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날 또다시 찾아온”

잊힌 이름들

by 로댄힐

기억은 참 이상하다. 어떤 순간은 마치 어제 일처럼 또렷한데 어떤 이름은 흐릿하여 영 먹빛이다. 그런데 문득, 낡은 옷이나 서랍의 빛 배린 종이에서 풍기는 오래된 향기나, 유행이 지난 노래의 가사 한 소절에 깃든 멜로디가 이름 하나를 문득 불러올 때가 있다. “아, 그때 그 사람…” 하지만 곧 이어진 말은 대개 이렇게 끝난다. “이름이 뭐였더라?”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어떤 인연은 짧고도 강렬하며, 어떤 인연은 길고도 조용하다. 친구였고, 스승이었고, 사랑이었고, 경쟁자였던 사람들. 한때는 내 하루의 중심이었고, 어떤 고민은 그들과의 관계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이름은 마치 빛이 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지고, 결국엔 말끝을 흐리게 만든다.


이름? 모른다. 잊어버렸다. 나이? 나보다 두서너 살 더 많았을 것 같다. 나는 그때 교복이었지만, 그녀는 사복이었다. 나의 입학이 두 해 늦은 것임을 감안해도, 그녀는 자기를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으니까 최소한 한 살 이상은 나보다 더 먹었을 것이다.


잊혔다는 사실에 슬퍼지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도 누군가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 누군가의 마음속에 또렷하게 새겨졌던 내 이름이, 지금쯤은 “그 사람, 이름이 뭐였더라”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만남? 서부 겡남 촌 넘 나의 부산 첫 방문은 고2 때다. 진로를 상담하기 위해 지금 부산대학병원 위, 광복동 야시장 풍경이 일렬로 찬란히 보이는 아미동 언덕의 수도회 소속 신부님을 찾아간 것은 여름 방학 때였다. 지금은 덜 하지만, 그때 난 단독으로 사람 만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주눅이 잔뜩 든 채 긴장으로 또 여름 날씨로 손바닥이 땀으로 젖어 있는 나를, 상담 후에 신부님은 누구에게 인계한다. 말하자면 내 머물 방을 안내하도록 사람을 불렀다는 말이 되겠다. 그렇게 들어온 사람이 그녀였다. 호리호리했고 눈이 컸으며 머리가 길었다는 생각이 든다. 원색의 붉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앞서서 내 머물 방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그 신부님의 먼 혹은 가까운 동생뻘 되는 사람이었다.


다음 날, 바다 구경 가자고 한다. 머뭇거렸더니 집에 아무도 없다고, 어른이 없으니 나가도 괜찮다고 한다. 송도로 가잔다. 아미동서 송도 해수욕장은 그리 멀지 않았다. 물론 처음 가보는 송도다. 난 수영복을 갈아입었고 그녀는 갈아입지 않았다. 보트를 태워 주었다. 난 보트도 처음 타는 것이었고, 노도 처음 잡아 보는 것이었다. 사진도 찍었다. 누가 찍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그녀가 사진기를 가지고 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찍은 건지 송도의 해변 사진사를 통해 찍은 건지 그것도 기억 안 난다. 보트 타고 찍힌 사진도 있고 교복 입고 교모 쓴 채 찍은 사진도 있었다. 그 사진들? 몽땅 분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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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한 말 몇 마디는 아직도 기억의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먼지 쌓여 방치된 것이 아니라, 금방 빼어 펼쳤다가 덮어서 꽃은 서가의 책처럼 온기로 있다.


편린 몇 개를 먼지 털어 더듬는다. 부산여상을 졸업했다고 했던 것 같다. 동아리 친구들이 음독하기로 의논, 집단 음독한 후 그 친구들은 이 세상을 떠났는데 막상 결행 전에 자기는 빠졌다고 했던 것 같다. 약속을 이행한, 그러니까 음독으로 죽은 친구들에게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자기로서 죄책감이 크다고 말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럴까. 그 누나의 눈은 우수 어린 눈이었던 것 같다. 아미동 언덕 집에 머무는 며칠 동안 집 어른이 있으면 무표정했지만, 없을 땐 커피도 끓여주고 곁에 와 이야기도 잘해주었으며 상큼한 화장품 냄새도 잘 풍겨 주었던 것 같다. 셔츠는 원색의 그 셔츠 이미지로만 남아 있다. 흰 블라우스도 입었던가.


돌아온 진주서 편지도 여러 장 받았다. 우윳빛 타이프 용지에 쓴 편지. 2학년 다 보내고 3학년 될 때까지 보내 주었던 것 같다. 편지? 그 편지가 한 통도 남아 있지 않다. 해를 넘기면서 편지 받고 편지 보내고 했으니 그 편지 중에는 5월의 편지도 있었을 것 같다. 그녀가 진주로 찾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기억이 안 난다. 진주 어디로 내가 안내했는지 도통 생각이 안 난다. 그리고 언제부터 왜 편지도 오가지 않게 되었는지 그것도 모르겠다.

60년대 일이었는데 70년대 가고 80년대도 갔다. 90년대도 갈 데 있다고 곁을 떠나더니 00년대도 차비 서두른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이제 2025년…. 그래도 그 누나 얼굴 또 용모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5월이어서 그리운 걸까. 그리워서 5월일까. 그 누나가 이 5월엔 유달리 생각난다. 그녀의 편지들 분실이 이 5월 따라 더욱 안타깝다. 그녀,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 그 누나의 영상은 “그리운 날 또다시 찾아온 5월의 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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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름은 단지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한 시간의 증거다.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내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름이 흐릿해졌다는 건, 그 흔적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삶의 다음 페이지로 나아가고 있다는 징표일지도 모른다.


부산여상 행정실에 전화했다. 60년대 졸업생 사진이나 앨범이 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했다. “있는 대로 먼지 털어 보여드릴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다음 주중에 한 번 오시라”라고 했다. 졸업사진, 앨범이 있었으면 좋겠다. 있어도 그 얼굴을 내가 찾아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있어 내가 그 누나의 얼굴을 알아봤으면 좋겠다. 10여 년 전의 얘기다. 행정실에 끝내 찾아가지 않았었다.


때때로 나는 그 흐릿해진 이름들을 조용히 불러본다. 마음속으로, 혹은 종이에. 오래된 노트에 적혀 있는 이름 하나가 오늘의 나를 만든 작은 조각이었음을 인정하며.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라도, 그 순간의 따뜻함과 아픔, 웃음과 눈물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고 있음을 기억하며.


지금은 이름이 흐릿해진, 잊힌 사람들, 그들은 여전히 내 안 어딘가에 살아 있다. 잊힌 게 아니라, 조용히 잠들어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을 다시 불러주는 날, 그들은 아주 잠깐, 다시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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