자력갱생, 남들은 “겨우 그 정도로” 할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이 정도로 내가 해내다니”라는 뿌듯함으로 내 손을 쓰다듬는다.
교보문고 퍼플에 출판의뢰 했다.
나는 이야기 속에서 나를 찾고 있다. 그 이야기는 소설도, 시도, 철학도 아니다. 그저 ‘내 인생’이라는 이름의 긴 이야기다. 지금 내가 말하는 ‘이야기’는 ‘내 인생’을 뜻하기도 하고 풀어내고 있는 '내 이야기'를 뜻하기도 한다.
한때 나는 그 이야기를 누군가 대신 써주고 있다고 믿었다. 즉 세상이 정한 규칙, 가족의 기대, 사회의 흐름이 내 인생의 문장을 대신 써 내려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이야기의 문장 사이에서 묘하게 낯익은 잉크 자국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히 내 손끝의 흔적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인생’이라는 원고의 저자는 언제나 나 자신이었음을.
그때부터 나는 내 인생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타인이 써준 문장이 아니라, 내가 직접 써 내려가는 문장으로서의 삶을 말이다. 한때는 인생이 타인이나 운명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고 여겼지만, 결국 내가 선택하고 써온 결과였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런 내 이야기(내 인생)를 이야기( 내 언어)로 풀어보려고 한 것이 ‘배채진의 길뫼철학’ 시리즈이다.
이번 『다시 또 여름』은 그 여섯 번째 이야기다. 2회에 걸친 최종 교정을 마쳤다. 표지도 수정했다. 고생스러웠지만, 그 과정에서 POD 출판의 즐거움을 땀 흘리며 온몸으로 느꼈다. 짜드라 누가 사주랴만, 그래도 나는 내 성의를 다해 또 한 권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다시 또 여름』은 계절의 순환처럼 되풀이되는 삶의 반복과 회복을 담고 있다. 여름은 끝나는 듯 다시 오고, 이별은 끝나는 듯 또다시 시작된다. 그 순환의 가운데, 나는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문장을 쓰고 있는가?”
삶의 한 페이지마다 흔적을 남기며,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의 작가로 살아간다. 누구도 대신 써줄 수 없는 문장, 누구도 대신 끝낼 수 없는 이야기….
나는 늦은 밤 지금도 컨테이너 글 작업실 자판기 앞에 앉아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아니 완벽할 수 없다. 나의 이름으로, 나의 이야기로, 나는 내 인생의 작가로 살아가고 풀어내겠다는 생각을 다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